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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Aug 07. 2024

3번째 까미노 데 산티아고 day28

뽀르또마린을 지나 가성비 식당이 반가운 아이렉세까지

2024년 4월 30일 화요일 100km 지점 돌파하면서 이제 나흘 거리만 남았다. 

Ferreiros 페레이로스 ~ Airexe 아이렉세 까지 27km 


방하나에 빼곡한 침대 1층과 2층에서 부산스럽게 출발을 준비하는 순례자들보다 조금은 일찍 페레이로스 공립 알베르게에 이별을 고하고 구름 때문인지 아직 어두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10여분 걷자 100km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는 작은 마을에 도착해 사진을 하나 담고 뽀르또마린을 향해 바로 이동한다. 딱히 100km 표지석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거리를 인증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그저 걸으러 왔으니. 매일 걷는 일은 처음 한 시간이 제일 힘든 듯하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릎 통증도 약해지고 웜업 된 다리는 좀 더 빠르게 움직여진다.

누군가의 염원이 담겼을 자갈돌들이 표지석 위에 주인인척 늘어져 있다. 
녹색의 나무들 사이로 난 흙길 위로 걷는 파란색 순례자들. 길이 참 좋다. 
길을 따라 쌓아 올린 담장 안쪽에서 예쁘게 생긴 말이 나의 멋짐에 반해 한참을 바라본다. 당근은 없다 이놈아.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 양 옆으로 밀인지 아니면 소 먹이용 풀들인지 모르겠는 초록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어 눈이 시원해지면서 기분도 상쾌해진다.  

너덧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며 길은 계속 내리막으로 이어지고 2시간쯤 걸은 후에야 뽀르또마린 Portomarín입구의 다리에 도착했다. 

멀리 아래에 뽀르또마린이 시야에 들어온다. 

뽀르또마린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미뇨강 Río Miño을 가로지르는 어질어질 한 높이의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두 번째 건너는 오늘도 8년 전과 같이 비가 흩날리는 좋지 않은 날씨다. 우기도 아닌데 흐리고 맑다가 비를 뿌리기도 하는 날씨가 갈리시아에 들어오고 나서 부쩍 심해지고 있다. 

미뇨 강은 상당히 긴 강이다. 갈리시아 지방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강이다.

미뇨강의 길이는 315km 정도라고 하며 루고의 북쪽지역에서 발원해 루고를 지나 대도시인 오우렌세를 거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계가 되면서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는 길고 긴 강이다. 미뇨강 위로 놓인 다리 이름은  싱겁게도 '뽀르또마린의 새로운 다리'이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는 높은 계단이 있고 계단 끝에는 작은 경당(작은 예배당, 작은 성당)인 Capela das Neves(눈의 예배당, 성당)가 자리하고 있는데 매우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로 순례길의 길목에 있는 것으로 보아 중세 순례자들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전통적인 갈리시아의 소박하고 견고한 구조를 가졌다고 설명한다. 순례자에겐 기념사진을 찍는 스폿이 되었다. 

피망과 당근도 한컷
Capela das Neves

눈의 예배당을 지나 시가지로 들어서 오른쪽에 위치한 성과 같은 모습의 성당으로 발길을 옮겨 걸었다. 아들과 왔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곳이라 꼭 제대로 보고 싶었다. 성당의 이름은 Igrexa de San Xoán de Portomarín 뽀르또마린의 성인 산 소안(요한)을 기념하는 성당으로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된 성당이라고 하며 뽀르또마린의 옛 마을에 위치해 있었지만 1960년대 저수지 건설로 인해 수몰될 위기를 맞아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고 하는데 돌 하나하나에 번호를 매겨 재조립하는 정교한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서울의 독립문도 고가 공사 때문에 원래의 위치에서 같은 방식으로 분해 및 조립했다. 

Igrexa de San Xoán de Portomarín. 아쉽게도 내부를 볼 수 없었다. 

성당 구경을 하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 나와 바르에 들러 까페 꼰 레체와 샌드위치로 간단한 요기와 휴식 후 다음 마을을 향해 걷는다. 

마을을 내려와 강의 작은 지류를 건너 숲 속 사잇길로 이어간다. 

