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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무늬영원 Apr 16. 2024

멀고 먼 미니멀리즘

- 겨울옷 들어가! 여름옷 나와!

그저께 일요일은 당직이었다.

주말 당직은 평일 당직과 다르게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밖에서 당직용 핸드폰으로

민원인의 안내 전화가 오면 민원소지가 없게끔 성실히 안내해 주는 게 주된 일이다.


언제 전화가 올지 모르니 신경을 곤두세우기에 차마 밖으로 나갈 생각은 못하고

날도 덥겠다 이참에 겨울옷은 집어 넣고 여름옷을 꺼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겨울옷을 정리하다보니 겨울에 입던 옷은 가짓수가 정해져 있고 행거에 널린 

많은 옷들은 몇 달 동안 그냥 병풍역할만 한 것을 발견했다.

그간 옷의 사용 빈도를 따져보니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의 80/20법칙이 적용될 수도 있겠다싶었다.


박스에 겨울옷을 넣으면서 뭐 버릴 게 있나 한번 살펴보았다.

이런저런 사연로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옷을 차마 버리지 못한 이유는 분명 있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처분해야 할 옷은 아예 존재하지 못할터다.


미니멀리즘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그 순간에는 신세계가 펼친듯 무릎을 팍 치며 사찰의 고승처럼

돈오점수의 경지에 잠시 올라서지만 실천은 또다른 문제임을 곧 알게 된다.


난 왜 버리지 못하는 걸까?

'미련' 때문이다.

언젠가는 사용하리라는 그런 기대감이 옷장에 박스에 오래 보관하는 힘이 되는 것이리라.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돈이 투입이 되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심리도 한몫했으리라.

또한 구구절절한(?) 사연이 깃든 것이라면 눈을 질끈 감고 집 한구석에 모셔야 할 경우도 있으리라


그렇다면 난 왜 버려야 하는가?

앞으로 난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게 남은만큼 '선택과 집중'을 할 시기된 것이다.

예를 들어, 2년 전에도 입은 적 없는 옷을 앞으로 2년 후에 입을 기회가 있으리라 스스로 설득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도 억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마음에 무언가를 채우려면 무언가를 버려야 하듯이

집에서 물건을 가짓수를 줄이려면 아무튼 단호하게 버려야 한다.

최소한 '하나를 사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상황이 그나마 악화되는 것을 막는 길이다.

(참고로 모든 이가 미니멀리스트가 될 필요는 없다. 가령 맥시멈리즘이 자신을 행복으로 이끈다면 

그 길도 괜찮으리라. 다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고 있지 않은가. )


그 무덥던 당직 일요일

종이 박스에 겨울옷과 여름옷을 정리하면서 

얼굴과 등에서 땀인지 아쉬움의 눈물인지 조금씩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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