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제품/금형 개발 엔지니어와 협업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
전공자가 아닌 사람도 엔지니어의 영역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마케팅, 디자인 등 제품개발 관련분야에서 일을 해본 비전공자의 입장이라면, 어려운 전문용어를 듣는 순간 아찔해진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해보려는 단계이고, 인터넷을 통해서나 다른 책으로 공부를 시도해봤어도 마찬가지로 어려워 보이는 엔지니어링 영역을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을 것이다.
“TOG님은 전공이 뭐예요?” 제품 개발 엔지니어로 일하며 마케터, 디자이너 등 유관부서 사람들에게 종종 듣던 질문이다. 나는 항상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라고 답했고, 이때 돌아오는 반응은 항상 동일했다. “아 역시 공대 출신이셔서 이렇게 어려운 엔지니어링 업무를 하실 수 있나보네요.”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지만, 주저리주저리 대답할 수가 없어서 그냥 웃어넘기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었다. '기계공학 전공자도 학교에서 금형에 대한 내용을 하나도 안배워요!' 그때 항상 대답하지 못했던 그 이야기, 마음아파서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망한 나의 사업 도전기를 예시로 주절주절 썰을 풀어보려고 한다.
철없었지만 패기있었던 2013년 스물 셋의 나는 산업기능요원으로서의 군복무를 끝내고, 대학교 복학 후 나만의 제품을 개발하여 세상에 내놓고자 하는 막연한 목표가 생겼다.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왜 하필이면 제품개발이었을까? 제품개발에 뜻이 있었다기보다 당시 기계공학부 2학년생으로, 3D 설계를 어느정도 할 수 있었고, 제조업체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3년간 복무하며 시야가 좁아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등학교에서는 전자를 전공하며 전자회로에 대한 지식도 어느정도 있었던 탓이었을까, 휴대용 LED 조명을 개발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집 근처에 있었던 구로기계공구상가를 뛰어다니며 전자회로 부품과 LED, 스위치, 건전지 등 샘플을 받아서 방 한 켠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느라 내 방은 어두워지지 않았고, 그렇게 조명의 내부 회로에 대한 구상을 마쳤다.
이제 외장재 차례, 대학교 수업시간에 3D설계 툴을 배웠고, 자랑을 한마디 하자면 나는 친구들이 설계 과제를 도와달라고 찾아올 만큼 설계 툴을 잘 다루기로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멋지게 3D제품설계를 해냈다. 여기까지만 해도 돈을 많이 벌 생각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설레고 기뻤던 기억이 난다.
멋지게 3D 설계를 완성한 후에는? 그 다음에는 플라스틱으로 제품을 멋지게 만들어 내면 되는 거 아니겠나, 그럼 플라스틱을 사러 가면 되나? 아닌가 플라스틱은 어떻게 만드는 거지? 여기서부터 멘붕이 시작됐다. “나는 분명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2학년 학생인데, 왜 플라스틱으로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모르는 걸까? 아직 학부과정을 다 마치지 못 해서일까?” 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커리큘럼을 아무리 찾아봐도 플라스틱 제작 관련 내용이 없었다. 관련이 있어 보이는 화학공학과 커리큘럼을 봐도 관련된 내용이 없었다.
이후 인터넷과 전문서적을 열심히 뒤져가며 공부했고, 금형과 사출에 대해 어설프게 알아내어 관련 업체들과 미팅을하고 설계를 다 뜯어고치고... 등등 여러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실제 제품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아무튼, 나의 사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도 금형과 사출 관련 지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럼 다른 유관 전공이 있냐고? 일부 대학과 전문대학에서 금형 관련 학과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지만, 그 수가 매우 적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공자여서 금형과 사출, 플라스틱을 잘 모른다라는 말이 성립되기 어렵다. 애초에 금형 전공이라는게 없으니까.
엔지니어로 열심히 일을 할때에도 우수 인원을 선발하여 회사에서 대학원 비용을 일부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위해 대학원을 열심히 알아봤지만 적합한 대학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니 엔지니어의 영역이라고 단정짓고 겁먹지 마시고 이 글들을 읽으며 천천히 따라오길 바란다. 실제로 대학교에 출강을 나가보면 기계공학, 화학공학 등 유관 전공자들도 금형에 대해 배워본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여러분들과 협업하는 콧대높고 전문지식을 많이 알고있어보이는 엔지니어들도 시작은 비전공자와 동일했을 것이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엔지니어 꿈나무들도 그러할 것이다. 실제로 그들의 업무를 당장 수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한 수준의 지식이라면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다. 유관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어느정도 깊이의 지식을 가져야 하는지, 다년간 협업을 진행하며, 그리고 그들에게 강의를 진행하며 정리된 내용을 쉽게 풀어보도록 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