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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드로스치 Sep 24. 2024

환생(2)

환생의 방에서 나온 논은 자신이 보낸 영혼과 이미 환생을 한 플로피의 생각을 하며 걷다가 문득 생각이 나 허공을 바라봤다. 별안간 허공에 커다란 시계가 나오더니 째깍째깍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바늘은 네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헉… 큰일이다.”


논은 올 때보다 더욱 서둘러 환생궁 게이트로 뛰어갔다. 또다시 인사하려고 손을 든 가브리엘라에게 허둥지둥 손을 들어 인사하고 지나치려다 다시 재빨리 돌아와 가브리엘라에게로 다가갔다.


“헉… 헉… 가브리엘라 님… 오늘.. 오늘…”


“논님?... 네 오늘 갈 거예요. 여섯 시죠?”


“네…다른 분 들도… 헉… 헉…”


“네… 아까 사서님께도 전달했고 삼신님도 당연히 알고 계셔요. 바르님은 벌써 가 계시고요.”

숨이 차서 말을 잇지 못하는 논을 보고 가브리엘라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바르 님이요?”


“네… 아까 논님과 헤어지고 바로 가신걸요.”


“왜… 바르님이…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뵐게요.”


논은 가브리엘라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환생궁 게이트를 향해 뛰어갔다.

게이트를 통해 환생상담소에 도착한 논은 재빨리 건물을 통과해 영혼들이 머무는 곳으로 갔다. 전날 준비를 했다고 하나 아직도 준비해야 할 것이 산더미인데 남은 시간은 두 시간도 채 안되니 빠듯했다.


“논님, 논님…”


앞만 보며 재빠르게 걷던 논을 누군가 부르며 붙잡았다.


“아.. 영혼님…”


뒤를 돌아보니 영혼 7777번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뭘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 넘어집니다.”


“이제 두 시간 도 안 남은 걸요. 해야 될 게 많은데.. 의자와 테이블 정리도 해야 하고… 그래도 결혼식인데 이쁘게 꾸며야 하기도 하고요…”


“거의 다 했어요.”


"네?... 그게 무슨…”


영혼 7777번은 미소를 활짝 지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저와 다른 영혼분들이 의자도 가져다 두고 테이블도 두었고요. 디아님이 오늘은 상담이 하나 시라고 마치고 나서 여기 오셔서  도와주시고.. 그리고 바르님이 꽃을 잔뜩 들고 오셔서 신부님 걸어 다니실 길마다 꾸며두셨고요. 지금은 아마 테이블을 꾸미시는 중일 거예요. 테이블 세팅이 끝나면 말라크 님들이 음식만 준비해 주시면 되는데 얀님과 미카엘 님도 곧 도착하시니 음식도 금방 준비될 거예요.  논님은 이제 신부님 꾸미시는 거만 도와주시면 돼요.”


영혼 7777번의 말을 들으며 결혼식장으로 걷는데 코끝으로 달콤한 꽃향기가 스며들었다. 행진이 시작되는 바닥부터 시작된 꽃길은 주례가 이뤄지는 곳까지 길게 이어져 있고 양쪽으로는 테이블과 의자가 벌써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제일 앞 테이블 옆에는  아직도 자신 키만 한 커다란 꽃뭉치를 들고 옆에 있는 영혼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있는 바르가 보였다.


“아니. 그거 말고 이거요.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요.  여기 노란 꽃이 향이 더 강하다니까… 아니 그거 말고요… 이거….” 바르는 고갯짓으로 계속 원하는 꽃을 가리키다 결국 안 되겠는지 한숨을 푹 쉬고는 꽃뭉치를 옆 영혼에게 건넸다. 


