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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Jun 04. 2024

3번째 까미노 데 산티아고 day21

오스딸 데 오르비고에서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

2024년 4월 23일 날씨 상당히 맑음. 아침 기온이 무려 영하였음. 추워라...

Hospital de Orbigo ~ Murias de Rechivaldo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   22km

밤새 좀 춥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더 자기는 무리다 싶어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방문을 열었는데 으앗! 춥다. 이렇게 추울 수가 스마트폰을 열어 기온을 보니 영하 2도. 화장실도 거의 오픈되어 있어 좌변기에 앉는데 엉덩이가 몹시 시리다. 으...

준비한 과일 등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아스또르가를 향해 출발한다. 보통은 대성당 Catedral이 있는 아스또르가 Astorga에서 쉬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아스또르가 공립알베에서 머물지 아니면 더 가서 머물지.


오르비고를 빠져나가며 모닝커피를 한잔 하려고 했지만 문을 연 곳이 없다. 마을을 빠져나가면 양쪽으로 경작지가 펼쳐진다. 밭고랑이 햇볕을 받아 선명한 골을 보여주는데 나름 기하학적인 모습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 아침 햇빛에 선명해진 밭고랑

15분쯤 걸어 Villares de Órbigo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에 도착하지만 역시 문을 연 바르가 보이진 않는다. 앞에는 긴 능선이 보이는데 산을 넘어야 하나 생각하고 앱의 지도를 보니 왼쪽으로 길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비야레스 데 오르비고

능선을 넘어 약간 오르막 길에 다음 마을인 산띠바녜스 데 발데이글레시아스가 나타나고 마을 끝의 거대한 트랙터가 드나드는 공장 비슷한 곳을 지나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언덕 정상을 항해 오르는 순례자들. 꽤 많이 보인다. 

언덕 정상부에는 순레자의 조각상과 십자가라는 이름을 가진 쉼터가 나온다. 그리고 돌 십자가 뒤쪽으로 보이는 나무 뒤쪽에는 야외 화장실로 이용되는 듯한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화장실을 좀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화장실을 만들어 경관을 해치는 것보다 자연 방뇨가 더 나아 보이기도 한다.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또 쓰레기가 될 건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인지 그냥 돈이 없어서 안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Cruz y escultura del peregrino 끄루스 이 에스꿀뚜라 델 뻬레그리노. 순례자의 십자가와 조각상

언덕에서 잠시 쉬며 다른 순례자들에게 기념사진도 찍어주고 간식도 좀 먹다가 다시 걸음을 이어가는데 키가 그렇게 크지 않은 초록 나무숲 사이로 갈아놓은 밭과 농로의 황토색 그리고 그 길 위를 걷는 순례자와 하늘의 파란색이 조화를 이뤄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그림 같은 풍경
 아직도 눈 쌓인 산악지대가 있다. 

언덕을 다 내려오면 다시 평탄면이고 밀밭이 펼쳐진다. 

서비스 시설이 없는 지역이다 보니 아스또르가를 6KM 정도 남긴 지점에 간이 바르가 운영되고 있다. 과일 등의 간식거리와 커피류의 음료를 파는데 수도 설비가 없어 설거지가 좀 위생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담배만 하나 말아 피우고 다시 출발.

평탄면 끝에 이르자 멀리 아스또르가와 아스또르가 대성당이 보인다.  

나무 사이 언덕 밑으로 멀리 아스또르가 대성당이 보인다.
Crucero de Santo Toribio 중세에 또리비오라는 주교가 누명을 쓰고 아스또르가를 떠나며 이곳에서 앉아 신발을 털며 아스또르가의 먼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가겠다며.

평탄면에서 다시 긴 언덕을 내려와 San Justo de la Vega 산 후스토 데 라 베가를 지나 아스또르가 바로 앞마을까지 접근했다. 

중세 다리 위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대성당과 주교궁(가우디가 처음에 설계를 했던)이 보인다.

중세 다리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를 따라 다리를 건너면 기찻길을 건너는 꼬불꼬불 긴 육교를 건너는데 육교 정상에서 보는 아스또르가 전경을 보는 재미가 또 있다. 

Puente de la Molinera
Puente vía del tren de Astorga
육교 위에서 바라본 아스또르가

짧지만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자 아스또르가 공립 알베가 반갑게 순례자를 맞이하는 듯 우뚝 서 있다. 입구에서 하루 묵어갈지 그냥 통과할지를 잠시 고민했다. 아직 12시도 안 된 시간이라 점심과 아스또르가 성당 관람을 하고 다음다음 마을쯤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아스또르가 공립 알베르게. 이곳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상당히 좋은 곳이다. 하루 묵어가기에 좋다.
Ayuntamiento de Astorga 아스또르가 시청

에스빠냐 광장 주변 식당에서 꼼비나도 쁠라또스로 점심을 해결하고 아스또르가 대성당으로 간다. 

Monumento a los Sitios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군과의 전투 중 하나가 있었던 곳으로 이때 전사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기념비
철거되어 보기 싫어진 빈 건물 벽면에 그려진 벽화

아스또르가 대성당 뒤쪽에는 가우디의 영혼을 팔아 운영되고 있는 주교궁이 있고 성당 진입 전에 성 마르따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아스또르가 대성당과 그 앞의 마르땨 성당

주교궁의 경우 가우디가 지었다고 광고하고 있지만 가우디는 교구청에서 건축비용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참견을 일삼자 도면을 불태우고 공사를 포기했다고 한다. 현재 전시돼 있는 도면은 관청에 제출한 허가 도면일 뿐이고 구조와 골격에 대한 구체적인 도면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이후 공사는 리카르도라는 지역 건축가가 완공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의 주교궁의 건축가는 가우디와 리카르도라고 기록해야 하지만 가우디를 팔아먹기 위해 가우디의 건축물로 소개하는 가우디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오로지 지하층 벽돌아치 구조에서만 가우디의 느낌이 있는 건물이라고 얘기하는 건축 연구자들의 주장이 있다. 참고로 관람을 하진 않았다. 

