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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 Mar 30. 2022

첫 친구를 잃은 이후

우정의 유효기간 쩜쩜쩜

   중학생 시절 나는 친구가 많았다. 극강의 아웃사이더인 내가 열몇 명이나 하는 친구들을 품에 안고서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는 일이란 참 쉽지 않았는데, 그 어려운 것을 중학교 2년생에 접어들어 해내고 만다. 나의 분교 소꿉친구 순이와 하는 두근두근 중학교 라이프는 이미 집어치운 지 오래고, 나와 달리 사교성이 좋은 순이가 불러온 열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어쨌든 벌어진 일이 아닌가.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면 기분이 상한 것이던지. 이전 글에서 말했듯 나는 사실 순이만 내 친구라면 다른 친구들은 상관이 없었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 순이의 비중은 상당히 컸다. 나의 유치원 생활 2년, 초등학교 생활 6년을 통틀어 8년, 그리고 중학교 생활 1년을 합해 총 9년을 함께 했던 친구가 순이였기 때문에. 

   고작 15살. 15살의 인생 중 9년을 함께했다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함께 했다는 말이다. 유난히 소심했던 나와 유난히 활기찼던 순이. 순이의 9년에도 내가 있었고, 나의 9년에도 순이가 있었듯 우리는 가족보다 더 든든한 서로의 뒷배가 되었던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의 첫 친구이자 영원을 함께할 유일한 친구임을 의심한 적도 없었다. 감히? 순이를 의심해? 의심하는 것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종교가 아닌가 싶긴 하다. 대한순이교.)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을 수는 없으며, 인생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완소퍼펙트 순이와의 우정 라이프로 가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절교를 했다. 왜 절교를 했는가. 사실 순이에게 이유를 들어본 적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전조증상이 존재했다. 바로 대화 단절.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은 항상 나였고 말문을 닫는 것은 언제나 순이였다. 대화의 물꼬를 트고, 대화를 막고, 대화의 변화점을 찾고, 다시 원점으로 돌이킨다. 뭐 이런 그지 같은, 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때였다.



   순이: 타인아. 나 할 말 있는데 지금 해도 돼?
   타인: 어? 그래 무슨 일이야? 학교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해서 무슨 일 난 줄 알았어.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순이: 나 이제 너네랑 다니고 싶지 않아. 우리 이제 그만 다니자.



   그때 알았다.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듯 우정에도 언제나 유효기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결국에 개 그지 같다느니 그런 소리는 못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말했냐고 했더니 그 열몇 명 하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다 돌릴 수 없었기에 우두머리 격 하는 친구에게 선언을 했다고 한다. 아 그래, 나한텐 예의상 그래도 인사는 했다는 말이구나. 이걸 기분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다고 생각했지만 유독 소심한 성격에 입만 거친 나는 그저 입을 다물기로 했다. 여태까지 나를 더럽게 무시하고 다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자존심이 상했다. 나를 오래 봤던 만큼 내가 싫어하는 것을 자세히 알고 있는 순이에겐 나를 상처 입히는 것이 엄청나게 쉬웠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그 애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울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다. 이 말을 들으면 할아버지는 너도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사느냐 말하겠지만 나도 나름의 가족의 안위 같은 것도 생각했다. 마을 단위로 이루어진 시골은 어디에 수저를 몇 개를 두는지, 소를 몇 마리 키우는지 전부 다 알고 소문도 빠르게 번지기 때문에 내가 먼저 같은 마을에 사는 귀염둥이 막내 순이에게 물리적 시비를 거는 날엔 마을 안에서 고립될 것이 뻔했다. 순이는 내가 없더라도 자신을 지켜줄 언니나 오빠가 있었지만 나는 위로 누가 있지도 않으니까. 뭐, 그 당시 그 마을 이장이었던 할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소문을 잠재우는 것은 일도 아니었겠지만. 무엇보다 손이 먼저 나가기에도 자존심이 상했다. 아주 빡! 빡! 상했다.

   그날은 무척이나 속이 쓰렸다. 속이 쓰려 잠도 오지 않아 밤에 마당 평상에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시는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휘영청 뜬 달을 바라보며 할아버지의 몇 없는 안주를 주워 먹었다. 하나 둘 주워 먹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다.



   할부지: 너 순이랑 절교했다며?

   타인: 저는 말한 적 없는데요 할아버지?

   할부지: 네 동생도 귀가 있고 입이 있다.



   고 주둥아리들을 가만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방에서 자고 있을 촉새 1, 촉새 2. 그들을 저주하며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할아버지의 옆에 붙어 과자를 집어먹었다. 분명 먹으면 배가 불러야 하는 게 정상인데도 모래 한 줌씩 빠져나가는 듯 스러지는 마음이 너무 공허해 괜히 한숨만 푹푹 쉬었다. 할아버지의 손이 내 손 위로 얹어져 손등을 쓰다듬을 때서야 할아버지 얼굴을 쳐다봤다.



   타인: 사람 마음이 왜 그렇게 변하는지 모르겠어요. 원래 이런 건지 알게 뭐냐 싶다가도 기분 더러워요.

   할부지: 너랑 순이가 그렇게 오래 친구를 했는데 질릴 때도 됐지. 사람들이 다 너랑 비슷하게 생각하지는 않어.

   타인: 전 안 질리고 좋은데요. 남들은 다 스쳐 지나가면, 그럼 전 평생 그렇게 남들 뒤만 보면서 살아요?

   할부지: 너도 적당히 앞을 보면서 사는 날도 와야지. 언제까지 뒤만 보면서 살으냐.

   타인: 쫌생이가 된 것 같아요.

   할부지: 원래 그러고 사는 거지 뭘.



   그냥 그랬다. 눈물은 좀 났는데 이제 억울하거나 슬프진 않더라고.

   이 별에서 하는 첫 번째 이별이지 않나. 한 뼘 자란 키처럼 마음이 자라는 소리가 들렸다.



   할부지: 할아버지도 요새 절교 많이 허고 댕긴다.

   타인: 할부지 나이에도 절교를 해요?

   할부지: (홀짝, 술을 마신다.)

   타인: 왜 했는데요?

   할부지: 먼저 하늘로 떠나서...

   타인: 잠시만요 그건.



   아

   아무튼 마음이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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