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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인 Apr 13. 2022

下. 저요? 작가를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저를 한 번 믿어보기로 했거든요.

   우리네 꿈은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고 하니 선생님께서도 내게는 크게 신경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했었다. 하여튼 내 친구 도토리만 보더라도 대학교 갈 생각은 없고 카페 알바를 하면서 카페 일을 배운다고 하기도 하고, 다음날엔 중국집 짜장면 맛을 보고 거기에서 일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며 왔다 갔다 하던 적이 있으니 나 역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전에 말했듯 내가 간과한 점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나의 진로에 관심이 많은 열혈이라는 것과, 작가가 꿈이라고 말하는 학생의 진로를 끌어줄 수 있는 힘이 있는 과목이라는 것. 제일 큰 이유는 자신의 손으로 학생을 이끌어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미루어볼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 나의 선언에 무언가 준비라도 한 듯 어딘가에서 하는 공모전, 어딘가에서 하는 대회, 가까운 곳에서 하는 백일장 공고문을 내 앞에 열거하듯 내미는 것을 보고 깊게 철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반항심에 넘쳐 글을 쓴 것과는 다르게 다른 큰 대회에는 나간 적도 없으며, 애초에 이런 꿈을 꾸기까지의 과정이 고작 상 받은 것 하나라는 것 자체에서 오는 나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주변 친구들에게 말해보기엔 내 주위 친구들은 항상 나와 같아서 별생각 없이 산다는 것이 문제였고, 그렇다고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기엔 꼭 하는 말이 허영 같아서 믿을 수가 없었다. 어른들에게 물어보기엔 그 시절과 항상 빗대어 말하는 것 같아 그것도 포기한다. 이상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결국 선생님의 뜻대로 품에 공고문을 안아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가는 길. 이미 어두워지려는 듯 산어리에 머리를 걸치고 있는 해와, 그 옆에 딸려 노을을 입고 다니는 하늘을 보며 터덜터덜 걷고 있을 때였다.



   ???: 왜 얼굴이 그래?

   타인: 왜 남의 얼굴 가지고 지적질이야. 너 누군데.

   ???: 넌 누군데.



   모르는 애가 말을 걸었다.






   우리 집으로 가는 버스는 항상 하루에 네 대 정도밖에 없었다. 오전 1반은 학생, 오전 2반은 말린 고추를 털러 가시는 어르신, 오후 1반은 어딘가 치과를 가야 한다 싶으신 어르신, 오후 2반은 치과를 다녀온 어르신과 학교를 갔던 학생. 그마저도 한겨울엔 눈이 많이 오거나 길이 미끄러워 버스 두대는 캔슬되기도 했다.(그지같은 동네라고 생각했다.) 거의 이런 루틴으로 항상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같았다. 그런데 얘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놈이었으며, 나보다 한 뼘이나 큰 남자애로 나는 이 마을에서 사는 남자애와는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다르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내가 사는 마을이나, 내가 다니는 중학교엔 이미 초등학교에서부터 알고 지냈거나 그래 봐야 다른 동네에서 이사 온 애들이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나는 길만 걸어 다니면 주변 사람들이 전부 알아서 아부지에게 내 위치를 알려주는 개인 알리미 노릇을 했기 때문에(그 동네는 다 우리 아부지의 동창생 및 선후배, 그리고 나의 중고등학교 선배님들이셨다. 혹은 그 선배님들의 아내나 남편 분들이시거나. 마을 전체가 키운 나.) 중학교 3년생에 접어든 나로서는 그 애는 이방인이었다. 그 이방인은 버스에 올라타는 내 옆에 앉아서 말을 했더랬다.



   ???: 나 배추 농사하는 집 손주야. 그 왜, 우리 할아버지가 맨날 너네 막내 동생 데리고 와서 살겠다고 키우겠다고 그러신다며.

   타인: 뭣.

   ???: 미안. 우리 할아버지 혼자 사시잖아. 외로워서 그래. 너희한테 장난 치는 거야. 알지?



