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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출내기 Oct 19. 2023

아이슬란드 여행

보통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에 의해서 통제된 자연을 만나게 된다. 도로 사이 사이에 서 있는 가로수, 보도블럭 옆의 잔디, 건물 사이의 정원. 충분히 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어버릴 수 있는 공간이지만, 녹지에 대한 법적 규제 때문인지, 설계자의 취향인지 간신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푸른 공간을 보게 된다. 그나마 독일은 도심지의 녹지 공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터라 곳곳에 공원과 산책로들이 있지만 서울에서의 녹지는 위태롭기 그지 없다. 일전에 방문했던 파리의 가로수들이 직사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기에 찾아보니, 과거 절대왕정 시절 나무 까지도 국왕의 통제 아래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 이래 저래 도심의 자연은 길들여진 반려동물을 떠올리게 한다.


이곳은 과연 지구인가? 아이슬란드에 처음 도착해서 떠나는 그 순간까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던 질문이었다. 가장 날씨가 좋다는 7월의 어느날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아이슬란드의 발음도 힘든 레이캬비크 공항에 도착했다. 일부 도심 지역을 제외하고는 숙소를 찾기가 힘들고, 그나마 사진속의 에어비엔비 숙소가 거의 허허 벌판의 오두막집에 가까웠던 터라 고심끝에 작은 캠핑카를 빌리기로 했기 때문에, 공항의 셔틀 버스를 타고 가장 먼저 렌트카 사무소에 도착 했다. 도시에서 볼수 없는 거대한 바퀴의 대형 픽업 트럭 뒤에 캠핑용 공간을 개조해서 덧 붙인 약식 캠핑카를 빌려서 황량한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니 더더욱 이 공간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여행은 총체적인 새로움과의 만남이라는 부분에서 아이슬란드는 그 기대를 상당부분 충족시켜주는 곳이었다. 길가에 놓인 언젠가 화산재 였을 작은 돌 하나 부터, 피어 있는 들 꽃들, 갑자기 마주하게 되는 폭포와 거대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언젠가 지구 과학책에서 보았던 원시 지구의 모습이 이러 했을까. 수십억년의 세월이 흘러 많은 것들은 자연과 인간의 풍파에 마모 되었는데, 이곳은 이제 막 깨어진 돌조각 처럼 거칠고 날카로웠다.  화장실과 부엌 등 모든 편의시설을 작은 바퀴로 떠 받치고 있는 대형 캠핑카가 아닌, 4륜 구동의 픽업 트럭위에 실려진 가볍지만 기동력이 뛰어난 자동차와 함께 다녔기 때문에, 사실 어느곳에 멈춰서든 하룻밤을 보내는 것 정도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광막한 허허 벌판과 돌로 가득한 계곡, 차가 휘청거릴 듯 불어오는 바람, 수시로 몰아치는 검은 빗줄기는 나도 모르게 다음 목적지로 불을 밝히고 있는 캠핑장으로 서두르게 하였다.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이 갖추어진 그곳에 이르러서야 오늘 하루 몫으로 정해진 그 길을 무사히 건너왔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잠을 이룰수가 있었다.

 벌판에 그냥 갑자기 뭔가 거대한 흙더미가 불쑥 올라와 있다. 보통의 산은 입구와 능선과 계속과 정상이 있고, 여러 나무와 식물들이 뒤덮고 싱그러운 생기를 뿜어 낸다. 하지만 이 거대한 분화구들은 이러한 기승전결의 순서나 오랜시간 동안 다른 생명의 안식처로 채색된 흔적이 전혀 없이 바로 얼마전에 펄펄 끓는 용암을 토해 냈었을 법한 시커먼 모습으로 우뚝서 있다. 한 줄로 정리해 놓은 등반 가능한 길을 따라 둘러 둘러 분화구를 올라가 보면 저 아래 빗물이 고인 이제는 막혀버린 그 구멍이 있던 자리가 보인다.

시커멓던 땅이 노랗고, 붉에 물들어 있는 곳, 매캐한 유황냄세가 나는 곳이다. 비가 부슬 부슬 내렸던 날, 바로 앞에서 꿀렁 꿀렁 리드미컬한 옥빛의 지하수가 터져 나온다. 도대체 딱딱한 이 땅 속에 어떤 것이 숨어 있는지. 잔잔해 졌다가 다시 터져 나오기 까지 점점 고조되는 그 물 안의 물은 분명하게도 꾹꾹 참고, 눌러가며, 간신히 버티다가, 참을 수 없는 그 순간 터져 나오는 광경으로 필시 깊은 그 속에는 훨씬 더 거대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이 괴물은 분명히 깊고 어두운 심연을 박차고 올라올 것이고, 그때는 피어오르는 수증기나 한 줌 물보라가 아닌 거대한 폭팔과 함께 솟아 오를 것이다.

굽이 굽이 산길을 한참 올라가다 보니 깎아지른 듯한 거대한 절벽이 나온다. 육지가 바다와 만나는 해안선이 보통 완만하게 만나는 그 자리가 수백미터 높이의 절벽으로 깎여 내려가 있고, 그렇게 이어진 해안선이 까마득하게 멀리까지 이어져 있다. 이정도 높이와 길이의 절벽이라면 이건 땅이 솟아 올랐다 라기 보다는 바다가 갑자기 땅으로 꺼진 것 같다. 바다와 육지의 온도차이, 거기에 엄청난 높이 차이가 있다 보니 미친듯이 바람이 휘몰아 친다. 어른이 똑바로 걸어가기 조차 힘든 엄청난 바람이다. 아이슬란드 퍼핀이 그 절벽에 살고 있다고 한다.


가장 서쪽인 레이캬비크에서 한참을 달려 여행의 중반에 다다랐을 무렵, 동쪽 끝에 온천으로 향했다. 이곳의 관광지가 그렇듯 그냥 땅위에 솟아난 온천 주변에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펜스만 둘러치고, 매표소와 탈의실이 있는 작은 건물로 입구를 만들어 놓았다. 따뜻하고 미끈 미끈한 우윳빛 물이 가득한 신기한 곳이다. 온천 주변에서 유황 냄세가 나고, 저 멀리 우뚝 솟은 화산들이 보인다. 낮은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이 우윳빛 온천과 맞 닿아 어디가 하늘이고 땅인지 경계가 희미하다.  


여름에만 갈 수 있다는 비포장 도로를 통해야 도달 할 수 있는 내륙지역의 하이랜드를 놓쳤고, 북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고래 구경도 지나쳤고, 오로라는 겨울에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든든하게 여정을 함께해준 캠핑카를 반납하고, 고작 3시간 30분 비행으로 다시 도심 한복판에 도착했다.


우리의 삶은 고작 어느 하나의 시간과 공간에 한정되어 있음을 새삼 느낀다. 한 조각 땅의 그 끄트머리에 겨우 한쪽 발을 거치고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사라지는 인생과 비교할때, 이 세상은 얼마나 거대한지. 신기하리 만치 완벽하게 분리되고 단절된 자아를 가지고 나의 지식과 이해관계에 따라 세계를 판단하는 소위 세계관은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겸손함을 완전히 잊어버리기 전에 우리는 종종 그 광막함과 마주할 필요가 있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계획한다면, 서쪽 레이캬비크의 도시와 잘 발달된 관광지를 지나서 저 동쪽과 북쪽으로 가보기를... 단, 꼭 날씨 좋은 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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