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몇 달 만에 남편은 딴사람이 되었다. 로맨티시스트 그 자체였던 사람은 온 데 간 데 없고 그냥, 그저, 남편이다. 그래도 병원에 갈 때에는 옆에 있어준다.
남편은 나를 만나 살이 5킬로 찌고, 나도 남편을 만나 그만큼 살이 쪘다. 우리는 하루종일 함께 있고 하루종일 함께 먹는다. 그리고 종종 싸운다.
사귀기로 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자기의 상황과 처지를 여러 번 말하면서 내게 미안해했다. 내가 나이가 많거나 아픈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자기 앞에 놓인 여러 가지 상황은 내게 문제가 될 수 있다, 아직 그만둘 시간이 있으니 언제든 말하라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달콤함과 잔인함을 오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에 눈물이 툭 떨어졌다.
“나중에 내 소원 하나는 꼭 들어줘야 해요.”
“뭔데요?”
“나중에 말할게요. 그때 꼭 들어줘요.”
뻔했다. 그 소원이라는 게.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언젠가 그가 말했었다. 내가 가을씨를 닮았다고. 그가 잃은 사람가을, 그의 소원은 그를 가로막는 장애물, 상처가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있는 사람, 그 사람 때문에 웃다가 또 울었다.
우리 맞은편 케이블카에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아이들을 만난 지 참 오래되었다. 너무 반가워 손을 흔들었다. 그다음 칸 담임선생님은 우리를 향해 손을 먼저 흔들어 주었다. 내가 응답하자 선생님 옆에 앉은 여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내기를 한 모양이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그는 여전히 내 눈을 잘 보지 못하지만 많이 웃었다. 점점 명랑해지고 점점 밝아졌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떤 노래든 내가 한 소절을 부르면 이어 그가 불렀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너무 말라서 얼굴에 파인 주름 때문인지 꽤 나이가 들어보였었다. 머리를 단정하게 (좀 웃기게) 바짝 자른 그의 모습을 보니 세 살이 아니라 나보다 다섯 살은 어려 보였다. 경각심(!)을 가지고 더 먹여야겠다 다짐했다.
샤스타데이지가 지천에 피었다.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샤스타데이지 보고 싶어요.”
거기는 그의 어머니의 고향이라고 했다. 바다와 꽃과 차가 있는 곳, 거기에서 우리는 또 싸웠다. 그의 두려움이 뭔지 잘 알겠지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나는 암환자가 아닌가, 이런 나를 기꺼이 받아주기로 했다면 나도 그를 기꺼이 받아줄 수 있었다. (유부남만 아니면 되는 것 아닌가.)
‘너무 고운 사람인데 나 같은 사람 만나 마음 다치진 않을까. 귀한 사람인데 내 욕심부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서 마음이 쓰여. 미안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