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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E POINT(세이브 포인트)

내 삶의 수동저장

by 나저씨


흐트러진 마음을 다 잡고, 심기일전하기 위해 나는 요리를 한다. 요리를 배우기 전에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저널을 쓰면서 마음을 다잡았는데, 이젠 그 루틴이 요리로 바뀌었다. 왜 요리를 하냐고? 요리를 하면, 잡념이 사라진다. 그저 내 앞에 있는 재료를 손질하고, 양념을 만드는 데 온 신경이 집중된다. 그리고 준비된 요리 재료를 넣은 후, 양념을 추가하면서 머릿속으로 맛을 상상한다. 그렇게 신경 써서 만든 요리와 따뜻한 밥을 식탁에 놓고 식사를 하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왜일까?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음식을 만들어 섭취하는 행위에서 오는 충족감이 아닐까 싶다.


요 한 달 동안은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개인전과 출판 준비, 그리고 어머니 병간호에 회사 업무까지 겹치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러다 보니, 개인전을 마치고 난 후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몸도 피곤해서 퇴근하고 나면 손도 까딱하기 싫었다. 그렇게 약 일주일을 보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유튜브만 보면서 말이다. 물론 요리도 하지 않았다. 회사 근처 빵집이나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거나, 조리만 하면 되는 음식을 마트에서 사 먹었다.


시간은 흘렀고, 점점 정신을 차린 나는 이제 다시 기존의 생활 루틴과 리듬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오늘은 제육볶음과 미역국을 만들었다. 제육에 들어갈 돼지고기와 미역국에 들어갈 소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그리고 그 고기들을 물을 채운 용기에 각각 넣어서 핏물을 뺐다. 물론 고기를 넣은 용기엔 소금 조금과 맛술도 추가했다. 고기 비린내와 핏물을 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한 뒤, 쌀을 씻었다. 쌀을 씻을 때 나오는 쌀뜨물을 버리지 않고, 대접에 따로 받아뒀다.


그렇게 고기를 준비한 후에, 칼을 깨끗이 씻었다. 왜냐고? 이제부턴 야채를 썰기 위해서였다. 보통은 야채를 자르고 고기를 마지막에 자르는데, 왜 반대로 했냐고 의아해할 분들도 계실 것 같아 답을 드리자면 '나도 모른다.' 그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생각나는 대로 준비한 것이다. 그게 일을 두 번 세 번 하는 결과가 나와도 상관없었다. 그저 요리를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야채를 다듬기 위해 야채를 세척했다. 그리고 야채를 세척하고 난 후, 대접을 하나 꺼내 물에 미역을 불리기 시작했다. 의식의 흐름대로 한 것이다. 미역을 불리고 나서, 야채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마늘을 다지고, 양파를 썰었다. 대파도 적당한 크기로 썰었다. 그렇게 준비된 재료로 제육볶음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추장과 된장을 넣고, 설탕과 간장을 조금 넣었다. 그리고 매콤한 게 좋아서 고춧가루도 추가했다. 그렇게 양념을 만든 뒤, 물에 재워뒀던 고기를 씻어서 키친타월로 수분을 제거했다. 그 뒤 수분이 제거된 고기에 만들어둔 양념을 묻혔다. 양념된 제육볶음은 랩을 씌워서 한 곳에 두고, 물에 재웠던 소고기도 물로 헹군 뒤 키친타월로 수분을 제거했다.


수분이 어느 정도 제거된 소고기는 키친타월로 싸서 한 곳에 놓아두고, 미역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물에 불린 미역을 꺼내서 손으로 물을 짜서 수분을 최대한 제거했다. 그렇게 한 뒤, 냄비를 중불에 올렸다. 그리고 약간은 무심하게 참기름을 휘휘 두어 번 냄비에 뿌려줬다. 냄비에 충분한 열이 가해진 후 미역을 넣었다. 아직 빠지지 않은 수분기가 참기름과 만나서 냄비 주위에 엄청 튀기 시작했다. 상관없다. 나중에 청소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 미역을 넣고 볶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볶은 미역에서 특유의 비린 향이 올라온다. 그때, 소고기를 무자비하게 넣었다. 그리고 강불로 볶기 시작했다. 고기가 회색빛을 띠기 시작하면, 곧바로 받아뒀던 쌀뜨물을 투하했다. 쌀뜨물을 넣고 나선, 간장을 넣고 다진 마늘도 넣는다. 그리고 통양파를 준비해서 냄비 가운데에 그대로 넣고 뚜껑을 닫고 끓이기 시작한다.


미역국이 끓는 동안 프라이팬을 다른 화구에 올려둔다. 그리고 불을 켜서 프라이팬을 달구기 시작한다. 적당히 온도가 오르면 기름을 살짝 뿌린다. 프라이팬 온도가 어느 정도 오르면 그때 양념된 제육을 올린다. 그리고 중불에 돼지고기를 볶기 시작한다. 그렇게 프라이팬에 제육이 볶이는 사이에, 불려둔 쌀에 물을 넣어 화구에 올린다. 그리고 강불로 밥을 만들기 시작한다. 나는 압력밥솥으로 짓는 밥을 선호해서 항상 밥은 압력밥솥으로 한다. 물을 넣고 밥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제육과 미역국의 상태를 본다. 그렇게 동시에 세 가지 음식을 만들다 보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앞에 놓인 요리에만 집중할 뿐...


그렇게 해서 세 가지 음식이 준비되면, 이제 그 세 가지 음식을 식탁에 올린다. 그리고 전에 어머니가 만드신 쌈장과 김치를 함께 꺼낸 뒤, 밥을 먹기 시작한다. 이렇게 요리를 해서 밥을 먹을 때면, 왠지 게임 캐릭터가 식사를 하면 체력이 오르는 것과 유사한 기분이 든다. 몸에 힘이 생기고, 수명이 연장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면, 머리가 개운해진다. 그리고 게임처럼 체력과 정신이 모두 리셋되는 느낌이 들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는 바로 설거지를 하고, 그 뒤엔 평소 하던 루틴대로 움직인다. 절대 그냥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이다. 빨래를 한다거나,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등 예전의 내가 하던 루틴을 시작한다. 그렇게 오늘도 난 요리를 했다.


그리고 내 인생 어딘가에 세이브 포인트를 만들고, 다음 인생을 살아간다.


내 삶의 세이브 포인트(나저씨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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