   이름을 정이라고 하겠다. 당시에 나랑 동갑이었다. 걔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전부 서울에서 다니던 애라고 했다. 그런데 자기는 농사를 하고 싶다며 아버지 어머니께 고등학교는 농업고등학교를 가겠다고 선언하고 할아버지네 집으로 무작정 가는 중이라고.(사실 농업고등학교가 어디에 있길래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왜 굳이 농사를 짓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 애를 바라봤던 것 같다. 못마땅한 표정이 스치는가 싶더니 내 손에 들린 종이 뭉터기를 가져가더니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한 5분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읽더니 대뜸 말한다.



   정이: 나갈 거지? 저거 완전 좋은 기회잖아. 너 글 잘 쓰나 보다?

   타인: 그런 건 아니야. 그냥 하라니까 하는 거지.

   정이: 너 죽상인 이유도 여기에 있어?

   타인: oO(그놈의죽상죽상진짜한주먹거리도안되는게)



   그리고 그 일을 모르는 애 앞에서 탈탈 털어놨다. 내가 왜 꿈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부터, 내 꿈이 작가인 것에 대해 마치 대공사를 하는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보라고 하는 것이. 엄마는 항상 날 보며 뭐든 손에 오래 잡고 느리게 익히는 것이 내 특징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한 번에 뒤집히는 상황에 대뜸 익숙해지라며 이것저것 내미는 것이 달갑지 않아 자꾸만 안 하고 싶어 진다고. 답답한 속에 눈물이 찔끔 나고, 내 말에 공감을 해주는 그 애가 달가워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도착하는 그 20분 동안 계속 이야기를 했더랬다. 결국 그 애 말은 하나도 듣지 못하고 내 얘기만 주구장창 한 격이다. 어차피 가는 길도 같으니 정이의 손에 들린 종이 뭉터기를 받아 들고는 다른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정이: 그냥 해봐.

   타인:

   정이: 내가 우리 엄마한테 매일 들어서 아는데, 우리 나이엔 좀 실패해도 된다고 하더라. 나는 사실 시험 하나만 제대로 못 봐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우리 엄마는 내 나이 때 공부는 하나도 안 했대. 그렇게 치면 내 인생이 더 성공한 거라고.

   타인: 그건 좀.

   정이: 너 지금 우리 엄마,

   타인: 많이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하여튼 걔 말은 그랬다. 그냥 겁쟁이 쫌생이처럼 굴지 말고 내가 관심이 생긴 게 있으면 일단 몸부터 들이받으라고.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배우고, 할 수 있겠다 싶으면 그냥 하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생각하지 말고 기회가 오면 잡으라는 말인 것 같았지만 그 순간 내 눈엔 그 애의 얼굴이 마치 바로 옆에 있는 교회 십자가보다 더 빛나게 보였다. 질풍노도 중학교 3년생 인생의 최고의 해결사였다.


   그리고 집으로 달려가 한동안 작가가 되기 위한 루트란 루트는 다 찾아본 것 같다. 심지어 내가 갈 고등학교엔 시인인 선생님도 계셨다. 봄맞이 시 창작 대회에 쓸 시도 틈나면 쓰고, 속초에서 열리는 산문/운문 대회에 나갈 준비도 하면서. 아직 대학교를 들어가기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적응하는 것에 느린 나도 어느 정도는 비벼볼 수 있겠다 싶었다. 결과는 좋았다. 각각 장려상, 은상을 타고 화려하게 돌아왔으니!


그렇게 해서, 네!

이것저것 따질 필요 없이!



작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Q. 그런데 그 버스에서 어떻게 정이는 널 보고 과수원집 큰딸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니?

   A. 자기네 할아버지한테 우리 자매 얘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 제 또래 여자애에 그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을 보고 찍었다고 합니다. 걔도 저만큼 대책 없이 사는 친구랍니다.

   Q. 그런 생각 없이 사는 친구의 말을 믿고 작가를 하겠다고 결심한 거니? 생판 모르는 남인데?

   A. 사람은 의외로 사소한 것에 인생이 바뀐다고 합니다만... 엄마도 생판 모르는 남자(아부지)에게 이끌려 여기까지 (...) 넵.




   Q: 그래서 결국엔 작가가 되셨나요?

   A: 브런치 작가 됐잖아요? 1보 전진 했습니다. 어디까지 전진할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길이라도 일단 전진 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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