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동 May 01. 2022

택시 기사가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세상만사

첫눈, 세 번째 눈

이야기 열하나

         첫눈, 세 번째 눈

                  고재동(시인ㆍ택시 기사)


  혹자는 첫눈이라 쓰지만 나는 세 번째 눈이라고 읽는다.

  열흘 전 그날도 새벽으로 가는 길은 빗자루로 싹 쓸어놓은 듯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한적한 포도 위, 황량하기까지 했다. 졸고 있는 흐릿한  방범등은 드문드문 지나치는 차들의 불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하늘색이 잿빛이었다는 사실은 차창에 싸라기가 때리기 시작한 한 후 받아들였다. 누구 하나 하늘을 보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 잠자리에 든 사람들에겐 예외였지만, 나를 포함한 극히 일부 잠 못 든 사람의 뇌리에 첫눈을 쓴 겨울 하루였다.

  젊은이에겐 첫눈은 관심 안이지만 하늘 쳐다보는 건 밖이다. 언제 달이 떴다가 지는지, 어느 하늘을 비행하는지 관심이 없다. 하루에 50분씩 늦게 살이 쪄서 오는 사연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니까. 젊은이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나도 그랬다. 도시에서 바쁘게 살 동안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 본 기억이 없다. 귀촌하고 나서 북두칠성이 머리 위에 뜨는 걸 확인했었다. 최소한 한 달에 몇 번쯤은 샛별의 안부를 묻는다.

  첫눈이 싸락눈으로 내리던 그날의 일기예보는 흐림이었다. 그러나 하늘을 보지 않았기에 종일 흐림이었는지 확인이 어렵다. 밤늦게 싸락눈으로 첫눈을 썼기에 밤을 잊은 몇몇 사람을 제외한 이에겐 첫눈이라 명명할 수 없었을 게다.

  열흘 넘게 서울에 갔던 아내가 오늘 돌아왔다. 위 진료와 안과 진료, 쌍둥이 돌보는 일을 끝내고 금의환향이라 할 수는 없지만 집에 안착했다. 번번이 던지지만 '내 집이 제일 좋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내가 주관하는 문학 행사와 겹쳐 버스로 터미널에 도착한 아내를 태우러 못 간 것이 못내 못 마땅한 아이다. 정작 당사자인 아내는 이해하는 분위기인데... 나는 앞으로 詩랑 살아야 하나?

  아내도 돌아오고 문학 행사도 대충 끝냈으니 긴장을 내려놓을 법도 하지만 앞으로 문학과 살려고 하면 일터에 나가야 한다. 조금은 늦은 시각, 작아진 나를 데리고 현관을 나서는데 눈이 내려 있었다. 이번 겨울 들어 내겐 두 번째 눈이다. 하늘을 봤다. 구름은 반쯤 걷혀 달이 들락날락한다. 작은 달이 큰 별을 삼켜버렸는지 하늘엔 그들이 없다.

  눈이 내가 가는 길을 막지는 못했다. 차량 운행에는 문제가 없을 듯해서 길가의 눈을 쓸며 시내를 향해 질주했다.

  코로나가 앗아가 버려 연말 분위기는 나지 않았다. 겨우 몇 분의 손님을 모시고 나니 훌쩍 자정이 넘는다.

  시내 원룸 주변에서 50대 초반 남자 손님을 모셨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안녕하세요? 그냥 쭉 가주세요."

  "그냥 쭉 말입니까? 계속 가면 법흥교를 건너야 하는데요?"

  "사장님은 부부싸움을 하여 집을 나오면 어디로 가나요?"

  "혹시 선생님께서 부부싸움을 하셨다는 겁니까? 지금 집을 나오신 게 맞고요? 술집도 대부분 문을 닫았고요... 저는 일을 합니다. 사모님과는 왜 싸우셨어요?"

  "뚜렷한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말씨름하다가 집을 나왔어요."

  그는 옥동에서 음식점을 하다가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고 전 재산을 날린 후 원룸으로 밀려났다고 했다. 부부는 잦은 말다툼에 술에 절어 살며 삶의 의욕을 잃은 듯 보였다.

  "기회를 엿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마냥 술만 드시면 되겠습니까? 건강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아직 젊으니까 분명 재기를 할 겁니다. 용기 내세요. 시절이 좋아질 때까지 작은 일이라도 하시다가 기회 포착하세요. 이런 말이 있어요. '부지런한 농부는 일 더미에 묻혀 살고 게으른 농부는 거름 더미에 앉아 푸념만 한다'라고요."

  "형님, 정답입니다. 그 말씀 누구의 명언입니까?"

 "제가 한 말입니다. 형님이라니요. 저는 택시 기사일 뿐입니다."

  "법흥교를 넘지 말고 차 돌리세요. 아까 제가 탔던 곳으로 다시 가 주세요.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자격이 있을까 모르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졸지에 멋쟁이 동생 한 명 더 얻게 되어 한량없이 기쁘네요. 어쩜 세 번째 눈이 내릴지도 모르니까 얼른 집에 들어가요."

  "고맙습니다, 형님!"

  불과 5분 만에 동생 하나를 얻었다. 그는 연신 형님, 형님 하며 부인께 전화를 걸어 내게 바꿔 주었다.

  "남편 무사히 집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힘내시고요. 멋진 남편을 두셨습니다. 오늘 밤 두 분 소주 한잔하세요. 아름다운 밤입니다, 제수씨."

  원점으로 돌아와 5분 동생(?)과 헤어지면서 수필집 '낮달에 들킨 마음'을 건넸다.



부지런한 농부는

일 더미에 파묻혀 살고

게으른 농부는

거름 더미에

걸터앉아 논다


꼼지락

달무리에 갇혀

외면하는 달님아

일 더미도 거름 더미도

골고루 비출 거니?

                --<8cm>


      

  꼬인 나의 실타래는 풀지 못하고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곶감 놔라 하고 돌아서는데 다시 눈발이 날린다. 수탉이 기침할 새벽으로 가는데 함박눈이 앞을 가린다. 천지를 덮을 듯 세찬 눈이 새벽을 읽는다. 잠시 내렸건만 눈은 삼라만상을 잠재우려나 보다. 아스팔트를 덮더니 앞서 저만치 가는 차와 벽을 쌓는다. 신비한 게 눈이고 요사스러운 게 눈이다. 첫사랑이 결실을 보기도 하고 사랑에 금이 가기도 한다.

  눈이 길을 막기 전에 선돌길로 가기 위해 조심스럽게 핸들을 돌렸다. 어젯밤에 내린 눈과 새벽에 내린 눈을 놓고 대부분의 사람은 같은 눈이라고 우기겠지만 나는 다른 눈이라고 판단한다.

  첫눈과 세 번째 눈과의 사이에는 간격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열흘 전 싸락눈을 의식 못했거나 인정 못하면 오늘 밤에 내린 눈이 첫눈일 수도 있고, 그 싸락눈과 날짜를 바꾸어 내린 오늘 밤 눈을 달리 보면  세 번째 눈일 수도 있다. 첫눈과 세 번째 눈과의 간격은 0일 수도 있고 2일 수도 있다. 부부간의 간격과 자식과의 간격도 0일 수도 있고 무한대일 수도 있다.

  오늘 세 번째 눈이 내 사전을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