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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뚱 Dec 19. 2024

3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day37

포르투갈 길 역주행 6일 차 :   Castelo까지 34.7km

숙소에 들기 위한 650여 개의 쉼 없는 계단 오르기

6일 차 : A Guardia 아 구아르디아 ~ 포르투갈 Viana do Castelo까지 37.4km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은 그다지 만족스럽진 않았으나 뭐 포함된 것이니 안 먹을 순 없고 대략 챙겨 먹고 9시가 다되어 느지막이 길을 나서본다. 앱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자연 국경인 미뇨강을 건너는 배편을 알아봤는데, Xacobeo Transfer Ferry는 앱을 운영하고 있어 시간을 예약할 수 있게 되어있다. 

호텔에서 약 한 시간 정도 걸어 마지막 스페인 마을인 A Pasaxe(아 파삭세)에 페리 타는 곳에 도착했다. 

스페인의 마지막 표시석이 아닐까 싶은. 사꼬베오 페리가 정박되어 있다.

역방향이기도 하고 순례자도 별로 없는 듯해서 예약 없이 부두로 갔더니 한 두 사람 정도 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배표를 파는 사람도 없다. 서성거리다 보니 관리인이 한 명 나타나 배를 이용할 것이라고 하니 어딘가 전화를 한다. 대략 알아들은 말은 배가 건너편에서 와야 한다고 한다. 시간도 알려주지 않고 앱에 있던 시간표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동안 Taxi Boat는 부지런히 사람을 실어 나른다. 저걸 알아봤어야 했나 하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한 시간쯤 기다렸더니 배가 드디어 포르투갈 쪽에서 건너온다. 6유로. 앱으로 예약 가능한데, 역방향의 경우 사람이 많지 않으니 그냥 와서 현금 내고 타도 된다. 

정해진 시간 따윈 아무 의미 없다. 현장 상황에 따라 페리를 이용하면 되는데, 성질 급한 사람들은 그냥 택시보트를 타는 게 정신건강과 시간 버는데 유리하다. 택시 보트는 선착장이 아니라 바닷가 방향의 모래톱에서 이용하는 것 같다. 

정박돼 있던 약간 큰 페리를 타는 게 아니고 작은 보트가 온다. 이용객이 적어서 그런 건가? 꽤 빠른 속도로 국경을 건넌다. 해안길이 아닌 내륙길을 따라간다면 이렇게 배를 이용하지 않고 두 다리로 다리를 건너게 된다. 

포르투갈 방향에서 눈에 딱 들어오는 건 Igreja Matriz de Caminha라는 이름의 오래된 성당이다. 

오늘 숙소 예약한  정해진 곳인 Viana do Castelo 비아나 카스텔루의 몬트 드 산타 루지아 예수 성심 성지 성당이 있는 곳까지 갈길이 상당히 멀지만 그래도 포르투갈의 첫 마을에서 만난 성당을 한 바퀴 둘러본다. 


국경 마을인 까민하. 국영이긴 하지만 그냥 동네에서 동네로 이동하는 느낌이다. 

까민하를 통과하며 포르투갈의 주택은 스페인과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 보면서 걷는데 분명히 비슷하지만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겹벚꽃이 이쁘게 핀 까민하의 어느 주택

마을을 통과하면 길은 주로 해변으로 이어진다. 

한동안 바다가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다. 기찻길을 따라서 걷기도 하면서.

15km 정도 걷자 관광지인 듯 보이는 안꼬라 해변에 도착해 식사할 곳을 두리번거리다 식당에 앉았는데, 메뉴판으로는 뭐를 파는지 알 수 없다. 암튼 고기 믹스와 밥을 시키고 앉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사람도 별로 없는데, 인터넷은 계속 안되고... 최후의 해결책으로 핸드폰을 껐다가 다시 켜니 그때서야 인터넷이 연결된다. 문제는 국가가 바뀌었기 때문인데, 스페인이 아니라서 사용량에 제한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며칠 남지 않았고 다시 스페인으로 들어갈 거라 추가로 유심을 사거나 하는 짓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맛도 별로고 가격도 메누 델 디아류 보다 비싼 음식을 욱여넣고 다시 출발.

빌라 프라이아 데 안꼬라에서 길이 갈리는데 해변 길을 따라 걸었던 나는 후회가 막심했다. 날도 더운데 해변 길이라니. 안쪽길을 추천한다.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곳에서 내가 자주 보는 유튜브 코이티브이에서 보던 하늬님을 만났다. 그녀는 닷새째인 이 길이 즐겁지 않다고 했다. 계속 즐거울 수 없는 길임을 잘 아는 나는 공감이 갔다.

절대적으로 육체적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 길이기에. 아주 가끔 볼 수 있는 그저 말문이 막히는 엄청난 풍광에 큰 행복을, 틈틈이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풍경을 눈을 잘 뜨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작은 행복을 수시로 느낄 수 있다. 육체적 고통에 치중하면 잘 볼 수 없는 것들이 이 길엔 참 많다. 우리 인생도 똑같다.

