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순례거리 인증 출발점인 사리아를 지나 페레이로까지 좋은 날 속에서
Samos 사모스 ~ Ferreiros 페레이로스 까지 30km
좋은 날씨 속에서 아름다운 풍경 속을 오늘도 힘차게
잘 잔 건지 혹은 잘 못 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 느낌으로 눈을 뜬다. 사모스 알베르게의 공기는 차가웠다.
짐을 꾸려서 아직 미명의 아침 거리로 나선다.
사리아 강을 따라 나란히 선 도로의 곁 길을 3km쯤 걷다 보면 Meson Pontenova라는 이름의 레스토랑 건물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차도를 벗어나 좁은 흙 길로 들어선다. 잠깐 몇 채의 가옥을 지나면 동굴 같은 길을 만난다. 양쪽으로 키 높이만큼의 길 벽과 그 위로 나무들이 자라 흡사 동굴을 지나는 듯하다. 이 길도 스페인 가톨릭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을 것이다.
제법 긴 흙길 구간을 지나면 드문 드문 작은 마을을 만날 수 있는데, 인적을 느끼기 어렵다. 이 길은 꽤 아름답다. 발걸음이 늘 가벼울 수는 없지만 기분은 참 좋다. 간간이 만나는 오래된 성당과 주택에서는 갈리시아 지역의 특색 있는 지붕을 볼 수 있다. 넓은 판석으로 지붕을 올린 것이 물고기 비늘과 지느러미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오늘 길에서는 아직 다른 순례자를 만나지 못했다. 아마도 우리가 너무 일찍 나왔거나 늦게 나왔거나. 아마도 일찍 나와서겠지. 멀리 보이는 마을과 초원의 소들이 매우 평화로워 보인다. 물론 이곳에 살면 좀 지루하겠다 싶기도 하지만 시골 생활이야 한가할 때가 있겠는가. 늘 할 일이 천지 빼까리로 많을 텐데.
한동안 걷다 보면 경주의 감실 부처 느낌이 딱 드는 오래된 듯 보이는 석상이 있는데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기도하는 천사 같기도 하고 동자 같기도 한데 원래 어느 건물인가의 기둥 장식이 아니 었나 싶다. 매우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오래 남는 유적이다.
돌을 네모반듯하게 잘라 가지런히 놓아 만든 마을 길이 인상적인 아주 조용한 동네를 지나면, perros(개, 멍멍이)라는 이름의 아주 작은 동네와 그 동네에 어울리는 오래된 까삐야(capilla, 작은 성당, 예배당)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뻬로스를 지나면 곧 도로와 접한 Aguiada 아기아다라는 쇠락한 마을이 나타나고 뜨리아까스뗄라에서 분기한 또 다른 길인 산실 San Xil 길이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이제 사리아까지는 차도 옆 흙길을 따라 한동안 가야 한다. 사리아 도착 전 길 오른쪽에 커다란 레스토랑이 영업을 하고 있어 콜라와 또르띠아 데 빠따따스로 허기를 달래고 휴식을 취하며 담배도 몇 대 말아 피우며 여유를 부려 본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하니 대도시인 사리아가 객들을 맞이한다. 에스뜨레야 갈리시아라는 맥주 회사는 유명화가 7명의 집벽 그림을 뜨리아까스텔라부터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 7개 그려 놓았는데 멀리서도 이곳이 프랑스 길의 한 마을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집의 한쪽 벽에 커다란 인물화가 그려진 것을 길 위에서 만날 수 있어 이 그림들 모두를 찾아보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에스뜨레야 갈리시아가 후원해서 그려진 이런 집벽 그림은 영국 길과 포르투갈 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리아 강을 건너면 오르막을 오르며 구도심이 이어진다. 길을 따라 양쪽으로 알베르게와 식당들이 줄지어 서있다. 아직 이른 시간이기도 하고 얼마 전에 휴식하면서 간식도 먹은 터라 멈추지 않고 길을 잇는다.
언덕 꼭대기에 올라설 즈음 왼쪽에 작지만 아름답게 단단해 보이는 작은 성당 Iglesia de San Salvador가 자리 잡고 순례자의 발길을 잡았다.
