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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매기는 자신의 가치는 얼마?

충동구매가 들춰낸 ‘나에 대한 인색함’과 이중성

by 나저씨

완전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어젯밤, 한 시간가량 잠이 오지 않았다. 유튜브와 블로그를 뒤적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에라, 저질러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구매 버튼을 눌러버렸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어제 큰마음먹고 디지털카메라를 하나 샀다.


리코 GR 4


귀여운 디자인과는 어울리지 않게 사악한 가격으로 유명한 카메라다. 요즘 인기가 너무 좋아 프리미엄까지 붙어서 정가로는 구하기도 힘든 제품이다. 구매를 한 것까진 좋은데 진짜 문제는 내가 사진을 별로 찍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다. 디지털카메라가 사실상 필요 없는 사람. 지금까지는 핸드폰으로도 충분히 잘 찍었고, 그걸로도 만족하며 지냈다. 그런 내가 왜 갑자기 디지털카메라를 샀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요즘의 내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올해는 나에게 참 의미 있는 일들이 많았다. 책을 출간해 작가가 되었고, 개인전을 열어 아마추어 예술가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평생 이루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일들이 한 해에 몰려서 이루어졌다. 그래서 생각했다. ‘올해 수고한 나에게 선물을 하나 주자.’ 그게 디지털카메라였다. 내가 원하는 휴대성과 감성을 모두 가진 카메라를 찾다가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을 발견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격이었다. 분명 부담되는 금액이긴 했다. 그렇지만 ‘도저히 못 살 수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가락은 장바구니 위의 ‘구매’ 버튼으로 쉽게 올라가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다가, 서글픈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마치 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넌 이 정도 카메라를 가질 만한 가치는 없는 사람이야.” 그 생각이 떠오르자, 가슴이 살짝 울컥했다. 그래서 결국,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했다. 충동구매를 해버린 것이다.


카메라 결제를 마치고 나서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나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인색할까?’ 물론 내가 구매한 카메라가 결코 저렴한 물건은 아니다. 그리고 그 카메라를 대체할 수 있는 보다 저렴한 대체품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 카메라는 1년에 한 번쯤, 나 자신을 위해 ‘수고했다’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구매를 망설였다. 왜일까? 잘 생각해 보니, 이유는 가격이 아니었다. 구매 후의 활용도나 실용성도 아니었다. 문제는, 나 스스로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정도 가격의 카메라를 쓸 자격(가치)이 없는 사람이야.”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작은 충격이 찾아왔다. 올해 정말 많은 것들을 이루어냈는데도 마음 한 편의 허전함이 사라지지 않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퇴직 전에는 절대 못 할 거라 생각했던 책 출간과 개인전. 이 두 가지만 놓고 봐도 분명 대단한 성취인데, 어쩌면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이룬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받을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은 아니야.”라고 말이다.


브런치 여기저기에 “자기 가치는 외부가 아닌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라고 수없이 써왔지만, 정작 나는 나 자신을 계속 깎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가오는 2026년에는 나에게 들이대던 엄격한 잣대를 조금 내려놓으려고 한다. 스스로의 성과와 실수에 대해 조금은 더 온전히, 있는 그대로 칭찬하고, 또 필요하면 조용히 질책할 수 있는, 그런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씩 연습해 봐야겠다.


그건 그렇고, 왜 이리 구매취소를 하고 싶지?

행복하자~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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