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소환....)
긴 겨울이 지나가고 햇살에서부터 온기가 감지되는 봄이 되었다.
창밖 풍경도 초록 기운이 느껴지고 이제 곧 봄꽃들이 무리 지어 피고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흩날리는 광경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 기다려지고 설렌다.
그런 기분을 만끽하며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큰애 학원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의례적으로 하는 상담
전화 일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이라 당황해서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수업 중 테스트에서 부족할 시 체벌을 해도 되냐는 부모 동의를 얻기 위해서 한 연락이었다. 순간 손바닥을 맞는 큰아이의
머쓱한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웃음이 나왔다.
큰애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정말 날 때부터 너무 순하고 겁도 많고 기가 약한 아이라 늘 노심초사였다. 유치원만 가도 늘 반에서 제일 순한 아이라 행동이 과한 친구의 타깃이 되는 그런 유형의 아이였다.
그런 기질을 보완해주고 싶은 마음에 초등 입학과 함께 팀 스포츠 중 강한 체력과 끈기를 필수로 하는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몇 해가 지나도 후보 선수를 못 벗어났다.
겁 많고 소극적인 성격은 연습 경기나 실전 경기에서도 감춰지지 않았다.
상대편과 몸싸움으로 굳건히 지켜 내야 할 우리 팀 퍽을 번번이 양보하듯이 포기하고 슛을 넣어야 할 상황이 만들어져도 자신감이 부족해 팀 내에서 잘하는 주전 선수에게 양보하는 그런 모습을 몇 해를 보였다.
답답하고 속 터지는 그런 상황이었다.
감독님의 조언도 모진 훈련도 부모의 타박도 다 먹히지 않는 나아질 기미가 1도 없는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지켜볼 수 있었던 건 후보선수가 훈련은 제일 열심히 한다는 거였다.
링크장을 수십 번 도는 훈련이나 벌칙에도 미련하게 다 완주하고 헬멧을 벗으면 머리에선 몸의 열기로 김이 모락모락 났다.
팀에서는 전혀 존재감 없는 선수였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만년 후보 선수라도 이 운동을 계속 시켜야 할 이유를 찾았다.
그렇게 경기가 있을 때마다 전국 링크장을 쫓아다니며 후보 선수로 벤치를 지켜가던
아이가 4학년이 되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된 훈련으로 쌓인 근력의 힘이 3년이 지나자 제 역할을 찾은 듯 스케이팅이 몰라보게 빨라지고 그런 변화를 느낀 아이는 자신감이 붙어 퍽을 무서워하지 않고 득점까지 연결이 안 되더라도 슛을 날리고 경기를 즐기는 경험을 3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맛보게 되었다.
소극적이고 생각만 많던 후보선수가 피할 수 없는 몸싸움에 투지를 보이고 팀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일 때 마치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 상태로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숨 고르고 기다리다 터널 밖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더디고 느린 보행이었지만 충분히 완주의 기쁨을 누린 경험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는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제 역할을 거뜬히 해내고 팀 내에서 에이스로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아이스하키 이후로도 운동을 꾸준히 한 아이는 교복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근육과 쓸데없이 강한 체력을 가졌다.
그런 다부진 체격의 아이가 시험 성적 부족으로 손바닥을 맞는 장면은 상상 만으로도 불편한 그림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친구들도 정말 어색하고 민망할 것 같다. 그리고 제일 큰 이유는 시험 성적이 기준 이하라도 이게 맞을 이유인가? 였다.
체벌이 약이 되어 공부하는 시기는 한참 지났고 또 맞아서 잘하는 공부는 얼마나 오래갈까 하는 생각도 있다. 그만큼 아이들 성적을 올리고 싶은 절박한 마음에 그런 방법을 선택하신 선생님의 의중도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나는 동의하기 싫었다.
맞는 아이도 그런 친구를 지켜보는 아이들도 때리는 선생님도 팽팽한 긴장감에 모멸감 상실감까지 뒤섞여 세상 부정적인 감정은 그 교실 안에 가득할 것 같았다. 답을 바라는 선생님에게 결과의 몫은 아이가 어차피 책임질 부분이니 체벌은 원치 않는다고 답을 드렸다.
연락을 받은 상황도 답을 건넨 상황도 모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아이를 보면서 조금 더 앞서가고 돋보이는 능력치가 있다면 지켜보는 입장에서 한결 마음이 여유롭고 편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늘 후보 선수로서 벤치에 가장 오래 앉아있던 그 모습을 기억하려 한다.
그때 그 시절처럼 지금의 아이도 더디고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이제는 너무 커버려 잔소리도 소용없는 반 어른이 된 아이에게 결과에 대한 비난의 눈길을 거두고 침묵하고
기다려 주려 한다.
벤치를 벗어나기까지 3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아이에게 링크장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지금은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수많은 실패와 정체를 경험해야 겨우 한 발을 걸쳐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3월의 어느 금요일 치킨을 앞에 두고 넷 플릭스를 보며 아이와 별 것 없는 대화를 이어가는 나는 무거운 고민은 잠시 내려놓고 고딩 엄마로서 소통에 성공한 것 만으로 만족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