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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출내기 May 05. 2023

문제는 문제다

둘째 녀석이 어느날 갑자기 큐브를 사달라고 한다. 3 x 3 크기의 색색깔의 정육면체의 바로 그것이다. 학교에서의 유행들이 늘 그렇듯 아무 맥락없이 시작된 그 놀이에 우리 둘째도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인지. 한국에서 또래 친구들과 신나게 잘 다니던 학교를 독일로 옮긴 이후에, 괜히 낯선 환경에 아이를 몰아 넣은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과 자책이 들기도 했었던 터라, 마침 학교에서 유행을 한다는 큐브를 사달라는 부탁이 내심 반가웠다. 마음 바뀌기 전에 냉큼 같이 앉아서, 아마존 App 을 열고 같이 큐브를 고르기 시작했다. 각양 각색의 다양한 큐브들. 어린시절 방 구석 어딘가에 굴러다녔던 그 녀석. 몇번이고 마음을 잡고 맞춰보려고 시도 했었지만 끝내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지 못했던 그 녀석. 위 아래로 스크롤하며 구경하던 중에 하나를 딱 찍는다. Speed Cube. 어린 시절의 유행이 그렇듯 어른들의 눈에는 뭐 이거 저거 다 똑같아 보이지만 그네들이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바로 그 걸 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냉큼 주문을 완료했다. 


한 3일 정도 지났을까, 퇴근을 하고 나서 보니 바닥에는 다급하게 찢어진 갈색 포장지가 보이고, 둘째 녀석은 내려와서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무언가에 열중해 있다. 드디어 도착을 했구나! 한국의 새벽 배송과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마존 덕분에 필요한 선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아직은 뭐가 잘 안되는지 그렇게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아빠가 한번 해볼께 하고 받아 들었는데, 한줄 맞추고 나면 바로 다음줄이 섞여 들어오고 역시나 맞춰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예전에 뻑뻑하게 간신히 돌아갔던 그 촉감이 아니고 손가락에 약간만 힘을 주면 촤라락 하며 휙휙 돌아간다. 작은 정육면체 조각들도 끝 부분이 둥글게 깎여 있어서 위 아래 좌 우로 돌아가는데 아주 부드럽다. 아, 이래서 Speed Cube 였구나. 


한 일주일을 방과후에 붙잡고 있더니, 친구들과 서로 맞추는 비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니, 유튜브에서 뭘 찾아보고 하더니, 어느날 쑤욱 반듯반듯 맟줘진 큐브를 내 민다. 오! 뭔가 맞추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먼저 중앙에 십자 모양을 만들고 돌리며 각각 면을 순서대로 맞추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요리 조리 돌리며 눈을 빛내며 맞추는 그 모습이 우리 아들이지만 고놈 참 귀엽다. 


회사에서 만나게 되는 많은 높으신 분들은 대부분 성격이 급하다. 원래 급한건지, 회사 생활을 하며 급해진 건지, 급해서 그 위치까지 올라가신 건지.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적인 해결방안을 찾는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탁월한, 기발한, 획기적인 전략이 있어서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고 경쟁사를 압도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런 해결책은 없다. 즉각적인 해결책을 넘어서서 이젠 또 단순하고 명확하고 상식적인 걸 찾는다. 바쁘신 그 분의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 먹어서는 안되고, 한마디로 이해가 되어야 하고, 그분의 인생 경험에 비추어 보아 무리가 없어야 한다. 다양한 전략을 검토하는 보고서가 위 아래로 수십회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 시장 상황이 바뀌거나, 문제 자체가 없어지거나, 검토를 지시한 분이 바뀐다.


문제를 푸는 과정은 항상 그렇다. 쉽게 한번에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고 돌려보면, 반대쪽의 색깔이 달라져 있다.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별것 아닌것 처럼 보이는 작은 문제 하나가 골머리를 싸매게 만든다. 끙끙 고민하다가 갈등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냥 해결하지 말까. 아니면 이걸 몰래 잘 분해해서 모양대로 조립해볼까? 하지만 참고 규칙에 따라서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 해결이 된다. 다음에는 조금 더 잘 풀수 있을 것이고, 함께 참여 했던 사람들과는 동료의식이 생긴다.  현장에 해결책이 있다는 격언은 결국, 현장에서 이루어 지는 수 많은 사소한 문제들을 함께 차분하게 풀어 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회사 연차가 쌓이다 보니, 어느덧 점점 피라미드의 상층부로 어어 하며 밀려 올라가게 된다. 굳이 미끄러져 내려가고 싶지는 않지만, 점점 늘어나게될 그 많은 책임감들이 걱정된다. 요새는 가끔 생각해 본다. 내가 저분의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시장환경은 급변하고, 경쟁사는 치고 올라오고,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고,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재경에서는 투자 최소화, 비용 절감을 요청하고. 딱히 답이 없어 보이는 그 상황 속에 내가 주인공이 된다면 나는 과연 탁월하게 그 문제를 해결하고 당당하게 리더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아.. 답이 안 보인다. 아직 내가 그 자리가 아닌것이 다행스럽긴한데..


언제 어떻게 무엇을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기에 미리 준비 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 단지, 너무 급해지지 않기를 다짐해본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문제를 살펴봐야지. 내가 고민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들을 같이 하는 다른 동료에게 미루고, 존재하지 않는 탁월한 해결책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기를. 완전한 해결책이 보이 않아도, 지금 당장 필요한 한가지를 열심히 최선을 다 해서 해 나가기를. 풀리지 않는 문제와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몰려와도 괜시리 그 마음의 부담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쏟아내지 않기를. 안 된다고 해서 잘못된 방법으로 억지로 해결된 것처럼 꾸미지 않기를. 잘 모르겠다고 꽁꽁 숨겨 놓고 맡겨진 책임과 권한을 방치해 버리지 않기를. 


이렇게 한다면 웬만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이렇게 해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는 결국 나의 능력 밖의 일이니, 그때는 아름답게 포기하고 나의 세계로 돌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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