해변에 방목 중인 소들이 자유롭게 풀은 뜯고 있다. 
해변에 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꽤 예쁘다. 

바닷길은 아름답긴 하지만 좀 지루한 느낌이 드는데,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니 시야가 너무 멀리까지 도달하기 때문에 변화가 별로 없기 때문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안꼬라에서 안쪽길과 해안길로 또 나뉘게 되는데 산길은 왠지 이 날씨에 더 힘들 것 같아 해변방향을 따라 걷는데 이건 뭐지? 차들이 시속 백키로로 달리는 듯한 도로를 한 3km 넘게 걸었는데, 무서웠다 좀. 

매우 빠르게 차들이 통행하던 해변방향의 길

한 시간 정도 걷자 길은 다시 완전한 해변길로 접어들었다. 날씨가 좋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햇볕이 또 따가운 건 안 반가웠다. 

이런 해변길이 끝까지 이어진다. 

간혹 해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적은 수의 여행자들 말고는 걷는 사람은 정방향 순례자와 나뿐이다. 내륙 쪽을 바라보니 연두색의 자연에 주황색 지붕을 두른 마을이 너무 아름답다. 

안쪽길로 걸었다면 저 능선위 어딘가로 걷고 있었겠지. 

조금은 지루한 해변길은 목도 마르고 지치기도 해서 해변마을 끝에 자리한 고급스러워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야외 테이블에 자리 잡고 순례길의 메인 음료인 콜라를 따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해산물(조개, 새우 등)이 들어간 샐러드를 먹는 손님들이 부러웠다.  나도 해물 샐러드 같은 걸 시켜 먹을걸...ㅠㅠ

순례길에서 보기 드문 펩시 콜라, 그리고 포르투갈 넘어와서 처음 만난 지프 캠핑카. 디자인 이쁘네. 


예전에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던 장소, 비슷한 장소가 제주도에 있다. 

해변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순례길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는 생태 탐방로로 만들어서 관리하고 있었다. 

기~인 해변길이 끝나가나 하는 생각이 드는 앞 풍경은 오늘 도착지인 비아나 두 카스텔루였다. '이제 얼마 안 남은 거잖아'라는 생각을 하면 스마트폰 지도 앱을 켰는데 오늘의 예약 숙소의 거리가 아직도 10km 가까이 남았다고 나온다. 어 씨 뭐지...?

오늘의 숙소가 있는 곳은 산 위에 떡하니 자리잡은 산타루지아 성당 옆에 있다

도시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데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 벌써 여섯 시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그나저나 저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곳까지는 또 어떻게 올라가야 할까.

왠지 도시를 가로지르는 길이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런 길은 없었다. 계속 해변을 끼고 크게 돌아 도심으로 진입한다. 가면서 계속 저 위쪽으로 가는 버스나 택시를 찾아봤는데... 없다. 

구글지도 앱을 켜고 네비게이션 기능으로 길을 찾는데 아... 숙소까지 직선으로 이어진 길은 계단이다. 그 사실을 알고 택시를 타야 하나 고민을 한참 했지만, 난 순례자고 몸 편하자고 온건 아니니 걷기로 한다. 대형 마트를 지나면서 뭔가 먹거리를 사야 할 것 같았지만 짐을 늘리고 싶진 않았다. 숙소 근처에 식당 같은 것이 있다고 되어 있으니 사 먹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계단을 오른다. 계단이 몇 갠지 알 수 없었지만 운동하는 사람들도 몇 명 있는 것을 보니 그렇게 막 험난하진 않을 거야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백갠가 정도까지 계단을 세다 힘들어 그냥 올라간다. 중턱쯤 올랐을 때 뒤를 돌아보니 우아~  리미아 강이 내려다 보인다. 

드디어 계단이 끝났다. 계단이 몇 갠지 세진 않았는데, 꽤 많다는 생각만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까지 픽트램이 운영되었었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문이 굳게 닫힌 채 손님을 맞지 않고 있었다. 

Albergue | Hostel de Santa Luzia는 이런 곳에 있었다.

숙소는 예약 메일에 적힌 대로 비밀번호를 직접 누르고 들어가 정해진 방의 침대를 찾아 이용하면 되는 방식이었다. 매우 깨끗한 숙소였으며 이곳에 머무른다면 꼭 이용해 보라고 강력 추천한다. 주변에 오픈한 식당을 찾을 수 없었고 호스텔 안에 간식 자판기에 볶음면 비슷한 게 있어 음료와 함께 산다. 부엌이 운영 중이어서 간단히 볶음 라면과 음료 과자 부스러기로 저녁 한 끼 해결했다. 방에 이어진 베란다에 놓인 테이블에서 바깥 풍경을 보며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순례자의 복인가 보다.

저녁을 마치고 카메라를 들고 왠지 석양이 아름다울 것 같은 성당 앞 광장으로 나갔다. 미친 듯이 아름답다고 할 순 없으나 그래도 고생하며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는 장소임에는 틀림없었다. 

아름다운 선셋과 관람자들

이렇게 포르투갈 길의 첫째 날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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