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최악이야"
딸아이 기말고사가 있기 며칠전이었다.
딸은 학교를 다녀와서 나에게 물었다.
"엄마, 시험 마지막 날 나 학원안가고 쉬면 안되?"
"놀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쉬기 위해서 학원을 빠지는 건 안될것 같아."
내가 차분하게 말했다.
"나 시험 친 날까지 학원가고 싶지 않아. 그냥 다른 날로 바꾸면 되잖아."
딸은 약간 목소리가 높아져 흥분해서 말했다.
"함께 수업하는 친구도 있는데 그런 이유로 수업을 바꿀 순 없어."
나도 화를 조금 다스리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근데 왜 난 안 돼? 누구(같이 수업하는 친구)는 맨날 사정 있으면 수업 바꾸잖아!”
“그건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고—”
“이것도 사정이야! 내 사정!”
…순식간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말싸움이 아니라 대화로 시작을 했는데
대화가 갑자기 전쟁으로 변했다.그러자 딸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 빛은 반짝임이 아니라, 번개같았다.
눈빛은 날카롭고, 흡사 쥬라기 공원에 나오는 티라노사우르스 같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처음 보았다.
딸이 거실 바닥에 드러눕는 장면을.
정말 말 그대로 ‘철푸덕’ 누워버린 것이다.
작은 키도 아닌데 손 발을 버둥거리면서 소리 질렀다.
지금까지 이처럼 누워서 소리지르고 드러눕는 적이 없는 딸이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대화를 했고, 아이의 마음이 우선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에 가능한 대화로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가 드러눕는 모습을 보자 지금까지 한 노력들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린것 만 같았다. 처음 겪는 이 모습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안 가! 안 간다고!”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러다간 서로 말이 더 거칠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저 모습을 더이상 지켜봐 주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가방만 챙겨서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엄마는… 최악이야!” 하며 소리 질렀다.
그 말이 귓가에 화살처럼 꽂혔다.
심장이 쿵 내려앉은 채로 문을 닫으려는데,
아래층 현관문이 열려 있고 노부부가 위를 보고 계셨다.
그 표정엔 묘한 미소와 궁금증이 섞여 있었다.
순간,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하고 사고가 정지됐었다. 잠시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 지금… 우리 집 전쟁 소리 다 들으신 거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잽싸게 앨리베이터 아래 버튼을 눌렸다. 정말 최악인건, 나는 9층인데 최고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평정심을 가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아파트를 벗어났다.
창문으로 나를 쳐다 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대로 동네를 걸었다.
목적지도 없이, 그냥 발이 가는 대로.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마음이 더 허해졌다.
갈 데도 없네…
이게 참 서글펐다. 그냥 근처 공원으로 가기로 마음먹고 걷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다.
'흥분한 딸을 혼자 두고 나온 건 잘못한 걸까?'
'혹시 울고 있는 건 아닐까?''무섭진 않을까?'
혹시… 더 심하게 삐진 건 아닐까?
머릿속엔 뉴스로만 봐 오던 온갖 안 좋은 상상들이 몰려왔다.
그렇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20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