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동 Apr 26. 2022

택시 기사가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세상만사

담 넘어가는 개나리

이야기 아홉

     담 넘어가는 개나리

           고재동(시인ㆍ택시 기사)


  철 모르고 왔던 개나리꽃이 담 넘어 왼고개 친다.

  밭둑에서 개나리 한 포기 데려다가 울타리에 심었다. 어찌나 번식력이 강한지 감당이 안 된다. 옆으로 번지는 뿌리를 캐내도 끝이 안 보였다. 매년 번지는 새순을 제거하고 실한 줄기 하나를 밀어 올렸다. 돌담으로 울타리를 단장할 때 짓눌렸지만 거뜬히 살아남아 담장 앞에 진을 친다. 내가 외면했더니 고개를 돌려 담장 넘어 꽃을 피운다.

  애초에 꽃은 내게 온 것이 아니었나 보다. 대설을 지나 입춘이 두 달 남은 이 마당에 꽃을 떨구지 못하는 까닭은 뭔가? 늦가을이 가을 답지 못해 철 모르고 개나리가 활짝 핀 것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지만 뭔가 채우지 못한 사연이 있을 듯싶다. 울타리 너머에 있는 개나리에 물어본다고 해도 제대로 대답할 리도 만무하다. 개나리를 왼고개 치게 한 건 나였는지도 모른다. 너무 성가시고 번식력이 좋아 집 안에 둘 수가 없어 울타리 너머로 길을 터준 건 나였다. 그런 마당에 염치없이 이 겨울에 낯빛 변함없이 샛노란 개나리꽃의 속내를 염탐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잎사귀 다섯까지 떨구지 못한다. 옆에 선 은행나무와 감나무, 죽단화 줄기는 죄다 주고 알몸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산 밑 밭둑에서 개나리를 데려온 게 나였으니까 아무리 왼고개 쳤다고 해서 뿌리째 뽑아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네 발로 스스로 걸어서 훨훨 떠나기 전까지는. 모르긴 해도 스스로 떠날 것 같지도 않다.

  개나리꽃이 늦가을에 우리 집 담벼락에 온 것이 뭔가 그리워서인지, 노란 국화꽃의 유혹이었는지 알 길 없다. 그러고 보니 노란 국화 역시 떠나지 못한 꽃송이가 개나리와 마주하고 있다. 꽃의 계절을 넘고 보니 늦가을이 쓸쓸해 국화가 노랗게 다가가 개나리에 충동질한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개나리가 과연 국화의 유혹에 넘어갔을까?

  아내가 서울에 간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영상통화를 했다.

  병원 예약 진료도 있고 지난주 돌 지난 쌍둥이도 돌볼 겸해서 열흘에서 보름 예정, 서울로 가는 아내를 오늘 아침에 터미널까지 태워다 줬다. 그런데 혼밥, 점심을 먹다 말고 영상으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만에 화면이 열리고 쌍둥이가 등장했다. 할아비를 알아본 건지 해인이가 엉덩이 실룩샐룩 재롱을 부린다. 정인이는 본체만체한다. 대면이 잦지 않아 늙은 남자만 보이는 거겠지? 피가 당기는 날이 멀지 않아 올 테지. 딸과 할머니는 그 장면을 설명하고. 나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 전화했노라고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했다. 사실 쌍둥이가 보고 싶었던 것도 맞다.

  작년에 아내가 따서 말려 놓은 일곱 송이의 국화로 차를 타서 들고 일터에 나섰다. 어쩜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 아닐까 하는 기대 섞어 향내 짙은 국화차를 음미해 본다.



