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제 괭이를 들고 싸우는
산골소년과 산골소녀의 모습이란 대개 어떤 느낌인고 하니, 보통 얼굴에 흙 묻히고 나물 캐고 다니면서도 서울 애들을 동경하고 헤헤 웃고 다니는 속 없고 순박한 종자라고 알고 있는 듯했다.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제일 많이 듣고 자라는 것은 "감자"나 "순하다"라는 말 정도였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종종 타 지역 친구들과 교류를 하면서 듣기로는 우리 지역 친구들은 산골에 있기 때문에 순박할 것이라고 말하는 애들도 종종 봐왔다. 서울엔 무섭고 위험한 것들이 많으며, 당장에 사촌들이 있는 부산만 하더라도 이미 대도시이며 위험한 것들 천지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내 또래 애들도 상당히 거칠고 사납다 등등. 그런 말을 하기야 하더라.
같은 지역으로 묶인 애들만 하더라도 그런 말을 했다. 우린 같은 지역이지만 우린 바닷사람이고 너희는 산사람이니 엄연히 다르다. 뱃사람만 해도 얼마나 거친지, 너희가 견줄 바가 아니라고 하더라. 뭐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듣기로 했었다. 그러니까 지금 너희 입장에선 우리가 제일 안전하다 뭐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제일 만만하다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냐. 그렇게 말하면 그런 건 아니라고 하긴 하지만 눈빛에 그런 무시들이 묻어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그래 뭐, 너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말리진 않겠다만.
그러나 농민의 자식인 나의 입장으로 봤을 때 그것은 하등 쓸모없는 잣대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러니 내가 무슨 뭐든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싶긴 했으나 어려서부터 고랭지 농업이니 어디 골짜기를 지나서 드러나는 광활한 밭에 씨 뿌리고 모종 심는 어른들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사업인지도 알고 있다. 그 사이에서 어떤 매운 농담을 하는지도 그렇고, 하여튼 누가 산골 사람들이 순하다고 그러던가. 그런 건 학교를 다니면서도 다 드러나는 일이었다. 저번 선배 사건을 비롯해서라도 이 지역 사람들은 말보다 손과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와 나의 아부지. 우리는 30년 터울의 나이 차이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선후배였다. 나의 대선배이자 산전수전 다 겪은 거친 농민인 우리 아부지의 말에 의하면 그 선배 사건과 두루두루 양아치 같은 놈들이 하는 일들은 그냥 애들 놀이 수준이라고 했다. 애들 놀이 수준? 요새 애들은 마음에 안 들면 밀쳐놓고 일단 욕부터 하던데요. 그러나 그런 질문에도 그저 허허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곤 했다. 그래, 그렇게 웃으면서 엄청난 말을 했었다.
아부지: 야 인마, 아부지 학교 다닐 때는 그게 학교가 아니라 군대였어 군대. 제식훈련이나 뭐 이런 건 들어봤나 모르겠다. 교련이라고 들어는 봤어?
타인: 재식? 재식이? 그게 누군데.
아부지: 재식이 말고 제식훈련 이 밤톨 같은 딸래미야. 그 당시에 학교는 군대였다 이 말이야. 그렇게 훈련받는 놈들이 산 타고 나무 타고 뒹굴고 다니면서 하던 게 뭔 줄 알어?
타인: 모르지. 난 그때 아빠 정자였수.
아부지: 패싸움.
타인: 뭔.
이보세요. 아무리 제가 그 당시엔 당신의 생성되기 전 정자였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그짓말을 해도 된다는 것입니까. 한껏 정색하고 아부지의 얼굴을 봤을 무렵엔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만 봤을 뿐이다. 아부지가 학교를 다닐 당시엔 학교 대항전처럼 체육대회도 그것이지만 남학생들끼리 우르르 몰려가서 패싸움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당시, 그것도 그게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것도 우리 아부지가 참가했다는 말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던지 아부지는 모를 것이다. 입이 떡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타인: 어디, 어떤 학교랑?
아부지: 옆 학교 뒷 학교 저기 어디 놀러 가서 다른 학교 학생들이랑 시비 걸리면 그때도 우르르 몰려갔었지.
타인: 양아치?
아부지: (말로 하지 않고 몸으로 싸운다.)
그래, 너희가 차 많고 사람 많은 대도시에서 왔으니 너희 동네가 무서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바다의 출렁이는 너른 뱃속 안에 사로잡힐까 두려워 거칠어졌을 수 있겠지. 하지만 너희가 보지 못하고 겪지 못한 산골 친구들은 생각보다 거칠고 참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다는 것도.
내가 알어. 우린 뒷산에 뛰어다니는 멧돼지와 노루를 보고 자란 만큼 힘쓰고 뛰어다닐 수 있다는 점에서 만만한 존재는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