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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수영 Mar 17. 2024

114. 만날 수 없었던 아기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이야기 18)

부부를 처음 만난 건 임신 17주 경이었다. 두 번의 제왕절개수술로 낳은 두 아이가 있는 부부에게 찾아온 세 번째 임신은 순탄치 않았다. 이미 임신 17주에 전치태반* 및 태반이 방광으로 침투한 관통태반 (유착태반의 가장 심한 단계)가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전치태반: 태반이 자궁의 입구를 덮고 있는 상태, 임신 중기 이후 대량의 질출혈을 일으킬 있고 조산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유산 또는 출산의 과거력이 있는 전치태반은 분만 후 태반이 잘 떨어지지 않는 유착 태반이 동반된 경우가 많고,  심한 경우 대량출혈 및 자궁적출술까지 해야 하는 경우로 이어진다. 관통태반은 유착태반의 가장 심한 단계로 태반이 자궁근층을 아예 뚫고 나온 상황이다.)  


산모의 경우는 더군다나 명백한 혈뇨가 간헐적으로 동반되었기에 초음파에서 방광과 붙어있는 태반은 관통태반으로 의심을 받기에 의학적으로 충분했다. 계획한 임신도 아니었고 세번째 임신이었으며, 심한 전치태반으로 인하여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응급 상황 발생과 이로 인한 아기의 조산과 산모의 중환자실 치료 등에 대한 설명을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듣고 추가 의견을 듣기 위해서 임신 17주에 외래에 처음 온 것이었다.


나는 부부가 다른 병원에서 들은 온갖 위험성에 대한 내용을 동일하게 설명을 해줄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이러한 모든 위험성은 반드시 발생한다 (do happen) 라기 보다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highly likely to happen) 정도의 언어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또한 우리병원에는 여러가지로 더 위험한 산모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만을 추가했다.


남편은 부인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임신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고 결국 부부는 임신 18주에 임신 종결을 위해서 입원했다. (이 경우는 임신을 유지하는 것이 산모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큰 경우로 의학적 유산에 해당한다.)


심한 전치태반은 임신 종결의 과정에서도 출혈의 위험도가 상당하기에 분만 방식의 선택에도 어려움이 있다. 질식분만이 잘 되는 것이 산모를 위해서 가장 이상적인 일이지만, 방광으로 유착태반이 심하다면 결국 수술이 필요할 가능성이 많기에 나는 이 부분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MRI를 찍을 것을 권했다. 다행스럽게 너무나 다행스럽게 MRI 에서 유착태반이 광범위하기 보다는 국소적 (focal)이다는 는 판독이 나왔다. 나는 이 검사 결과를 부부에게 설명했다. 극적으로 너무나 극적으로 부부는 그러면 임신을 유지하겠다며  퇴원했다.


이후 외래의 경과는 내가 이 산모가 임신종결을 위해서 입원했었던 분이란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순조로왔다. 그러던 어느 날 35주에 양막파수가 생겨서 응급수술이 진행되었고 2.6kg의 건강한 남아가 태어났다. 예상대로 심한 전치태반 및 유착태반(관통태반 수준)이 있었기에 주저없이 자궁적출술을 결정해서 진행했다. 수술에는 나를 포함하여 3명의 산과 교수가 같이 했다.


약 3시간의 긴 수술을 마치고 병동에서 보호자를 만났다. 남편은 이 아기의 이름을 '하람' (하늘이 준 사람) 으로 지었다며 자칫하면 만날 수 없었던 아기를 만나게 해주어서 감사하다며 눈물을 그렁거렸다. 까무잡잡한 남편의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이 숭고하게 느껴졌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 그대로, 이 부부는 순간의 선택으로 사랑스러운 아들을 품 안에 안을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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