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째 뽄페라다에서도 산티아고 기사단의 성을 볼 수 없었다.
엘 아쎄보 데 산 미겔 El Acebo de San Miguel ~ Ponferrada 뽄페라다까지 16km 좋은 날씨는 아직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어제 좀 길게 걸었다는 핑계로 오늘은 뽄페라다까지 갈까 아니면 좀 더 갈까 고민하다 뽄페라다까지만 가기로 마음먹고 마가리따가 준비해 준 아침을 간단히 먹고 출발한다. 요즘은 랜턴 없이 아침을 시작하기 때문에 부담이 별로 없고 출발부터 온전히 주변 경치를 볼 수 있어 좋다.
알베르게 바로 앞의 산 미겔 아르깐헬 성당은 볼 수 있는 것처럼 적혀 있었지만 어제도 오늘 아침도 내부를 볼 순 없었다. 제법 가파른 산길을 8km 정도 내려가야 도착하는 두 번째 중간 마을인 몰리나쎄까 Molinaseca (이름이 좀 이쁜 듯)까지는 딱히 커피를 마실만한 곳이 없다. 첫 번째 중간마을인 Riego de Ambrós 리에고 데 암브로스는 작은 마을에 알베르게, 호텔, 레스토랑 등이 갖춰져 있었지만 아침 일찍부터 여는 바르는 없는 것 같다.
중간 첫 마을을 제외하고는 계속 등산로(트래킹 코스)처럼 이어지고 군데군데 험한 곳도 지나야 하지만, 겨울에는 볼 수 없었던 이름 모를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어 기분이 매우 좋다. 카메라로 틈틈이 담아보지만 노출도, 색감도 보이는 것만큼 표현되지 않았다.
리에고 데 암브로스를 빠져나오면 다시 등산로 같은 까미노 길이 나오는데 잠시 평지였다가 내리막이 몰리나세까까지 이어지는데 이 길이 정말 예뻤다. 이 길도 처음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들과 같이 왔었을 때는 폰쎄바돈에서 출발해 만하린, 엘 세보를 지나오며 이미 많이 지쳐 있을 때이기도 하고 이런 푸른색이 별로 없는 시기라서 이 길자체에 대한 기억이 별로 남지 않았고 힘들었던 기억만 남은 듯하다. 초록색 잎과 하얀색의 꽃잎이 참 잘 어울리고 눈에도 잘 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이렇게 눈에 잘 띄게 된 것은 종족번식을 위해서였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든다.
내리막 모퉁이를 돌면 시야는 멀리 뽄페라다까지 닿았고, 몰리나세까가 바로 발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하산길은 발에 힘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제법 땀을 내게 하고 시간도 걸리게 만들었다.
몰리나세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전망장소에서 잠시 쉬며 말아 피우는 담배의 낭만을 즐긴다.
몰리나쎄까는 참 예쁜 마을이다. 성당이 3곳, 로만 다리로 불리는 다리, 강, 그리고 다양한 서비스 시설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하루 묵어가기 좋은 곳인 듯하다. 특히 여름에는 다리아래로 흐르는 강의 수량이 풍부하고 맑아서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최적인 듯하다.
산길을 내려서 도로에 붙어 잠시 내려오면 첫 번째로 맞이하는 건물이 슬픔의 성모님을 기리는 성당인 Ermita de Nuestra Señora de las Angustias이다. 제단 쪽을 산에 붙여서 지어진 성당인데, 원래 모습은 아닌 듯하고 성당 유적이 있던 곳에 18세기에 새로 지은 듯하다. 겉모습은 제법 큰 성당이지만 안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하며 개방하는 날이 따로 있어 내부를 볼 순 없었다.
슬픔의 성모님 성당 유적을 지나면 마을 내부로이어 지는 몰리나쎄까 다리가 나오는데 아마 서로마 시절에 만든 다리 위에 다시 다리를 놓았나 보다. 아직도 로만 다리라는 명칭이 사용되는 것을 보면.
다리 건너자마자 자리한 바르에서 콜라 한잔 마셔주며 잠시 골목의 정취를 느껴본다. 이곳 담배가게에서 떨어져 가는 가루담배와 담배 종이를 추가로 구매한다.
뽄페라다 시내로 들어가려면 보에사 강을 건너는데 서쪽으로 이어진 강변에 뽄페라다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부를 좀 볼 수 있으려나.
5시간도 채 안 걷고 기부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이른 도착이라 아직 오픈 전이고 3번째로 입실. 샤워, 빨래, 담배피우기 등을 하고 점심을 하러 주변 식당으로 나갔다.
구글을 검색해 별점이 좋은 바르으로 갔지만 문을 닫았다. 그 근처 바르에 들어가 햄버거, 돼지 어깨 햄, 하몽, 돼지 귀 볶음과 맥주로 점심을 배부르게 먹었는데 28유로쯤 낸듯하다.
점심 후 한국서 사온 유심의 기간이 다되어 신도심의 보다폰 가게를 찾아 4km 넘게 걸었다. 엄청나게 큰 쇼핑몰의 보다폰 가게서 15유로에 100기가, 28일 사용 유심으로 교체하고 알베르게 근처까지 시내버스를 타봤다. 2.5유로 내고 편안하게 도심구경을 하며 돌아왔다. 구글이 참 많은 것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
알베르게 들어가기 전에 대형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준비해서 돌아왔다. 알베르게에 들어서니 선배가 없다. 뽄페라다 성에 간듯하다. 혼자만 가다니...ㅠㅠ 나는 이번에도 산띠아고 기사단의 성으로 알려진 뽄페라다성 구경은 실패다. 카톡으로 위치를 묻고 대략 준비한 음식들로 간단히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는데, 여러 차례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즐겁게 걷는 부부순례자분도 만나고 나와 동갑인 사업가 친구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부부순례자 형님이 만든 고기스튜 비슷한 것도 얻어먹었는데, 맛있어...
중간에 비바람이 치긴 했지만 다시 금방 맑아진 하늘을 보며 또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한다.
얼마를 썼는지 기록을 남기는 행위가 큰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립 알베르게는 10유로 전후고, 기부제의 경우도 10유로 정도를 내고, 메뉴 델 디아는 15유로 내외, 커피는 1.5, 콜라는 2.5, 핀초스도 한 개에 2~5유로 정도하고 마트에서 2명의 1끼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면 15~20유로 정도.
좀 많이 쓰는 날은 45유로 정도, 덜 쓰면 15유로 정도만 쓰기도 하는 것을 보니. 요즘에는 km당 1.5유로 정도 잡으면 되겠다 싶다. 다만 숙소는 공립 알베르게나 기부제 알베르게를 이용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사설 알베르게나 오스텔, 오뗄 등을 이용한다면 숙박비용만 2배 이상을 쓰게 된다는 점만 알면 순례길에 드는 비용은 대략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