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진료를 앞두고 지난번 예약해 둔 사전연명의료상담실을 찾았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생겼다는 뉴스를 본 이후 내내 미리 등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환자에게 극심한 고통만 준다는 걸 숱하게 들었다. 지난 2월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누가 상담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저요."
라고 말하는데 순간 울컥 눈물이 치올랐다. 내가 왜 이러지 생각하며 눈물을 참으려는데, 예약하고 다음에 오라는 말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눈물이라니, 영정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고, 유서를 남기려는 것도 아니고 엄마, 아빠도 하셨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뿐인데 눈물이라니.
오늘은 좀 더 담대해져서 씩씩하게 상담실 문을 열었다. 의향서 제출을 위한 준비물은 신분증, 자필서명이 불가한 경우를 대비하여 도장, 글씨가 안 보이는 경우를 대비해서 돋보기나 안경 등이다.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치료의 효과 없이 생명만 무의미하게 연장하는 시술을 유보 혹은 중단하는 제도라고 했다. 시술에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혈압상승제, 수혈 등이 있다. 길에서 갑자기 심근경색 등으로 쓰러졌을 때에는 살리기 위한 심폐소생술을 시행한다. 다만 임종과정에 있는 경우 즉,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더 이상 시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말기 암환자의 경우 더 이상의 항암치료가 무의미할 때 항암제 투여를 중단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더라도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 영양분이나 물, 산소의 단순 공급은 지속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본인이 직접 작성하지 않았거나 본인의 자발적 의사로 작성되지 않은 경우 그 효력이 상실된다. 그리고 제출된 의향서는 종합병원급에서 공유되기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더라도 그 효력이 유지된다. 또한 의향을 변경, 철회하고 싶은 때에는 본인이 변경하거나 철회하면 되고 철회된 경우 모든 기록은 사라진다고 한다.
"호스피스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죽기 전에 가는 곳 아닌가요?"
"저도 전에는 그렇게 알고 있었어요."
호스피스는 죽음 전에 머무는 곳이 아니라 완화 의료 전문가들이 말기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경감하고 도움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하는 곳이라고 한다. 언젠가 통증에서 견디기 힘든 때가 오면 호스피스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죽음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고통이나 섬망과 같은 다양한 병증을 완화하고 심리적 도움까지 얻을 수 있는 곳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다.
설명을 듣고 서명을 하기까지 대략 15분 정도 걸렸다. 준비물도 그렇고 '젊으시니 태블릿에 직접 쓰시라' 하는 것도 그렇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하러 오는 분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인 것 같았다. 상담사는 어떤 병인지, 왜 하려는지 그런 걸 물어보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왠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약해질 것만 같으니까. 2주 안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카드가 집으로 배송된다고 했다. 카드는 지갑에 잘 넣고 다녀야겠다.
오늘은 7번째 항암날, 컨디션도 너무 좋고 피검사 결과도 모두 좋았다. 부작용도 거의 없이 항암치료를 받고 나오니 덥다. 정말 봄이 오려나 보다. 봄냄새가 매화를 타고, 개구리를 뛰어넘어 살랑살랑 날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