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맵던 것들이 달아지는 시간
음식에 대파가 들어가면 맛있다는 사실을 나는 서른일곱이 되어서야 알았다. 아이가 다섯 살, 우리 부부가 먹는 음식을 같이 나누게 될 무렵이었다.
어릴 때 나는 국이나 반찬 속 대파가 싫었다. 초록색과 하얀색이 섞인 흐물흐물한 조각들이 국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게 못마땅했다. 국을 한 숟갈 뜰 때마다 대파가 함께 따라 올라오면 입을 앙 다물고는 숟가락을 다시 국물에 담갔다. 원치 않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조심스레 건져내지만, 국 속에서 대파는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리저리 떠다니다가 결국 내 숟가락 위에 올라앉는 게 얄미웠다.
결국 먹는 것보다 대파를 골라내는 일이 더 바빠졌다. 수저로 한 조각씩 떠서 그릇 가장자리로 밀어놓기도 하고, 가끔은 손으로 집어 밥그릇 옆에 가지런히 모아두기도 했다. 대파는 음식 속에서 불쑥 존재를 드러내며 내 입맛을 방해하는 성가신 존재였다. 대체 이건 왜 넣는 걸까? 처음부터 넣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골라내는 수고도 덜 텐데. 도대체 이 초록색 조각들이 뭐라고, 엄마는 꼭 넣는 걸까?
그래서인가 보다. 내 아이가 국에서 대파를 건져낼 때 나는 뭐라 하지 못한다. 아이가 숟가락을 들고 대파를 밀어내는 모습을 보면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오른다. 웬만하면 파가 들어가지 않게 국을 떠 주고, 혹시라도 몇 조각 떠다니면 조용히 지켜본다. 아이는 작은 손가락으로 국물 위의 대파를 신중하게 건져내 식탁 위 여기저기에 놓는다. 그 작은 행동이 낯설지 않아 웃음이 난다.
이제 나는 대파를 쟁여놓는다. 한 단만 사면 금방 떨어질 것 같아 두세 단씩 넉넉하게 사 온다. 집에 돌아와 대파를 씻고 다듬어 적당한 크기로 썰어 한 움큼씩 지퍼백에 나눠 담는다. 냉동실 서랍에 하얀 초록색이 뒤섞인 뚱뚱한 지퍼백이 줄지어 있는 걸 보면 왠지 마음이 든든하다. 문을 열 때마다 가득 쌓인 대파 봉지가 보이면 "한동안 걱정 없겠네" 하며 안심한다.
국을 끓일 때도, 찌개를 만들 때도, 기름에 달달 볶을 때도 대파는 늘 먼저 들어간다. 어릴 땐 저것만 없어도 밥 먹기가 훨씬 편할 텐데 싶었는데, 이제는 대파가 빠지면 맛이 심심하고 허전하다.
대파의 맛을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평소처럼 라면을 끓이면서 대파를 조금 더 넣었을 뿐인데, 그날따라 국물이 유난히 맛있었다. 국물 속에서 대파가 녹아들며 깊은 감칠맛을 더하고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떡볶이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길쭉한 대파가 듬뿍 들어간 떡볶이를 먹었는데, 단순한 양념 맛이 아니라 은근한 단맛과 알싸한 향이 어우러져 색다르게 느껴졌다. 대파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음식에 한 겹 더 풍미를 입히는 존재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그 무렵, 아이도 우리가 먹는 떡국을 같이 먹기 시작했다. 계란국을 먹고, 주꾸미볶음과 떡볶이를 물에 씻어 한 입씩 베어 물었다. 나는 오랜만에 직접 음식을 만들었고, 마침 대파가 요리에 감칠맛을 더해 준다는 걸 깨닫던 때였다. 어린 시절 그렇게 싫어했던 대파를 이제는 일부러 사서 다듬고, 손질해서 냉동실에 차곡차곡 쟁여 두는 사람이 되었다.
대파가 싫어 국에서 건져내던 아이가, 이제는 대파를 듬뿍 넣고 요리를 하는 엄마가 되었다.
어릴 때는 쓴맛을 견디지 못한다. 대파뿐만이 아니다. 커피도, 다크초콜릿도, 어른들의 말도, 세상의 불편한 진실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다. 음식에서도, 인생에서도, 거슬리는 것들이 실은 균형을 맞추는 요소라는 걸. 떫은맛이 가득한 다크초콜릿이 입안에서 천천히 녹을 때 고소한 풍미가 퍼지고, 커피의 씁쓸함 뒤에는 은은한 단맛이 숨어 있듯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들이 어느 순간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생대파도 그렇다. 막 썬 대파는 알싸한 향과 매운맛이 강해 입에 넣으면 코끝이 찡해진다. 열을 가하면 달라진다. 기름에 볶으면 고소한 향이 피어오르고, 국물에 오래 끓이면 자연스럽게 단맛이 우러나온다. 사람도 그렇다. 시간이 흐르고, 삶의 온도를 견디면서, 모나고 날카롭던 부분이 부드러워지고, 차가운 말투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이 스며든다.
점심에 떡국을 끓이기 위해 육수를 내고, 냉동실에서 대파를 꺼내 한 움큼 집어넣었다. 국물 속에서 대파가 조용히 녹아들며 깊은 맛을 더한다.
남편의 그릇에는 대파 반, 떡 반.
나는 대파가 만들어 준 국물 맛은 좋아하지만, 여전히 국에 떠다니는 대파 조각은 숟가락으로 살며시 골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