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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Jun 08. 2024

3번째 까미노 데 산티아고 day22

폰쎄바돈에서 꼭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 Murias de Rechivaldo ~ 엘 아쎄보 데 산 미겔 El Acebo de San Miguel까지 33km   좋은 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22일째도 비는 우리를 방해하지 않았다.


오늘의 중요 경유지인 폰쎄바돈은 1500m가 넘는 높이의 작은 산동네로 보통 아스또르가에서 출발하면 이곳에서 하루 경유하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곳을 지나 철의 십자가를 넘어 만하린을 지나 엘 아쎄보 데 산 미겔까지 갈 예정이다. 

프랑스 길 구간 중 제주도의 올레길을 가장 많이 닮은 곳인데, 이 지역의 퐁경이 제주 올레길을 만들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제주 출신으로 제주 올레길을 만든 언론인 서명숙 님이 순례길을 걷다 이 지역의 풍광이 제주도와 비슷해 올레길에 대한 영감을 준 곳이라고 한다. 


알베르게에서 6시쯤 일어나 자리를 정리하고 오스삐딸레로가 준비해 준 무설탕 요쿠르트와 바나나를 먹고 길을 나선다. 무설탕 요쿠르트라 봉다리 설탕을 하나씩 내주셨다. 세심한 오스삐딸레로 같은 이라고...^^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의 아침 풍경

하루 편한 자리를 내어 준 아담한 알베르게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출발. 

폰쎄바돈으로 향하는 길은 낮은 초목 지대 사이로 길게 놓여 있고, 일부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길은 점점 좋아지지만 낭만은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순례자 전용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도로와 순례길이 나란히 이어지는데 이 길은 계속 만났다 이별하길 반복한다. 오늘도 아침부터 순례자들이 많다.

첫 번째 마을인 Santa Catalina de Somoza 산따 까딸리나 데 소모사가 제주도의 올레길을 연상시킨다. 2016년에도 느낀 생각이지만 제주도의 풍광과 비슷한 점이 참 많다.

마을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지만 오픈한 바르가 몇 개 있어 순례자들이 간단히 차와 간식을 하며 머무는 곳이다. 폰쎄바돈까지는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조용한 동네
제주도의 돌담과 비슷하다.
마을의 돌담 뒤로 눈이 아직 쌓여있는 산악 지대가 펼쳐진다.
보수 공사 중인 까미노

다음마을인 엘 간소까지 다시 순례자 전용 까미노가 이어진다. 다양한 순례자 표지석들이 눈길을 끈다.

프랑스 길은 매년 매우 많은 순례자들이 걷는 길이다 보니 이 길을 걷다 사망한 사람도 꽤 될 테고 사망한 장소에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기념비나 십자가등을 설치한 곳이 여럿이다. 길을 걷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행복한 죽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길을 걷는 이유야 저마다 제각각이겠지만, 순례길을 처음 오고 싶게 만드는 다양한 정보의 세기와는 다르게 난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도착해서도 딱히 별 감흥이 없었고, 두 번째, 세 번째 입성할 때도 다르기 않았다. 종교적 신념이나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다면 완주는 그 자체가 큰 감동을 주지 않는다. 다만 사람마다 순례길을 대하는 생각이나 마음의 준비에 대한 편차가 매우 클 뿐. 

걷는 길치곤 상당히 넓은 순례길은 엘 간소  El Ganso로 이어진다. 

엘 간소도 쇠퇴해가고 있는 시골 마을이긴 하지만 순례자를 위한 바르와 알베르게 등의 서비스 시설이 있어 그나마 낮에는 사람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 길에는 산띠아고 라는 이름을 가진 성당이 참 많다. 이곳 엘 간소에도 산띠아고 성당이 있다. 아담한 크기의 전형적인 동네 성당 스타일로.

IGLESIA DE "SANTIAGO"
맥주 한잔과 함께하는 짧은 휴식. 하지만 난 맥주보단 콜라가 좋다. 맥주는 가끔 마실뿐.

엘 간소에서 나온 길은 다시 동쪽으로 이어진다. 예전에도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휴식처도 있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순례자들이 길을 메우기 시작한다. 이들은 아스또르가에서 출발한 이들인 듯한데 참 부지런하다. 내가 머물렀던 숙소와는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차이가 나는 곳에서 출발했을 텐데.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스페인 가족 여럿을 만났다. 대여섯 살에서부터 10대 초반의 아이들, 심지어 슬링백으로 안고 가는 갓난아이까지... 이 가족에게 순례길은 무슨 의미인 걸까? 폰쎄바돈으로 이어지는 흙길을 유모차까지 끌고 열심히 걷는다.  

중산간 지역에 만들어진 목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의 모습이 참 평화롭다. 인간들도 좀 편안하게 살면 안 되는 것일까?

한 시간여를 걷다 보면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듯한 식당 건물 옆에 멋진 경치를 보며 휴식할 수 있는 장소가 나오고 다시 한 시간 체 못 걸으면 산밑의 마지막 마을인 Rabanal del Camino 라바날 델 까미노에 들어선다.  

