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달살이 중에도 두 번이나 이 말을 들어야 했다. "저기요. 가방 열렸어요."
백팩에서 계속 물을 꺼내 마셔야 했고, 유난히 심해진 비염 때문에 화장지도 연이어 꺼내야 해서 그냥 열린 채로 다녔던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아도 나는 평소에도 종종 가방을 열고 다닌다. 그러면 낯선 사람들이, 또는 동행한 지인이 반드시 나에게 말해준다.
"가방 열렸어(요)."
도둑도, 소매치기도 사라진 지 오래된, 살기 좋은 대한민국인데 유난히 열린 가방에 사람들은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 우선 민망하고 다음으로는 감사하다. 그리고 허술한 나를, 생면부지의 타인이 챙겨주어서 감사하긴 하지만 신기하기도 하다. 그건 어떤 마음일까.
2주쯤 전 응급실에 실려갔다. 응급실에 가기 전 집 앞 내과에 수액이라도 맞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빨리 뛰어 열 걸음도 못 가 길바닥에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평일 아침 8시, 길거리에 주저앉은 성인 여성이라니. 바닥에 앉아 생각했었다. 누가 나를 들쳐 매고 병원에 던져주면 좋겠다, 누구라도 나를 좀 부축해 주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친절하고 생각보다 경계심이 많다.
사람들은 내 얼굴에 묻은 속눈썹도 떼어주고, 옷 매무새도 만져주지만 정작 내가 죽을 만큼 힘들어 길거리에 주저앉아 있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아파트 코 앞에 있는 병원에 가는 동안 네댓 번이나 길에 주저앉으면서 나는 슬펐다. 가끔 길에 쓰러진 사람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다짐했었다. 만약 그런 사람을 보게 되면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고, 직접 나서지 못하겠으면 신고라도 하겠다고.
아니, 다시는 길거리에 주저앉을 만큼 아프지 않아야겠다.
다시는 가방을 열고 다니지도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