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새로운 형태의 금(Gold)일까?
금이 인류역사에 출현한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일설에 따르면 금의 반짝이는 성질과 희소성 때문에 찬란히 빛나는 태양을 숭배하는 문화 속에서 왕의 권위를 세우는데 장신구 등의 재료로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금광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금의 공급이 이전에 비해 늘어남에 따라 금은 다른 용도로도–예를 들면, 거래의 매개체나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으로–사용되었다. 20세기 들어서는 브레튼우즈 협정 체결(1944) 결과로 시작된 금본위제 하에서 금은 주요국 통화의 가치를 유지하는 앵커(anchor)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금본위제는 1971년 미국 닉슨대통령의 선언으로 무너지게 되는데 이는 당시 미국의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명목자산인 미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실물자산인 금과의 가치를 고정하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브레튼우즈 협정을 체결한 주요국들이 미국 달러와 금의 태환을 요구하였고 경기가 부진했던 미국은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되었다. 이후 금과 미달러화의 상대적 가치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동하게 되고 국제금융시장에서 금은 대표적인 안전(실물)자산으로 가치저장수단 측면에서 미달러화의 대체재가 된다. 특히 달러화가치가 하락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시기에는 금에 대한 수요가 늘어 난다.
금이 이렇게 인류의 역사 시작부터 지금까지 살아남게 된 주된 이유로 금이 갖고 있는 특유의 성질인 내구성과 희소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주식이나 채권같은 유가증권시장에 발맞춰 발달된 금시장의 인프라에 기반한 높은 유동성도 한 몫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이러한 금의 대체재 역할을 하는 디지털골드로 볼 수 있을까? 최근까지 비트코인이 금을 대체하는 금융자산으로 사용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는 글과 사람들을 관련업계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주된 이유는 네트워크 상에서 존재하는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로 구현되어 한 번 장부에 기록된 거래가 수정되거나 해킹당할 가능성이 매우 낮고 총 발행량이 2,100만개로 고정되어 있어 희소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거래소를 통해 쉽게 비트코인을 거래할 수 있어 상대적인 유동성 또한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일견 타당해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금의 가격과 비트코인의 가격 추이를 살펴보면 시장은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시기에 두 자산의 가격을 비교해보면 모두 큰 폭 상승하였다. 금의 경우 2020년 3월말 대략 1,500달러/온스였던 가격은 2,000달러/온스를 넘는 수준까지 상승하였고 비트코인의 경우 대략 620달러/BTC였던 가격은 6,000달러/BTC를 넘어섰다. 코로나19 전염병 확산으로 시행된 각종 봉쇄조치로 인해 촉발된 역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주요국 중앙은행 그리고 정부는 엄청난 양의 유동성을 민간에 공급했고 이는 금을 비롯한 실물자산과 비트코인 수요증가로 이어졌고 결국 이들 가격이 모두 상승하였다. 그러나 2021년 하반기이후 인플레이션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경제 내 불확실성이 쌓여가자 금과 비트코인 가격의 움직임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금의 가격은 최근 미달러화 강세가 이어지기 전까지 상승한 반면 비트코인의 가격은 오히려 큰 폭 하락하였다.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시작된 명목자산가치의 하락과 경제 내 불확실성 확산으로 전통적인 안전자산인 금의 수요는 늘어난 반면 디지털 골드라고 불리던 비트코인에 대한 수요는 감소한 것이다. 특히나 비트코인의 가격은 여타 기술주의 가격과 강한 동행성을 보였다. 시장은 비트코인이 “디지털골드”가 아니라 기술주와 같은 위험한 투자자산으로 본 것이다.
향후에는 이러한 상황이 바뀔 수 있을까? 가까운 미래에는 이러한 상황이 바뀌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금과 비트코인은 본질적으로 다르기때문이다. 금은 내재적 가치가 존재한다. 다른 금속에 비해 내구성이 뛰어나고 유연해 다양한 용도로 사용이 되고 있다. 장신구를 만드는데 사용되기도 하고 전기전자분야에 필수적인 산업재료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유용함때문에 금괴(또는 골드바)로 만들어져 개인뿐만아니라 중앙은행과 같은 공공기관의 가치저장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래전 과거부터 실물자산으로서 금에 대한 지위는 확고하게 유지되어 왔고 가까운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반면 비트코인은 네트워크상 숫자와 문자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디지털 기록이다. 비트코인을 이용해 물질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것도, 그로 부터 효용을 얻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내재적 가치가 없다. 물론 교환의 매개체로서 사용되는 경우 추가적인 경제적 잉여를 창출할 수도 있겠으나 현재에도 비트코인보다 더 우월한 매개체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비트코인의 가치는 비트코인이 만들어 내는 실질적인 가치보다는 향후에 누군가가 비트코인을 계속해서 매입해줄 것이라는 기대에 의존해왔다. 기대라는 것은 불확실성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이러한 취약성이 최근 비트코인의 가격 급락으로 나타났다. 비트코인이 안전한 실물자산인 금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정리하면 2020년 코로나19 전염병이 퍼지던 시기 급격히 늘어난 시중유동성은 비트코인의 가격이 그 이전에 상상할 수 없었던 속도로 상승하는데 기여하였다. 이는 일반 경제주체들 사이에서 비트코인의 가치가 기술발전으로 창출된 새로운 경제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고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것 이라는 믿음이 형성되는 데에 일조하였다. 여기에 더해 금과 유사해보이는 성질을 갖고 있는 비트코인이 새로운 형태의 금, 즉 디지털골드라는 생각으로 귀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금과 유사해보일 수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다르기 때문에 현재에도 그러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도 디지털골드가 될 가능성 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