“아니… 그게 그렇게 힘드나.. 이 꽃뭉치 영혼님이 들고 있어 보세요. 이 노란 거요. 이거”


결국 꽃뭉치를 옆의 영혼에게 넘기고 직접 꽃 한 송이 한송이를 꺼내 다듬는 바르를 보고 논은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디아가 있었는데 허공으로 손을 뻗어 접시 하나를 꺼내어 무늬를 자세히 보더니 고개를 젓고는 다시 허공으로 접시를 넣어 없애고 또 다른 접시를 꺼내 살펴봤다. 같은 동작을 두세 번 반복하더니 마침내 맘에 드는 접시를 찾았는지 그것을 꺼내 테이블에 놓고는 이번에는 허공에서 유리잔을 꺼내어 살펴보고는 또다시 허공에 집어넣고 다시 꺼내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  옆으로는 조그만 꼬마 영혼들이 하얀 천을 잔뜩 껴안은 채로 떠들며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직 천이 덮이지 않은 테이블을 보면 그 위에 툭 하고 하얀 천 뭉치들을 던져 놓고는 또다시 옆 테이블로 이동을 했다.  그 사이 어른 영혼들이 와서 테이블 위에 있는 천을 활짝 펴 꼼꼼히 덮었다. 테이블 시트가 완성되자 어느새 디아가 다가와 접시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근사한 결혼식장이 되어가는 모습에 논은 자신도 모르게 활짝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논님 이제 신부님 꾸미러 가보실까요? 전 여기 일손 좀 더 돕겠습니다.”


영혼 7777번의 말에 논은 고개를 끄덕이고 신부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혼식을 한다고?”


경자의 물음에 경숙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드백에서 청첩장을 꺼내 경자에게 내밀었다.

경자는 자신의 앞에 놓인  조그마한 봉투를 열어  아무 그림도 없는 새하얀 카드를 꺼내었다. 카드를 열자 결혼식을 초대하는 문구 아래 눈에 띄는 글자가 보였다.


신부: 고 한지선

신랑: 고 김상현


“이게…무슨… 언니 이게 말이되? 영혼결혼식이라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오지 마. 그래도 지선이가 너를 무척 따랐잖아. 지선이 단짝이었던 아이와 너만 초대한 거야. 네가 안 오면 지선이가 서운해할 것 같아서…”


말을 잇지 못하고 또다시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언니의 얼굴을 보고 경자는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둘만 의지하며 살다가 마음에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 언니 경숙이 먼저 결혼을 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은 늘 일찍 떠나는 법인지 부모님에 이어 막 결혼을 한 새 신랑도 불의의 사고로 배속에 아이만을 남겨두고 먼저 떠났다. 경자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빠진 경숙을 대신해 아이에게 이모이자 엄마이자 아빠 노릇을 하며 함께 지선을 키웠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키운 지선이 봉사활동을 떠나 스물다섯 살 젊디 젊고 고운 나이에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 게 불과 육 개월 전이었다. 아직도 지선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데 세상을 이미 떠난 조카의 결혼식이라니 경자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경자는 앞에 놓인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알았어. 갈게… 갈 거니까. 대체 이게 무슨 일 인지 이야기나 해봐.”


시작은 한 달 전쯤에 꾼 경숙의 꿈이었다. 꿈속에서 지선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빠와 함께 있었다. 서른도 채 되지 못해 떠나간 남편인데 어쩜 그리 곱게 나이가 들었는지 근사한 모습으로 지선과 나란히 서 있었다. 그리고 남편의 옆에는 한 청년이 서 있었는데 청년은 지선의 남편보다 머리 하나는 더 높을 정도로 훤칠한 키에  시원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청년은 자신을 보며 활짝 웃더니 허리를 굽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김상현입니다.”


경숙은 그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어 자신도 모르게 덥석 청년의 손을 잡았는데 그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정말 특이한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는데 며칠뒤 경숙은 다시 지선의 꿈을 꾸었다.

경숙과 지선은 달큼한 향내가 진동을 하는 꽃밭을 함께 거닐었다.  


“엄마, 나 상현 씨랑 결혼하고 싶어. 아빠도 좋데요. 엄마도 허락해 줬으면 좋겠어요.”


허락을 구하며 향긋한 꽃을 내미는 딸을 향해 경숙은 미소를 짓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홀로 방안에 누워있는데 진한 꽃향기가 방안 가득 나는 듯했다.  