눈이

첫새벽을 칼로 자르듯이

모진 세월을 밀어낸다

만물을 깨우는 것은

가장 부지런한 참새이다

참새의 가슴 깊이는

자로 잴 수가 없지만

눈의 두께는 가늠할 수가 있다


참새 부부는 기와집 추녀 끝

보금자리에서 잠을 자는 한

사랑을 담보하지 않고

눈은

허황한 하늘을 전세 내어

불법 체류하기 때문에

가슴이 없다


질퍽하니 세월을

짓뭉개기도 하고

진득하니 황혼의 연륜을

두께로 짓누르기도 한다

참새는 심술보가 없지만

눈은 무한대이다


그래서

늙은이는 첫새벽에

맨 먼저 눈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청년은 대 평원을 향해

가슴 열고 길을 닦는다

        --<습자지 한 장 차이>



  "평팔까지 가주세요."

  "네? 어디 가신다고 하셨지요?"

  "일직면 평팔요."

  "아, 네에. 자주 가는 곳이 아니라 지명이 낯설어서요. 어서 오세요.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택시 운전하는 동안 한두 번 가봤을까 말까 한 곳이다. 택시 운전 말고도 연고가 닿지 않아 거의 발이 닿지 않아 낯이 설다.

  자정 지나 첫 손님이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는 고향 친구를 시내에서 만나 한잔하고 김장하러 내려온 처가로 향하는 길이라고 했다.  본가도 같은 마을이지만 부모님이 떠나고 안 계셔서 처가 김치 함께 담고자 왔노라고 하며 당당하다.

  일직을 지나 평팔까지 가는 길은 산천 따라 아스팔트 길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20리 길, 일직까지 중학교 다닐 때 자전거에 태우고 귀신 나온다고 놀려가며 엉덩이 다 깨 먹은 소꿉친구와 서울에서 재회, 결혼했노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어쩜 공처가가 된 듯도 했지만 그의 표정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유추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병원 앞에서 여자 손님을 만났다. 운수 좋은 날이 틀림없다. 청송을 가자고 했다.

  "할아버지를 입원시켜 드리고 요양보호사를 구하지 못해 기다리다가 이제야 해결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에요."

  "할아버지라면 어떤 사이세요?"

  "시아버지예요."

  "아, 그러시군요?"

  올해 아흔셋인데 내가 죽으면 안 되는데 하며 울더라고 흉을 봤다. 3년 전에 시어머니도 이 병원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해 설날은 시어머니는 이 병원 7층에, 시아버지는 11층에 입원해 있었다며 그때를 토로했다. 시집와서 40여 년 시부모를 모셨다며 덤덤하게 말씀하시는 여자 손님의 표정은 살필 수 없었으나 내공이 깊게, 고운 심성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으로 가는 올겨울은  빙점을 겨우 오갈 정도로 온화했다. 그런데 택시가 손님의 목적지인 청송에 거의 다다르자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지금까지는 운명이겠거니 시부모를 모셨는데 집의 영감이 문제예요. 맨날 술을 먹고 주정에 행패를 부린다니까요. 할아버지보다 더해요. 앞으로 여생 얼마나 또 모셔야 할까 생각하니 진절머리가 나요. 집을 사달라고 하는 건 턱도 없을 것 같고 시내에 전셋집이라도 얻어달라고 했어요!"

  "......"

  그녀의 돌변한 태도, 단호한 언사에 나의 말문이 닫혔다. 청송이 안동보다 더 추운 게 맞나 보다.

  개나리와 국화는 왜 이 겨울에 노랗게 만나 떠나지 못하는 걸까? 개나리는 봄을 상징하는 맨 먼저 우리 곁에 오는 노란 꽃이고, 국화는 가을을  길게 뽑는 노란 세상을 마감하는 꽃이다.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처음과 마지막의 꽃이 상면했으니 손을 선뜻 놓지 못하는 걸까? 평생 만나지 못할 이들이 운명적으로 만난 탓에 몸이 으스러질 때까지 잡고 있는 걸까? 그들은 오미크론도 두렵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튼 저 건너 지리산에서 하얀 세상이 열리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잡은 손 놓을 수밖에 없으리라. 간절히 원하면 내년을 예약할 수도 있겠지. 근처에서 딸기 잎이 파랗게 화답한다.

작가의 이전글 택시 기사가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세상만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