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흘리그림작업장, 시머어니와 함께 한 기록
시어머니의 칠순을 기념한 5박 6일의 제주여행, 사람들은 말한다.
2박 3일도 아니고 시댁과 5박 6일을 왜??? 난 단순히 제주도에 가는데 짧게 가는 건 너무 아쉬우니깐.... 그런 거였는데 다들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를 본다.
어쩌면 내가 참 단순한 며느리자 아내이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하고 닥치면 또 쉽게 혹은 열심히 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닥쳐서 해놓고 나서 내가 미쳤지.... 하는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시댁이 편안하고 시어머니가 참 좋으신 분이시니깐 가능한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 바쁨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이제 1주도 남지 않은 시간 시댁과 제주에서의 일정을 결정해야 했다. 그중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한 건 선흘리 할망들의 그림작업장이었다.
가장 막내 불할망의 연세 73세, 최고령의 무지개 할망의 연세는 96세, 그들이 선흘리의 남자와 결혼을 하고 살아온 역사가 고스란히 그림에 남겨졌다. 할망들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맞닿아져서 어머니에게도 노후의 삶을 어떻게 그려나가실까,,,, 생각해 보고 도전이 되시면 좋을 거 같았다.
우리 시어머니는 가난했던 시절 식당에서 일하다 아들이 중학생이 될 무렵 작은 백반집을 하기 시작하셨다. 아직도 그 자리 그곳에서 그 식당을 하고 계신다. 돈 한 푼 쓸 줄 모르는 어머니, 중학교 시절 고기한점 먹어본 적 없다던 당신의 아들, 즉 나의 남편, IMF로 집안 가세가 무너져 빚독촉을 하는 사람들, 남편은 그 이후 제대로 된 직장 한번 없이 돈벌이를 거의 하지 못한 채로 실패를 거듭했다. 그리고 술로 지새운 그 긴 시간 동안 뇌출혈로 쓰러져 중풍이 걸리셨고 다시 몇 년 후 다시 쓰러지시고 돌아가셨다. 빚만 남겨둔 채로 말이다. 그 빚을 남편과 할머니가 갚아나가며 고생한 시절의 이야기를 열 번도 넘게 들은 거 같다.
어머니의 딸, 나의 시누이 즉 남편의 누나 이야기는 더 절절하다. 총명했다던 누나는 심하게 체하고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다가 개가 방으로 뛰쳐 들어와 놀랬고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간질, 발작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하신다. 동네 돌팔이 의사는 가망이 없으니 아이를 데려가라 했고 숨만 쉬던 아이에게 오리기름을 먹였다고 한다. 한 달 후 기억적으로 깨어난 아이는 이전의 총기를 잃었다. 정신지체를 갖게 되었다. 그 가난한 시절 큰 병원 한번 못 가고 약만 먹었더도 정확한 진료만 받았어도 되는데 참 안타깝다. 그런 시누이는 섬유공장에 다니면서 만난 나이 지긋한 한 남자와 20대 초반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돌이 될 즘 남편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인생에서 짧고 행복했던 시절은 아마도 그때뿐이었을 것 같은 나의 시누이,,, 그녀를 보면 딱하기도 하지만 나의 시누이이자 남이기에 답답하기도 하고 짐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참 훌륭하게도 컸다. 그건 아마도 엄마의 역할을 대신한 인품좋은 할머니 덕분이 아니엿을까 싶다. 어느덧 잘 커줘서 일찍 취업도 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커줬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나에게 이 시누이가 여행 내내 참 답답하게 군다. 물 한잔 자신이 떠먹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멀뚱이 있고 식당에서 먹는 모습을 보면 식탐이 넘치고 퉁명스럽고 뚱한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내내 난 더 퉁명스럽게 그녀를 대한 거 같다. 남편도 너무 답답했는지 엄마에게 한소리를 하자 어머니의 왈 "나는 한 편생 이렇게 살았어, 나 죽을 때까지 감당해야 한다~ 너무 그러지 마라"라고 하신다. 울컥했다.
며느리로서 나를 생각해도 가끔은 내 팔자야~~ 내가 바보지, 참 단순하다.. 바보 같다 생각하지만 문뜩문뜩 어머니를 생각하면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인생이 참으로 딱하다. 정신지체를 가진 딸, 경제적 능력은 제로인 자신의 남편, 그마저도 일찍 가시고 빚 갚느라 모아둔 돈은 탕진하고 작은 백반집의 거센 아저씨들을 상대해야 하는 마음씨 좋은 아줌마의 인생...
그래서인가? 어머니는 부족한 딸아이의 손주가 늠름하게 잘 커주고 아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도 잘하고 학생회장도 하고 지금은 안정된 직장을 다닌다. 거기다 요즘 시집장가 못간다며 우리 집에 이렇게 똘똘한 며느리가 왔다며 칭찬일색을 하고 (사실 난 참 무뚝뚝한 며느리다) 예쁜 손녀가 둘이나 있는 지금의 이 시간들이 너무 행복하다 하신다.
인생에서 가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살아가시니 그런 것만 같다.
외부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상대하고 아침밥장사가 대부분의 소득인 백반집이 이제는 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워졌다. 몸은 예전 같지 않으시고, 장사도 잘 되지 않고 오는 사람들에게 매번 푸짐하게 밥상을 차려주는 어머니는 근래 이렇게 말씀하신다. 순두부찌개 3천 원에 팔았던 시절이 더 많이 남았어. 요즘은 8천 원에 팔아도 남는 게 없다. 맞는 말이다.
이제 이 작은 식당을 닫으면 어머니는 어떤 일상을 사실까? 한 평생 일없이 살아보신 적 없는 어머니, 어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수영도 다니시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도 실컷 하셨으면 좋겠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자기 돌봄을 위해 갖추는 기본 베이스들이 너무나 많은데 하물며 어머니에게 하루의 한 시간, 한 꼭지만이라도 선흘리 할머니들처럼 열정을 다하고 노력을 다하고 행복을 다할 무언가가 생기시면 좋겠다.
해야만 할 것, 살아내야만 할 것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즐기고 싶은 것, 감사한 것들로 채워지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