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물교환 안 하고 우리도 돈 낸다.
내가 살던 곳은 항상 미세먼지 같은 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이었다. 하늘이 푸르고, (들판은 하나도 없어도) 산이 푸르고, (간혹 비가 억세게 올 때 빼고는) 물이 맑은, 딱 농민들이 살 것만 같은 공간이었다. 나는 그 시골 바닥에서 계곡과 살 비비고 흙 먹고 가재 잡고 자란 셈이다.
간혹 어르신들을 따라서 골짜기 계곡으로 들어가 개구리를 한 트럭 잡는 걸 구경하기도 하고, 아빠를 따라 들어가 기어이 뱀을 잡고서 기겁해서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사람이 산아래 계곡에서 굴러 떨어지는데도 괜찮냐며 걱정은커녕 허허실실 웃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내 기준에선 날 걱정하지도 않는 어르신들의 얼굴이 저승에서 올라온 염라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다. 고작 열몇 살 된 내가 이 고령화 농지에서 누군가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노인으로 보이는 어르신들도 분명 옷 아래로 감춰놓은 파워 근육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쓰라린 마음과 몸을 이끌고 잠자코 집에나 기어들어가기나 한 것이겠지. (분했다.)
이처럼 나는 보이는 것은 농경지밖에 없는 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디 문방구에 뭘 팔고 불량식품이 무엇이 있는지는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는 옆동네 학교가 너무 멀기 때문에 마을 안에 분교를 만들었었는데, 사람이 워낙에 없어서 내가 그 분교를 다닐 땐 총원이 12명이었다. 곧 있으면 학생보다 선생님이 더 많아질 것 같았다. 하여튼, 졸업하는 이상 나와는 관련이 없지. 그렇게 방년 14세인 나는 나와 분교를 같이 졸업한 친구와 나란히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었는데, 오는 길을 내내 보더라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그 학교가 있는 그 동네(사실 동네라고 부를만한 규모가 아니었는데 당시엔 내가 동네 말고 뭐라고 부를지 몰랐었다.)가 무척 도시처럼 느껴졌다.
지각을 간신히 면하고 강당으로 들어섰을 땐 정말이지, 속된 말로 지릴 정도로 무서웠다. 나는 일단 겁이 무진장 많은 편인데, 우리는 일단 교복이 없어 사복으로 들어왔지만 똑같은 교복을 입고 우리를 쳐다보는 선배들의 표정이 지루하다 못해 짜증 난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 봐야 나보다 두세 살 많은 사람들 표정이 왜 저 모양이야. 괜히 신경질 부릴까 봐 교장 선생님이 오실 곳만 쳐다보고 있을 때 뒤에서 내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뒤 돌아보니 나와 같이 손 잡고 들어왔던 친구도 이미 질문 세례를 받고 있었다. 새 학기 처음 보는 얼굴에 대한 지대한 관심 타임 시작이었다.
A: 너 분교 나왔다며?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 몇 번 봤는데. 기억 나?
기억이 날 리가 없다. 내가 다니는 분교 학생들과 우리 마을 사람들을 전부 합해도 쟤들이 다녔던 학교 학생들 수보다 덜했을 텐데, 언제 어디서 봤는지 내 머리로 기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땐 살짝 머리를 탓했다.
B: 너네 학교 학생 수 몇 명이야? 우리보다 훨씬 적다고 하던데.
타인: 12명. 우리 졸업하고 1학년 두 명 더 들어와서 아마 12명일 거야.
B: 헐랭. 완전 재미없었겠다. 뭐 하고 놀았냐?
뭘 하던 너보단 재미있게 놀았다 짜식아. 네가 오징어 게임을 아냐 비석 치기를 아냐. 겨울에 이글루를 만들어보기를 했어 뭘 했어. 하지만 속으로만 생각했다. 새 학기 새 친구한테 이런 말을 해봐야 나만 이상한 놈으로 찍힐 것이 분명했다. 단정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만 까딱까딱 조아리기로 했다.
C: 너네 동네에서 진짜 작물로 물물 교환하고 그래?
넌 뭔데.
적어도 같은 지역 사람이면 그 말은 나오면 안 되는 말 아니냐.
감자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물물교환 이야기는 이때 처음 들어봤다. 어떻게 같은 지역에서 살면서 이런 말을 할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앞으로 이 친구는 내 인생에 있어 다시는 없을, 시간 날 때 간혹 연락하는 찐친이 돼있을 테니 이름을 바꿔주기로 하겠다. 앞으로 글 쓰면서 자주 나올 이름이다.
도토리: 너네 동네에서 진짜 작물로 물물 교환하고 그래?
타인: 미쳤나 이게.
21세기 대한민국, 돈 안 내고 작물로 물물 교환해서 버스 타면?
ㄴ 작물로 후드려 맞을 수 있다.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