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수 Mar 16. 2024

바다 옆에 산다는 것은 낭만적이지 않다.

부산에 살기로 결심한 삶에 대하여

타 지역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부산 해운대에 거주하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고 나를 소개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바다뷰 카페에서 일할 수 있어서 부럽다, 언제든 바다에 놀러 갈 수 있어 좋겠다, 환경이 살기 좋지 않냐 등등.


그렇다. 마음만 먹으면 작업 장비를 들고 해운대나 광안리 바다뷰 카페에 가서 일할 수 있다. 그리고 집에서 25분 정도 걸으면 바다로 놀러 갈 수 있는 것도 사실이고, 어디든 사람이 많아 복잡한 수도권과 달리 한적한 공간이 많아 살기 좋은 환경임에도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부산에 사는 것을 낭만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든다.


20대 중반, 일자리 없이 백수로 지내던 나는 결국 수도권에 취직하게 되어 자취를 하게 되었다. 항상 아파트의 10층 이상에서만 살았던 나는 첫 반지하 원룸 생활에 적잖아 우울감이 느껴졌다. 늘 바다를 끼고 살았던 터라 도심 어딘가는 탁 트인 시원한 여백이 있었는데, 수도권 근처는 전부 아파트, 고층건물, 아파트, 고층건물... 어딜 가나 여백이라곤 찾을 수 없이 건물만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자취방 근처의 공원은 평일이든 주말이든 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겼다. 공원 어느 구석 하나 내가 쉴 여백 한켠 조차 찾을 수 없었다. 출퇴근 시간은 더욱 지옥이었는데, 쏟아지는 사람들 작은 틈 사이에 끼어 대중교통을 타는 건 가장 힘든 일이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울에 산다고는 들었는데, 세상에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1년 만에 힘들었던 수도권 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집에 돌아가는 안도감. 그리고 수도권에서 적응하지 못했다는 패배감. 두 마음을 안고 부산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부산에 살 때는 바다냄새를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집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짙어지는 짠 비린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그렇구나, 바다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늘 바다와 함께하는 거였구나. 답답했던 마음은 곧 짠 바다 냄새와 함께 깨끗이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바다를 늘 품는 삶이 꽤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산에서 산다는 것은 일자리가 거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자연스럽게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프리랜서를 떠올릴 수도 있다. 글을 쓰는 현재는 회사를 다니면서 집에서 부업을 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몇 년 동안 프리랜서로 활동했던 적도 있다. 지방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한다는 것. 그것마저 수도권에 사는 프리랜서들보다 일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꽤 모를 것이다.


나는 각종 외주 구인 플랫폼을 이용하여 외주를 구하였다. 아 이건 생각보다 재밌겠다, 하던 일은 대부분 주 1-2일 사무실에 나와 출근하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알겠지만 사무실 대부분은 수도권에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운 좋게 프리랜서로 4개월 동안 집 근처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했던 적도 있었지만 단 한 번뿐이었다. 프리랜서 생활 중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한정적인 외주와 개인창작, 그리고 다행히 운 좋게 취직을 하게 되어 현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었다. 한정된 선택지 중에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다 옆에 사는 삶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수식하는 단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