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만났다. 나는 예정대로 이사를 했고 그는 강아지와 함께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모든 게 너무 빨리 이루어졌다. 최소 사계절을 겪어보고 결혼을 해야 한다는 기본 철칙도, 아니 암환자니까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모든 것이 깨어졌다. 영원히 사랑하자는 그 약속을, 그냥 하는 남자들의 말을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어리석다.
우리는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천국이라는 이름이 붙은 야외결혼식장이었다. 매니저는 리허설 후 결혼식이 진행될 거라 했다. 집에서 가져온 사계절 양복을 입고 연신 덥다며 투덜거리는 남편이 웃겨 리허설 내내 나는 방실방실 웃었다. 가지런한 코털의 주례할아버지와 팝송을 트로트같이 부르는 우쿨렐레 할아버지도 너무 진지해서 또 웃었다. 무슨 리허설을 이렇게 꼼꼼하게 하나 생각했을 때 알았다. 이건 진짜 결혼식이었고, 이제 결혼식이 끝났다는 걸. 우리는 서명을 했고 부부가 되었다. (리허설이라 해놓고 결혼식을 진행하면 어쩌냐고 묻지 못했다. 바로 케이크 컷팅과 웨딩 촬영이 이어졌다. 남편은 주례사를 들으며 리허설이 아니구나, 결혼식이구나 생각하고 받아들였다고)
하객도 없이 둘이서만 하는 결혼식이라 엄마, 아버지는 서운하셨겠지만 기꺼이 응원해 주셨다. 그 누구보다 딸의 결혼을 기다렸지만 결국 암에 걸려 포기하고 말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결혼을 한다 하니 엄마는 목이 멘다 하셨다. 남편은 언젠가 모든 상황이 정리되면 그때 가족들 모시고 다시 결혼식을 하자 했다. 남편의 상황을 이해하고도 남았기에 나도, 우리 가족도 모두 그러겠노라 했다.
엄마와 남편이 처음 만나던 날, 엄마는 우리 딸 잘 부탁하네 따위의 말은 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걸렸던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픈 건 괜찮은가."
"아픈 게 죄는 아니니까요."
그 대답이 좋았던지 엄마는 사윗감이 맘에 쏙 들었다고 했다.
지금 우리 집에는 애 셋이 산다. 마흔 후반의 철없는 여자랑 자기가 철들었다 생각하는 철없는 남자랑 하루 20시간을 자는 순둥이 철부지 강아지 셋이.
"남자들은 대부분 변하지만 나는 한결같지."
하지만 그는 이미 테리우스 머리에 산송장 같은 그 P가 아니다. 그는 이미 남들과 다르지 않은 그런 남편이 되었다.
카톡은 연애고 대화는 현실이다. 달콤한 톡을 보내던 남자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싸움 후 침묵이 길어질 때면 나는 생각한다. 처음 그 마음만 기억하자고. 그를 살려야겠다는.
그는 내가 처음으로 결혼을 결심한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라면 오래 행복할 것 같아서.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듯 결혼 생활은 현실 그 자체라는 걸 깨닫는 중이다. 행복하기도 하지만 너무 오래 달리 살아온 두 사람이 함께하다 보니 부딪치는 것도 많다.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맞춰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