가우디가 설계했다고 광고하고 있지만 지하를 빼고는 리카르도라는 지역 건축가가 지었다고 하는 주교궁. 가우디 팔이 쩌는 건물
Astorga Catedral de Santa María
대성당 옆의 Iglesia de Santa Marta

아스또르가 산타 마리아 대성당은 왼쪽과 오른쪽 종탑의 색상이 다른데 원래의 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돌의 색상이 달라서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용된 돌은 사암이라고 하며 13세기에 만들어진 외벽 속에 1471년 착공해 18세기까지 건축되었다고 한다.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바로크, 고딕 양식이 골고루 사용되었는데 이는 한 번에 공사가 끝나지 않고, 개축과 증축을 5~6백 년에 걸쳐 진행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Cathedral of Santa María de Astorga 아스또르가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
대성당 입구의 궁륭과 벽면을 장식한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

성당과 유물전시관을 한 시간 가까이 돌아보았다. 다른 대성당에서 느껴졌던 압도적인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다양한 건축요소와 무데하르 양식이 사용된 방, 중세의 금분 필사된 성경 등 제법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다. 

성당 안의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유물인데 눈에 확 들어왔다. 매우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회랑에서 바라본 중정
중정에서 바라본 종탑의 모습
회랑 모습

유럽의 큰 성당들이 의례히 그런 것처럼 이곳 대성당에도 내부에 작은 카피야 capilla가 성당 내부의 외벽을 따라 촘촘히 설치되어 있다. 

성당 내부의 고딕 기둥, 고딕 양식의 특징은 아찔한 상승감에 있다고 한다. 상승감 쩔어...독일의 쾰른 대성당에 가보고 싶다.
중세의 서적. 컬러 인쇄가 가능했다는 점... 놀랍다. 이런 쨍한 색감의 표현이 가능하다니.
성당 내부 유물전시관의 방인데 무데하르(이슬람 양식과 가톨릭 양식이 섞인)양식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참고 : 무데하르 Mudéjar

무데하르는 레콩키스타 시기 이베리아반도 가톨릭 왕국의 무슬림 신민을 의미한다. 어원은 아랍어로 "길들여진 자"라는 뜻의 무닷잔에서 차용하였으며 다소 비하적인 명칭이다. 중세 이베리아 이슬람 왕국의 가톨릭 신민 모사라베와 대비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펌:나무위키]


화려하기 그지없는 금으로 만든 상자

성당관람을 마치고 성당 입구로 이어지는 긴 골목을 따라 나가다 보면 현대적인 성당인 Cathedral of Santa María de Astorga를 만날 수 있고 좀 더 걸어 나와 차도를 건너면 도심을 완전히 빠져나간다. 

대성당 앞으로 이어진 긴 골목에서 바라본 대서

대성당을 빠져나오는 긴 골목을 빠져 나오다 보면 현대적인 건축의 Iglesia de San Pedro de Rectivía를 볼 수 있다. 성당도 많은 곳에서 굳이 현대적인 성당을 지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성당 그대로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Iglesia de San Pedro de Rectivía

아스또르가를 빠져나와 조금 걸으면 Ermita del Ecce Homo라는 작은 성당 유적이 있는데 입구 오른쪽 돌출된 벽면에 여러 나라 말로 "신앙은 건강의 샘"이라는 글귀가 순례자를 반긴다. 신앙이 건강이 샘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정신적인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으니.

Ermita del Ecce Homo

도로옆을 따라 폰세바돈 방향으로 이어진 곧은 순례길을 따라 이어진다. 1km 정도 더 걸으니 Murias de Rechivaldo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에 도착한다. 순례길 앱을 켜보니 이곳에 공립알베르게가 있는 것으로 나와 알베르게를 찾아 걸었다. 

마을 맨 위쪽에 단층으로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알베르게가 나타난다. 나이 많은 오스삐딸레로가 주의 사항을 알려준다. 널찍한 방에는 10개의 1층 침대가 놓여있고 프랑스 할머니 한분만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쾌적하고 조용하게 편한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침대 매트리스도 스펀지가 아니라 스프링 매트리스다. 하하하!!!

씻고 빨래하고 담배하나 말아 피우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는데 산불이 났는지 연기가 피어오른다. 

마을 중간쯤의 Iglesia de San Esteban 앞에 오픈한  Bar Casa Félix에서 단품 메뉴를 하나씩 시켜 간단하지만 맛있게 저녁 한 끼를 해결했다. 

Iglesia de San Esteban
Iglesia de San Esteban

이곳 펠릭스 바르는 크진 않지만 음식에는 진심인 듯 보였다. 햄버거는 사진처럼 맛있었고, 초리소와 감자로 만든 스튜 또한 입맛에 잘 맞았다.  

바람이 차가운 해 떨어진 길을 다시 거슬러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많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10시가 다 되어간다. 난방을 따로 켜지 않아 알베르게에 준비된 담요를 하나 침대에 깔고 침낭에 쏙 들어간다.

21일 차의 도보여행도 무사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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