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면 벚꽃 명소가 되는 동네 중학교의 한쪽 벽면이다. 어느 해 봄인가 나무에 잎이 나기 전,나목과 노란 벽이 눈에 들어왔다. 꽃과 잎이 떨어지고 드러낸 나뭇가지의 모양도 나무마다 제각각이고, 가지런히 식재된 빈 가지의 나무가 노란 벽을 배경으로 그림 같다. 저 나무에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에 매 순간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나무의 사생활이다. 세상의 나무들은 다 다른 모양으로 사계절을 지내며 아름다움을 뿜는다. 집 앞 그 붉었던 단풍나무잎도 다 떨어지고 가지를 드러냈다.
나무의 줄기는 색이 어둡고 질감은 거친데 봄이 되면 세상 부드럽고 야리야리한 꽃을 피운다. 신비로운 대조다. 꽃만 보다가 꽃의 배경인 줄기의 거친 수피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둡고 거친 저 나무의 몸통을 뚫고 어떻게 저렇게 야들야들한 잎을 단 꽃들이 나오는 것인가. 매 해 맞는 봄마다 나는 깜짝깜짝 놀라며 호들갑을 떤다. 마법이다. 어둠과 밝음, 거침과 부드러움의 극명한 대조가 삶의 이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아파트 벽 앞의 큰 나무들도 드러낸 가지에 봄이 되면 연두 잎을 내고 순식간에 가지를 뒤덮어 초록으로 무성해진다. 사진이 실물의 아름다움을 담지 못한다. 지나가면서 유심히 보게 된다. 빈 나무부터 연두 잎이 점점 짙어져 숲을 이루며 혼자 보기 아까운 장면을 펼쳐준다. 그 과정이 순식간이고 매 해 반복되어 삶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겨울이 지나면 새봄이 오고 나는 또 꽃을 처음 본 사람처럼 환호한다. 올해 봄은 유난히 꽃만큼, 채도와 명도가 다른 각종 연두빛깔을 내는 나뭇잎에 감탄했다. 꽃이 다가 아니다. 나무에게는 모양이 다른 잎이 있고 그 잎과 꽃을 피우는 어둡고 거친 줄기와 가지가 있고 그 조화가 또 예술이다. 볼 수 없는 뿌리의 세계는 다 알지 못한다. 뿌리도 뻗친 가지만큼의 공간을 흙 안에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나무 한 그루의 속을 다 알지 못한다.
내 방 안으로 들어온 올봄의 진달래다. 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진달래를 어머니는 예쁘다 예쁘다 하셨는데 나는 꽃을 좋아해도 진달래 예쁜 것을 몰랐다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세상 예쁜 진달래가 되었다.ㅎㅎ
꽃눈만 있던 빈 가지에 분홍꽃잎이 나타나더니 그 가지의 비정형적인 모양과 어우러져 작품이 되었다. 핑크 꽃이 피고 연두잎이 나타나 작은 기쁨이 터진 순간이다.
어느 겨울 갔던 충청도의 펜션 앞마당이다. 이 나무는 옆으로 보나 앞으로 보나 잘 생겼다. 가끔 뛰어나게 잘 생긴 나무들을 본다. 나무들도 수형이 제각각이라 더 아름다운 나무들이 있다. 보고 있으면 흐뭇해진다.
계룡산 입구의 겨울이다. 풍경화가 따로 없다.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과 졸졸 흐르는 냇물이, 쌓인 눈과 빈 가지의 나무들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그 안의 나는 세상의 사사로운 일들을 잊는다. 속이 시원해진다.
벌써 12월이다. 집에서 키우는 동백꽃 화분에 꽃망울이 생긴 지 꽤 오래 지났는데 꽃이 피지 않는다. 언제나 터뜨릴까. 매일매일 본다. 흙으로 빚은 것 같은 치자꽃도, 담벼락의 담쟁이들도, 빛깔이 오묘한 능소화도 내년에 그 아름다움을 또 보여주겠지. 향기롭고 앙증맞은 매화부터 별처럼 반짝이는 산수유에 귀여운 수선화 등 봄에 만날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의 꽃대궐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