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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Jun 02. 2024

잊지 마, 너는 암환자야.

잊지 말라고, 너는 암환자라고 잊을 만하면 일깨워준다. 


4월 항암과 5월 뇌 MRI 검사 사이 3주를 여행 기간으로 정했다. 돌아오자마자 시차적응과 비행기에서 걸려온 감기에 시달렸다. 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도 남편은 밤을 새우고 아침에야 겨우 잠이 든 차였다. 항암도 진료도 검사도 일상이 되어버려선지 병원 가는 날도 별다른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곤히 자는 모습을 보니 이번엔 혼자 살짝 다녀와야겠다 싶었는데 남편은 기어이 따라나섰다.


"1년 만에 오셨는데요."

1분도 안되어 끝날 줄 알았던 진료였다. 교수님은 화면을 내쪽으로 돌리셨다.

"왼쪽 이마 쪽에 뭐가 보이네요."

왼쪽 전두엽 쪽에 6mm가량 종양이 생겼고 주변 부위가 부었다, 전이로 보인다는 거였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8년 전 뇌전이로 감마나이프를 실시한 이후 3개월, 6개월, 1년마다 뇌 MRI를 찍어왔고 그때마다 교수님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며 미소를 띄우셨다. 그때의 종양이 악성이 아니었던 건 아닐까, 전이가 아니었던 건 아닐까 여쭤본 적도 있었다. 대부분 뇌전이가 있으면 감마나이프 후에도 다발성으로 종양이 다시 발견되고 그러다가 감마로도 못 잡는 지경에 이르다가 결국 마지막을 맞는 걸 너무나 많이 보았다. 그런데 나는 그때 이후 단 한 번도, 단 한 개의 종양도 머리에서 보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때 발견된 건 양성일지도 모르고, 그러면 그때 2기였을 거고, 그래서 지금까지 폐암환자 중 가장 건강하게 잘 버텨왔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게 아니어도 나는, 운이 확실히 좋긴 하다.

내 또래의 환자들이 5년에서 8년 정도 생존을 하는 경우를 꽤 보긴 했지만 대부분 재발, 전이가 되는 시점부터 끊임없는 통증에 괴로워했다. 바꾸는 항암제나 주사는 1년은커녕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내성이 생겼고 또 다시 새로운 임상을 계속하거나 새로운 항암제를 찾다가 떠나갔다. 그렇게 많이 잃었다. 나는 다시 건강해지고 일상이 예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더 이상 폐암카페나 폐암정보를 찾아보지 않으면서 점점 더 무뎌지고 있었다.


평균 내성 1년이라던 타세바를 5년 넘게 먹었고 역시 1년이 평균이라던 표준항암 알림타도 벌써 23차까지 완료했다. 2022년 10월에 시작했으니 이미 평균 구간을 뛰어넘었다. 일주일 전 진료에서도 별 문제없다며 교수님과 방긋 웃고 헤어졌었는데, 신경외과 교수님은 종양내과 교수님께 알리고 다음 진료에서는 치료 방향이 달라질 거라 했다. 그리고 당장 감마나이프를 하자 했다. 또?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8년 전 그때 감마나이프를 할 때는 머리에 틀을 씌웠었다. 틀을 고정하기 위해서는 네 개의 나사를 머리에 박아야 했는데 마취를 해도 아프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타세바 부작용인지 감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일주일 전부터 갑자기 구토와 오심이 시작되었다. 감마나이프를 하는 당일 머리에 마취를 하면서 간호사에게 물었다.

"마취해도 아파요?"

"네. 아픕니다."

그 이후 기억이 없다. 아프지도 않았고 그저 계속 울렁거렸고 토했고 그래서 시술이 끝난 후 당일퇴원을 못하고 하루 더 입원했던 기억, 입원 직후 또 토했던 기억, 나사를 박았던 자리가 아물 때까지 머리를 감지 못해 오래 힘들었던 기억, 머리를 감으면서 뇌 속까지 세척하는 기분, 그 이후 매일 두 주먹씩 빠졌던 머리카락.


남편을 불렀다. 교수님은 남편에게 간단히 설명했고 남편도 질문을 했다. 나는 종양이 하나뿐이니 지켜보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지금 위치가 좋고(수술하기에) 하나뿐이라 감마도 할 수 있지만 지켜보다가 급격히 커지거나 여러 개가 생기면 더 힘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결국 4일 입원, 5일에 감마를 받기로 했다. 다행인 건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마스크를 씌워 고정해서 시술을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큰일이다. 감기가, 기침이 떨어지지 않아서.


울지 않았고 크게 놀라지 않았다. 내가 아픈 게 낫지, 자기가 안 아파야 하는데 하는 남편의 말에 울컥했고 미안했다.


어쩌면 또 이렇게 시작되는 건가 싶어 살짝 걱정도 되지만 흉수도, 림프절 전이도, 심장에 물도, 항암 주사도 모두 잘 지나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또 한 번의 시련이 아니라 잊지 말라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너무 자만하지 말고, 적당히 조심하며 살라는 계시를 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겠다.


곧 지나갈 테니까.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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