도로를 따라 걷기도 하고, 좁은 흙길을 따라 비와 바람을 맞으며 곤사르의 공립알베르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해 잠시 또 쉬어 간다. 쏟아지다 말다 하는 비는 참으로 사람을 성가시게 만든다. 특히 카메라를 비닐봉지로 감쌌다 다시 풀었다 반복하는 것이 매우 귀찮다. 그렇다고 일정 수준의 방진, 방적이 될 뿐인 카메라를 완전 개방 상태로 달고 다닐 수도 없고. 1km쯤 지났을까? 다시 작은 마을인 까스뜨로마이오르를 만나고 오픈한 피자가게에서 각 피자 1판씩과 맥주를 시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해 본다. 아마 냉동피자를 오븐에 다시 구워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역시 시장이 반찬, 배가 고프니 피자가 매우 맛있다. 

Igrexa de Santa María de Castromaior

까스뜨로마이오르를 조금 지나 왼쪽 언덕 위에 고대 유적이 있다 하여 발길을 돌여 올라가 봤는데, 갈리시아 지방의 중요한 고고학 명소로 고대 켈트족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유적지라고 한다.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잘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고고학적 유물인 도자기, 금속 도구, 장신구 등이 발견되어 당시 고대 켈트족의 생활 방식, 사회 구조, 군사적 전략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고대 켈트족의 주거 유적인 까스뜨로마이오르 유적

바람이 불었다 비가 내렸다 아주 정신 사나운 날씨다.

오 오스삐탈 마을의 의 표지석

까스뜨로마이오르의 유적에서 다시 한 시간 조금 못 걸어 Ventas de Narón 벤따스 데 나론이라는 동네가 이어진다. 마을의 소박하기 그지없는 예배당 안에서는 세요를 찍어주고 있었다. 

갑자기 많아진 순례객들, 학생 단체인데 녀석들의 시절이 부러웠다. 
유칼립투스 나무들과 다시 맑아진 파란 하늘이 예쁘다.
마을의 닭들이 잘 먹어서 인지 윤기가 흐르는 듯 보였다. 

오늘의 목적지 마을인 아이렉세 도착 전 바로 앞마을에는 꽤 괜찮아 보이는 바르도 있었지만 오늘 여러 번 쉬기도 해서 그냥 통과. 마을 나가는 길에 아주 착해 보이는 멍뭉이가 순례자들을 배웅하고 있었다. 고놈 참 잘생겼네.

Airexe 아이렉세의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해 접수를 하고 침대를 배정받아 올라가니 아직 침대는 여유가 있다. 하지만 몇 개 되지 않는 침대는 시간이 지나자 모두 주인이 생겼다. 

아이렉세 공립 알베르게, 오스삐딸레로는 바로 길 건너편 식당의 주인이었다.

알베르게의 청소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바닥은 먼지와 머리카락이 꽤 많이 보였는데 관리인이 청소를 자주 하지 않아서 인 듯했다. 부지런해 보이지 않는 관리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에는 그녀의 몸집에 따른 선입견일 수 있지만 보통 뚱뚱한 사람이 부지런하기 쉽지 않다. ^^;;

오늘은 1층을 획득했다. 아싸!

샤워실이 독특했다. 낮고 가릴 것이 별로 없는 창을 가진 샤워실은 개별 부스형이 아닌 오픈형이었다. 뭐 남자끼리 쓰는 것인데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지만 밖에서는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창밖으로는 무수히 많은 순례자가 지나갔고 간혹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식사하러 나가며 알베르게의 샤워실을 바깥에서 바라보았는데, 아뿔싸! 내부가 너무 잘 보였다. 혹시 이곳에서 머물게 되거든 꼭 이점을 기억하시라.  

저녁식사를 위해 알베르게 앞의 Ligonde라는 이름의 식당에 들어가 오징어 튀김, 쇠소기 스테이크, 생선 구이와 백포도주를 주문했다. 추위에 떨며 별 기대 없이 기다렸는데 음식의 양이 꽤 많았고 보기에도 그럴싸했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었음에도 맛은 참 좋았다. 질겨 보였던 쇠고기 스테이크는 의외로 질기지도 않고 맛이 꽤 좋았다. 오징어 튀김은 튀김옷이 일부 벗겨지기도 했지만 오징어가 싱싱해서였는지 매우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혹시 아이렉세에서 머무르거나 점심쯤 지나간다면 꼭 들러보길 강추한다. 가성비가 매우 좋은 식당이었다. 


잘 걷고, 잘 먹은 28일 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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