다음날 경숙은 아무래도 딸의 얼굴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지선의 유골이 있는 봉안당에 갔다가 지선의 바로 옆칸에 있는 유골함의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진을 확인해 보니 바로 꿈에 나타난 그 청년 ' 김상현'이었다.   놀란 마음에 다시 한번 사진을 확인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경숙을 툭툭 치는 느낌이 들었다.


"김상현 씨 부모님도 같은 꿈을 꿨다고?”


경숙의 말을 듣다 놀란 경자는 자신도 모르게 질문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래, 상현이네 부모님도 꿈에서 아들이 우리 지선이랑 결혼하고 싶다니 무슨 일인가 싶어 와 본 거야. 알고 봤더니 상현이도 지선이랑 같은 곳에 봉사활동을 갔단다. 그때 사고 난 사람 중 한국인이 두 명 있다고 했잖아. 그게 우리 지선이와 상현이었던 거지.”


“어머… 사고도 같이 났는데 알고 봤더니 같은 봉안당에… 그것도 옆자리라고?... 인연도 그런 인연이 없네… 그래서 결혼식은 어떻게 한다는 거야. 언니.”


“사돈댁에서 다니는 절에서 조촐하게 하기로 했어. 결혼식 후에는 유골함을 같이 두기로 했고… 나는 네가 와줬으면 좋겠어. 경자야.”


경숙의 말에 경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청첩장을 펼쳐보았다.



신부: 영혼  한지선

신랑: 영혼 김상현


이름이 적힌 청첩장을 다시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고 논은 신부 대기실에 앉아있는 영혼을 바라봤다. 환한 미소를 띤 지선의 얼굴을 보자 논의 얼굴에도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같은 사고로 인해 환생국에 함께 온 영혼 485304와 39507번은 전생에서 서로 모르는 사이었다지만 함께 죽음을 맞이하고 함께 재판을 받으며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환생상담을 받으며 전생의 기억을 모두 찾은 뒤 그들은 늘 각자에게 함께 했던 짝이 없었음을 알게 되었고 서로에게 인연이 되었으면 했다. 영혼 485394를 상담하던 논은 다른 말라크들과 상의를 했고, 두 영혼이 합의한다면 다음 생애에 맺을 인연의 줄을 묶으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논은 두 영혼에게 좀 더 특별한 추억을 주고 싶어 이렇게  그 들의 전생의 이름으로 결혼식을 준비하게 되었다.


“자. 이제 신랑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랑 입장!”


사회를 보는 미카엘의 목소리에 맞춰 행진길의 끝에서 신랑이 씩씩하게 입장을 하였다. 신랑의  걸음걸음에 영혼들과 말라크 모두 큰 박수와 환호성을 내질렀고 논도 힘껏 박수를 쳤다.


“이제 아름다운 신부님이 입장하시겠습니다.  신부 입장!”


전생에 피아니스트였다는 영혼의 근사한 피아노 소리에 맞춰 아버지의 팔짱을 낀 지선이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딸이 뱃속에 있을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딸이 환생국에 올 때까지 영혼의 꽃이 되어 휴식을 취하다 딸이 환생국에 도착하자마자 나이가 지긋한 지금의 모습으로 깨어났다. 결혼식을 마치면 바로 환생에 들어가야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영혼 657890번이 아닌 한지선의 아버지 한승민이었다.


지선과 상현이 서로의 손을 잡고 주례석 앞으로 다가갔다. 둘을 바라보는 삼신의 눈이 한없이 따뜻하기만 하였다. 삼신은 아무 말 없이 생굿 웃더니 양손을 지선과 상현에게 내밀었다. 지선이 조심스레 삼신의 오른손 위에 그리고 상현이 삼신의 왼손 위에 각자의 손을 얹자 삼신의 손에 보이지 않던 빨간 실이 나타났다. 빨간 실의  끝이 스르르 움직이더니  한쪽 끝은 지선의 넷째 손가락에 나머지 끝은 상현의 넷째 손가락에 단단히 묶였다.  팽팽하게 묶인 빨간실을 향해 삼신이 손을 내밀자 실은 붉은빛을 내며 사라지더니 손가락에 빛나는 반지 두 개가 나타났다.


우레와 같은 축하 박수 소리에 지선과 상현은 행복한 모습으로 서로에게 키스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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