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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음 Mar 11. 2023

[LA 다운타운] 럭셔리 아파트에서 안 되는 한 가지!

비 오는 날 이불 빨래하러 다운타운을 벗어나다

아파트 안에서 웬만한 건 다 해결할 수 있다. 라운지에 가면 안락한 소파가 있어 간단한 작업을 할 수 있다. 포켓볼대도 있어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 얼마 전 우연히 SM 소속 그룹의 노래를 작사했다는 친구도 알 수 있었다.


야외에는 수영장과 자쿠지가 있어 따로 수영장에 갈 필요 없다. 뜻한 날씨면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스멀스멀 나온다. 정원처럼 꾸며진 곳에서 바비큐를 하며 친구들과 놀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이불빨래다. 각층마다 공용 세탁실이 있지만 이불 빨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불 빨래를 하려면 다운타운을 벗어나 코인 런드리로 가야 한다.


이사 온 지 4개월이 지나도록 이불 빨래 못했다. 2월 어느 토요일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겨울 태풍이 불어닥쳐 며칠 동안 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할 때였다. 타이밍만 잘 맞으면 비를 맞지 않고 코인 런드리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비는 거의 그친 상태였다. 이때다 싶어 빨리 밖으로 나섰다. 빨래 바구니에 이불을 꾸역꾸역 넣고, 1층으로 내려왔다.  다시 내리 시작했다.


돌아갈까 고민도 했지만 빨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빨래를 차에 실었다. 운전을 하는 동안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편, 잘 됐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없어서 한적 것 같기 때문이.


코인 런드에 도착했을 때,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주차장은 이미 꽉 찼다. 다른 차는 빈자리가 나기를 대기하고 있었다.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틈없었. 하는 수없이 다른 코인 런드리로 향했다. 여기찬가지였다. 한 번만 더 가보자고 마음먹었다.  한적한 곳에 있는 코인 런드리로 향했다. 다행히 빈자리가 여럿 보였다.


주차를 하고 코인 런드리로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랐다. 미친 가격 때문이었다. 가장 큰 세탁기 가격이 9불이었다. 가장 작은 것은 3불이었는데  아파트에서 하는 게 1불 더 저렴했다. 비싼 가격에 나도 모르게 직원에게 푸념을 늘여놓았다. 직원은 최근 전기세가 많이 올라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코인 런드리에 온 게 후회됐다. 하지만 큰 세탁기가 없는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빨래를 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비싸고, 궂은 날씨에도 코인 런드리가 만원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에 온 사람들 대부분 날씨와 상관없이 나처럼 빨래를 하러 와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든 춥든 말이다. 이것 미국 서민 애환었다. 


코인 런드리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얼굴엔 피곤이 가득하고, 생기는 없어 보였다. 무채색 옷들을 꺼내 개고 있었다.


추워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돌아가고 있는 드라이기 뚜껑에 손을 대니 좀  온기가 느껴졌다. 더 따뜻한 것을 찾아 옮기다 뚜껑 너무 뜨거워 순간 소리 질렀다. 그때  할머니와 눈이 주쳤다. 히스패닉로 뭐라 뭐라 했다. 뜨겁다는 의미였다.


간단하게 서로 말을 트자 뭔가 모를 동지애가 느껴졌다. 할머니는 드라이기 사용을 서툴러하는 나에게 도움을 줬다. 말이 안 통해서인지 직접 내 드라이기 문을 열고 빨래를 뒤집어 줬다. 이불이 둥글게 말리면 속이 잘 안 마른다는 것이다. 능수능란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열어서 다 마른빨래는 빼주었다.


이유는 설명 안 했지만 왜 그렇게 했는지 이내 알 수 있었다. 그분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그분도 미소 지었지만 얼굴엔  왠지 모를 애환이 가득해 보였다.


빨래를 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빨래가 비에 맞을세라 차 뒷문을 먼저 열고, 빨래를 가져다 실었다. 인 런드리를  빠져나가는 길에 그 할머니를 봤다. 할머니도 빨래를 다 하고, 캐리어에 빨래를 담고 집으로 걸어가고 았었다. 그녀의 뒷모습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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