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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동 May 10. 2022

택시 기사가 열쇠 구멍으로 들여다본 세상만사

까치밥

이야기 열넷

              까치밥

                  고재동(시인ㆍ택시 기사)



  종종 종.

  아침나절 운동하러 시내로 가는 길. 언 땅에서 햇볕을 캐다가 차를 피해 인도 위로 오르는 까치 한 마리 있다. 흰 점 검은색이 선명하다. 얼마 만인가? 2년을 더듬어도 내 뇌리에 까치가 없었다. 보름 전  까치설날에 사라진 까치를 그리워했더니 보란 듯이 곁에 왔다. '까치가 울면 기쁜 소식 온다'라는 말이 있다. 차치하고라도 반갑다. 활력이 넘친다. 오늘 탁구 상대가 누구이든 여느 날보다 더 즐겁게 운동할 것 같다.

  우리 집 감나무는 두 그루. 3년 전에 심은 장독대 옆 감나무는 아직 장래를 예측할 수 없다. 지역적으로 추위 때문에 감나무가 고사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현관 입구 담벼락 안 감나무는 3년째 감이 달리고 있다. 도중에 빠져 버려 지난해 달랑 한 개 수확한 게 전부이긴 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3분의 2개 수확했다. 수십 개 꽃이 오고 수십 개 감을 달았지만 떨어지고 마지막까지 한 개 남았었다. 그런데 현관 드나드는 우리가 보이는 쪽은 말짱했는데 반대편 3분의 1은 새가 쪼아 먹은 사실을 나중에 감 잡고 아내가 뒤늦게 땄다. 범인이 새라는 걸 짐작만 할 뿐 정체를 알 길 없다. 익어가는 감을 싫어할 새가 별로 없을 듯. 특히 까치가 감을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으로 몇 개씩 감을 남겼다.

  우리 고장에는 이즈음 와서 감나무 보기도 쉽지 않지만, 까치밥 감을 본 적 드물다. 산골 수확 않는 감나무 감이 몽땅 그들 밥이 되는 경우는 있을 듯싶다. 선친께서 고욤나무에 접붙인 고늑골 감나무 몇 그루 감을 요 몇 년간 따러 가지 않았으니 까치밥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까치의 개체 수가 줄어든 마당이고 보니 까치밥의 효용 가치도 그만큼 줄어들고 말았다. 우리 고장엔 감나무가 줄어들어 까치밥을 남기지 않아 까치가 사라져 가는가? 이 또한 환경 탓일 것이다. 지구가 몸살을 앓는 만큼 익조도 해조도 줄어든다. 역병 같은 악재가 겹치고 겹치면 조류, 곤충은 물론 인간인들 온전하겠는가?

  오늘 2월 월례회 자체 탁구 대회에서 아내와 내가 각각 2, 3등을 했다. 지난번 대회에서 아내와 결승에서 만나 내가 기권하는 바람에 아내가 우승, 내가 준우승한 바 있다. 같은 경우가 될까 봐 내가 준결승전에서 기권하자 결승에 올라간 아내가 또다시 기권하여 준우승으로 만족했다. 아침에 만났던 까치가 길을 안내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올해는 우리 집 감나무를 갈무리 잘하여 여러 개 감이 열리면 까치밥으로 서너 개쯤 남길 참이다.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A동 B 아파트 주위를 맴돌면 택시 두세 대를 부르는 콜이 뜬다. 다행히 오늘도 콜이 잡혔다. 가까이에 위치한 C동 D 아파트로 가는 손님이었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택시비 따셨습니까?"

  "아녜요. 2천오백 원 잃었어요."

  "아뿔싸, 이걸 어쩌지요?"

  "괜찮아요. 점심, 저녁도 먹고 심심풀이로 치는 화투인걸요. 저는 거의 딴 적이 없어요. 대구에 살다가 이곳에 이사 온 지 3년 됐는데 고스톱도 여기 와서 배웠어요. 여든둘 된 할머니도 계시는데 얼마나 계산이 빠른지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요."

  "......"

  "처음에는 윷놀이를 했는데 옆집에서 시끄럽다고 신고가 들어가는 바람에 고스톱으로 바꾼 거지요."

  "어쨌든 즐기시면 되지요."

  "맞아요. 고스톱을 하다 보면 치매도 예방되지만 희로애락이 펼쳐져요. 인생사를 새롭게 배우고 있어요. 욕심이 과하면 화를 입고, 여백의 의미도 새기게 돼요. 더디게 가는 지혜를 배우기도 하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무릎 아프지 않으세요?"

  "테이블 놓고 의자에 앉아서 놀거든요. 방바닥에 앉아서는 1시간도 못 놀아요."

  그녀의 나이는 일흔일곱 살.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였다. 그녀의 말속엔 힘이 느껴졌고 마스크 너머 표정엔 행복이 넘쳤다. 할머니의 마지막 남긴 말에 귀가 기울어졌다.

  "안녕히 가세요. 늘 행복하세요."

  "젊은이도 건강하세요. 우리 노인네들에겐 특별한 놀이 문화가 없어요."



얼음이

온몸을 옥죄어 올

몽환의 순간

가까운 곳에서

수박 향기가 났다


개구리가 하늘에 들었다

개구리가 구름에 들었다, 어젯밤에

추워서

하도 추워서

휴면에 들어갔다


고통은 없었다

그냥

물과 함께 얼음이 되었다

콘크리트 천장에 별이 떴다

작년 봄이 보였다

작년 여름이 까르르 웃는다


와야천으로 왔다가

허여멀건 배를 보이며

해동이 되면

낙동강으로 버들치와 함께

소풍 떠나련다

       --<하늘이 데려 간 초롱별>



  새벽 4시. 일을 마치려는데 손님이 부천에 가자고 했다. 망설이다가 자신이 없다,며 돌아섰다. 2년 전, 같은 시각 인천공항 손님을 모신 적이 있다. 그때 비하면 차도 업그레이드되었는데. 나도 늙은 모양이다. 곧바로 차를 돌렸다. 이내 내 택시는 동구 밖 다리 위에 섰다.

  우수.

  졸졸졸, 와야천 물소리 평화롭다.

  어제 새벽 이 시각 기온 영하 14도였다. 오늘은 영하 3도. 우수 하루 전 기온이 올겨울 들어 최저 기온을 찍더니 계절을 속일 수 없는가 보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인 오늘은 평년 기온인 영하 3도로 급상승했다.

  지난해는 꽁꽁 언 와야천 얼음이 버들치를 가두더니 올핸 그나마 겨우내 졸졸졸 냇물이 흘렀다. 가장자리에 얼음이 살짝 얼었을 뿐이었다. 돌아온 버들치가 얼음에 갇혀 하늘나라로 떠날까, 영원히 버들치가 사라질까 걱정했다. 아직 선돌길 언덕엔 여름이면 반딧불이가 난다. 사라졌나 싶으면 나타나 명멸하며 그들의 존재를 알리곤 한다. 까치도 돌아왔다.

  지구가 수백억 년 존재하는 동안 숱한 파고를 넘었으리라. 온통 사막일 때도 있었을 것이고, 바다로 가라앉아 있을 때도 있지 않았을까? 산소와 바람이 없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파충류인 공룡이 살다 사라지기도 했다. 어쩜 우리 인간이 지배한 동안 가장 아름다웠던 지구와 가장 아팠던 지구가 공존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지금이라도 서두르면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반딧불이가 돌아오고, 까치가 아침잠을 깨워 주고, 냇가에 버들치가 활개 치는 날은 기다리고 있다.

  졸졸졸. 우수를 여는 아침. 오늘도 지구는 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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