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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영 Mar 22. 2023

96.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리고 책 추천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이야기  (8)

“24주 이전에는 가능하다면서요?”

“24주 이전에라도 아기는 태어나면 생명의 징후가 대부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기는 태어나서 심장이 뛸 것이고 울 수도(호흡의 증거)있습니다. 그런 아기를 방치하는 것은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이미 24주가 지났기에 부모에게 (태아에 대한) 선택권이 있는 시기가 아닙니다.”

“그래도 발달장애가 있을 수 있다면서요?”

“모든 질환은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정상으로 자랄 수도 있고 발달 지연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원래 이 질환이 다양한 임상 양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발달 장애가 있을 수 있는 아기를 어떻게 키워요?”

“…

“평균 생존 기간이 30세 정도라면서요?”

“아, 그건 과거의 치료법과 현재의 치료법이 다른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의학은 계속 발전하는 것이고 여러 임상 연구들을 통해서 발전하게 되니까요. 그렇지 않았다면 모든 당뇨 환자는 2-30대에 사망했겠지요.”

“저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요?”

“그냥 받아들이는 것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아기(태아)는 이미 컸고 부모에게는 선택권이 있지 않습니다.”


“이 질환 관련 유전자의 이상이 있는 것을 언제  알 수 있지요?”

“검사를 하시려구요?  굳이 할 필요는 없을 텐데… 임신의 경과에서 달라질 것은 없거든요.

그래도 검사를 하고 싶어요.

“뭐 그렇다면 16주 이후 양수검사를 시행해 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질환으로 양수 검사 결과에 따라서 임신 종결을 선택한 산모는 제 산모 중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신중하게 결정하셔야 합니다.”

“몇 주에 정확히 알 수 있지요? 최대한 빨리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시점을 알려주세요.

“유전자 검사는 원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검사입니다. 최소 4-6주 정도 걸립니다.”

“(해당) 유전자 이상이 있으면 임신 종결을 시킬려구요.”

‘미안하지만 할머니에게는 그런 권한과 방법이 없는데…’

“이 질환 때문에 솔직히 삶의 질이 좋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고민이긴 해요.”

“…”


임신을 해서 아기가 초음파에 이상 소견이 발견되는 경우는 매우 흔하게 있다. 단지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부부는 초죽음이 되어서 나의 진료실로 들어온다. 마치 부부의 인생이 무너진 것처럼. 혹여나 유전병의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불필요한 죄의식까지 가지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물론 모든 부부가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전혀  아니다. 위의 두 질환보다 훨씬 어렵고 심각한 태아의 질환에 대해서도 별 질문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감사하게도) 수두룩 했었다.과연 이 두 가지 반응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나의 설명과 답변으로 이 부부들의 관점이 쉽게 바뀌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병'이란  우리에게 매우 가까이 있고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지만 이 부분도 역시 진료 이외의 영역이다.

임신 전 아래와 같은 책들을 미리 읽고 그 불확실성에 대해서 미리 많은 간접 체험을 한다면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살고 싶어서 더 살리고 싶었다] 신승건 저. 선천성 심장병으로 결국 3번을 수술 받고 의사가 된 이야기. 그가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은 세 번째 심장수술을 받으려고 입원했을 때 였다고 한다.

[아프기만 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강인식 저. 박현묵 이야기. 심한 혈우병으로 관절과 장출혈로 생사를 오갔고 중고등학교도 가지 못한 현묵이 서울대 인문대에 합격한 드라마 같은 현실 이야기. 박현묵 학생은 [반지의 제왕]의 저자 돌킨의 덕후로서 '중간계로의 여행'이란 팬카페 활동을 하다가 결국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돌킨의 책을 번역하는 번역가로서의 활동을 하게 된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저. 정신과 의사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던 43세의 그녀에 닥친 것은 파킨슨 병이었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한 발자국도 내딛기 힘들어진 김혜남 선생님은 파킨슨 진단 이후 10권의 책을 냈다고 하니 정말 놀랍다.

[숨결이 바람될 때] 스탠포드 영문학 석사를 거쳐 신경외과 의사가 된 저자가 전공의 수련을 힘들게 마치는 순간 폐암 말기를 진단받고 아버지가 된 놀라운 이야기. 의사도 당연히 병에 걸린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저. 영문학자이자 서강대 교수였던 장영희님의 에세이. 그녀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로 하지가 불편했다. 이 책에는 ‘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라는 말이 나온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내가 쓴 주로 고위험 산모의 진료 현장과 생명탄생의 순간에 관한 책. 소나기가 하늘의 실패가 아니듯 적어도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 합병증이 생기는 것은 누구의 실패가 아니다. 이 책을 통해서 임신 중 비교적 흔하게 생기는 의학적 상황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했다. 아는 것이 힘이기에.


위의 책들은 모두 비가 온 다음에야 무지개가 뜬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의 삶이 365일 햇빛이 내리 쬐기를 바란다면 비가 온 다음 아련하게 뜨는 무지개의 찬란함을 결코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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