입구에 있는 성당 유적을 지나면 왼쪽의 상가에서 마실 것 등을 사 오른쪽 정원에서 먹을 수 있는데, 쉬어갈 만하다. 

Ermita de la Vera Cruz

마을 중심부로 진입하면 길 오른쪽으로 산 호세 성당이 나오는데 원래 있던 성당자리에 새로 지어 올린 듯 깨끗하고 화려한 제단을 가지고 있다. 좀 더 지나오면 수도원 성당인 Monasterio de San Salvador del Monte Irago가 나오는데 성물방에서 신부님 혹은 수도사님으로부터 세요를 받을 수 있고 성당 내부 구경도 가능하다. 

Ermita de San José
Monasterio de San Salvador del Monte Irago
Monasterio de San Salvador del Monte Irago
성당 내부 창에는 유리가 아니라 깨끗한 대리석판을 유리 대신 사용한다. Monasterio de San Salvador del Monte Irago

정상의 산동네 바라 아래 마을인 라바날 델 까미노를 지나 6km쯤 올라서면 폰쎄바돈이 깔끔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순례자를 맞이한다. 

정상부를 향하면서 이름 모를 보랏빛 꽃무더기와 흰빛 꽃무더기가 길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아름다운 길이 FONCEBADÓN 폰쎄바돈까지 이어진다. 

드디어 정상부의 폰쎄바돈 마을에 도착했다. 시간이 딱 점심시간이라 길 오른쪽에 새로 오픈한듯한 알베르게 겸 바르로 들어가 맛있는 점심과 맥주로 열량도 채우고 휴식도 충분히 취한다. 이곳에서 순례길 초반에 만났던 청년을 만났는데 그는 40km를 넘게 걸어 이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기특한 청년이지만 또 무모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처음온 친구가 아니라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저 격려가 필요할 뿐. 

겨울과는 달리 생기가 있는 폰쎄바돈

충분한 휴식 후 엘 아쎄보 데 산 미겔을 향한다. 조금 더 걸어가면 철의 십자가라는 순례길에서 유명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다.  

철의 심자가 옆에는 작은 성당이 지어져 있고 주변에는 벤치등이 있어 휴식을 취하러 오는 지역 주민들도 있다. 

Cruz de Ferro 끄루스 데 페ㄹ로는 철의 십자가란 뜻이고 이곳에는 기리고 싶은 사람, 잊고 싶은 기억 등을 상징하는 물건이나 돌에 글을 써 가져와 이곳에 쌓아 놓고 기원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기실 십자가 자체야 딱히 멋들어진 모습은 아니지만 순례자들이 쌓아온 의미들이 더 유명하게 만든 곳인 듯하다. 크루즈더페로의 영적 의미는 더미 위의 돌을 통과함으로써 걱정과 고통, 근심 등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것이라고 한다. 

나무 기둥 위의 철십자 가는 복제품이고 아스또르가의 산티아고 박물관에 원본이 있다고 한다. 

Cruz de Ferro

이제 길은 Manjarín 만하린으로 이어지는데 꽃들 사이로 공간을 만들며 만들어진 길이 왠지 더욱 특별한 느낌이다. 

멋진 경치를 구경하며 30분쯤 걷게 되면 만하린이 나타난다. 예정에는 사람도 좀 살았고, 알베르게도 운영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무너진 지붕을 가진 돌담만 남은 집들이 만장을 두르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얼마 전까지도 운영되었던듯한 간이 바르도 있다. 

지금은 사람의 흔적이 없는 만하린의 주택

만하린을 지나면 오늘 루트에서 가장 높은 1585m의 고개를 넘어 매우 가파른 내리막을 걸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리막의 끝에 있는 마을인 몰리나세까까지는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쁜 꽃들과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아름다운 길을 7km쯤 내려오면 엘 아쎄보 데 산 미겔이 바로 발 밑이다.

아름다운 엘 아쎄보 데 산 미겔

10시간 만에 33km를 걸어 엘 아쎄보 데 산 미겔에 도착해 기부제 알베르게에 도착했는데 문이 꽁꽁 닫혀있다. 오픈했다고 쓰여 있는데. 전화번호가 있길래 전화했더니 안에서 나오신다. 친절한 오스삐딸레로 누나(나보다 연상임에 틀림없었다)는 문을 쾅쾅 두드리라고 한다.  나무 대문이 너무 튼튼해서 손으로 두드리면 손만 아프고 소리도 잘 안 난다. 침실은 2층에 있고 1층엔 샤워실, 거실, 부엌이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돌, 나무 건물이다. 먼저 도착한 프랑스인 순례자와 우리 일행을 포함해 3명이 전부다.

근처 식당을 소개받고 저녁을 먹는데, 우리가 머무는 알베르게엔 사람이 없는데 이 식당은 순례자들로 꽉 찼다. 도대체 어디서 들 자는 것인지. 스파게티와 고기로 저녁을 먹고 또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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