성당을 지나면 정상부의 평평한 지대에 사리아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mirador가 자리하고 있는데 나무가 높이 자라 전망대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나는 길에 사진 찍는 포인트가 될 뿐이었다. 나무를 좀 잘라내면 좋겠다 싶지만 나무를 보호해야 한다면 전망대에 단을 쌓아 높이면 어떨까 싶었다.
전망대를 지나면 길은 왼쪽으로는 공동묘지가 오른쪽에는 수도원이 자리한 곳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서 한눈팔면 길을 놓친다. 수도원 알베르게를 보며 걷다 되돌아와 길을 찾았다.
언덕 정상에서 좌측으로 틀면 급한 내리막이고 오래된 중세 다리를 건너면 철길을 만나고 그 길은 다시 한적해졌다.
제법 울창한 숲길을 오르면 길은 다시 평원을 만난다.
사리아를 지나 첫 번째 마을인 바르바델로를 만나는데 앞쪽은 까사 바르바델로가 자리하고 있고 좀 더 걸어가면 바르바델로 본 마을이 나오는데 역시 작은 마을이다.
바르바델로 본 마을에는 공동묘지 역할도 같이 하고 있는 바르바델로의 산티아고 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 순례길과 관련 있는 성당인 듯하다.
바르바델로를 빠져나와 다시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 보니 차도와 만나는 곳에 A Serra라고 하는 마을이다. 집들이 몇 가구 있고 바르가 있어 땡볕을 피해 냉큼 들어가 간식을 먹어 볼까 메뉴판을 봤는데 아... 딱히 먹을 것이 없다. 딱딱한 보까디요만... 그래서 난 콜라만 한잔 마시고, 선배님은 맥주 한잔과 보까디요를 시켜 간단히 허기를 달래 본다. Taberna da serra의 야외 테이블(보통 떼라사 terraza라고 한다)에 앉아 담배를 한대 말아 피는 여유까지 부리고야 다시 길을 나섰다. 가끔 순례자들이 앞질러 가는 것을 뺀다면 사람 만나기가 참 쉽지 않다. 한 시간 반쯤(6km) 나무밑의 그늘을 걷기도 하고 땡볕을 맞으며 걷다 보니 멋진 나무를 앞 경치로 둔 Casa Morgade에 이 집의 시그니처 과일 음료를 커피나 콜라 보다 두 배이상 비싼 금액을 주고 시켰는데 아 이 음료 맛있네. 맛있다고 해도 비싸다는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걸을 만큼 걸었다고 생각이 되어 스마트 폰으로 앞마을의 알베르게를 검색해 보니 ferreiros 페레이로스라는 마을에 꽤 좋아 보이는 사설 알베르게가 있어 오늘은 이곳에 머무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마을 들어가기 바로 전에 일광욕을 하고 있는 도마뱀 한쌍을 만났는데 이 녀석들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스페인 순례길을 꽤 걸었는데 이런 녀석들은 보지 못했었다.
알베르게를 찾아갔는데 접수는 아래쪽의 바르에서 한다고 해서 다시 식당을 찾아 내려오니 식당에는 여러 팀들이 식사를 하거나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우리의 침대는 없었다. 급히 공립알베르게로 발길을 돌려 입실을 했는데 마지막 남은 침대 두 개를 우리가 차지했고, 곧이어 도착한 젊은 남녀 4명으로 이루어진 팀은 침대가 없음을 확인하고 한참이나 대책회의를 하더니 알베르게를 찾아 길을 나섰다. 아마 뽀르또마린까지 가야 숙소를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뽀르또마린까지는 2시간은 족히 걸어야 하는 거리라 나는 이들이 안쓰러웠고 한편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좀 더 늦었다면 우리가 뽀르또마린까지 걸어가야 했을 것이다.
아까 들렀던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빨 거 빨고, 씻고 담배도 피우며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지길래 노을이 예쁠까 싶어 카메라를 들고 나왔는데 예쁜 저녁노을을 보여주진 않았다.
이곳 알베르게는 좀 다닥다닥 붙은 느낌이라 그다지 쾌적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10유로를 내고 한 몸 누일 수 있으니 그저 다행이고 행복할 뿐이다. 역시 행복은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까지는 나흘 정도면 도착이다. 내일은 100km 표지석을 만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