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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스카이 Feb 02. 2023

나의 Ex-스페인 시어머니 7

가족 간의 만남; 카르멘(Carmen)이 내 인생의 카르마(karma)?


회사 보스와 연애하면서 그 난리를 치고, 영화를 여러 편 찍었더니 어느새 결혼 전날이 되었습니다.  뭔가에 홀린 듯 시간이 휙 날아갔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에 스페인 식구들 12명이 와 있더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서두가 좀 길었지만, 제목 속의 주인공 ‘스페인 시어머니’가 드디어 등장합니다.  그녀는 처음엔 별다르지 않았어요.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저를 맘에 들어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살짝 붉은기가 도는 웨이브진 긴 단발의 머리, 서양사람치곤 작다고 느껴지는 예리한 눈과 얇지만 뭔가 다부진 인상을 주는 입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참, 목소리가 꽤 크셔서 뭐든 소리를 지른다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녀의 이름은 굉장히 스페인스러운 카르멘(실명과 동일)입니다.  그런 카르멘의 인생도 녹록지 않아서 20살에 결혼을 하고 곧 아들을 낳았는데, 25살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었답니다.  다들 그녀의 전남편 얘기는 쉬쉬했지만 알코올중독으로 돌아가신 듯하다는 얘기를 스페인 식구에게서 얼핏 들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죠.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전에 그가 큰 빚을 남기고 떠난 것을 알게 됩니다.  스페인 작은 마을 출신에 많이 배우지도 못한, 5살짜리 아들이 딸린 어린 과부에게 인생은 참 벅찬 짐을 지워준 듯하네요.  그래서, 그녀는 어린 아들을 친척에게 맡기고 네덜란드로 가서 10년 간 레스토랑에서 힘들게 요리를 하며 빚을 다 갚았답니다.  



이런 그녀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왜 그녀가 그렇게 돈에 절절매게 되었는지, 아들에게 난리를 치면서 동시에 미안해하는지, 무엇보다도 별 이유 없이 모든 것에 화를 잘 내는지를 다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10년이나 외국에서 고생을 했으니 스페인에 다시 돌아왔을 때 꽃길만 걸을 법도한데, 인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쉽게 살도록 놓아두질 않았답니다.  그녀는 35세에 나이트클럽에서 남자(시아버님)를 만났는데, 프랑스계 대기업의 사장이라는 인상 좋은 그 사람은 어린 딸들을(막내가 기저귀를 찬 2살) 셋이나 두고 있는 이혼남이었던 것이었죠.  왜 인생은 드라마처럼 쉽게 ‘고생 끝, 행복 시작’이 안되는지 모르겠어요.  한마디로 ‘고생 끝, 리셋 후 다시 고생 시작’이어야만 했으니 그녀의 성격이 강해진 게 단순히 인성 탓 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속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이렇게 만난 두 분은 결혼은 하지 않고 그냥 ‘사실혼’ 관계로 아직도 함께하고 계십니다.  제 성격상 두 분 사이가 좋다고 거짓말은 못하겠고, 그냥 서로를 견뎌내고 계십니다.



이렇게 시련을 견디며 어렵게 키운 외아들이 외국인과 결혼을 한다니 그녀의 맘이 어땠을까 싶네요.  어쨌든, 한국 결혼식에 참석하러 온 그녀는 살짝 들떠 보였고 심지어 행복한 듯했습니다.  너무나 무지하게도 저는 서양인, 그것도 유럽사람을 시어머님으로 맞게 되어서 은근히 기뻤고, 이제 가식 없이 맘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었더랬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콩깍지가 연애 때문에 씐 게 아니라 그냥 인생 전체를 뒤덮었던 시기였었네요.  하지만 모든 게 쉬울 수만은 없는 게 인생이다 보니, 세상이 온통 핑크빛으로만 보이는 그즈음에 제 맘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들이 스멀스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ps. 다음 편을 빨리 쓰라고 push 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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