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었구나.
한국 대기업에 근무하는 동안 감사하게도 영주권이 나왔고.
이제 나는 법적으로 취업이 가능한 상태였다.
본격적인 구직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인터뷰 경험이 없는 나에게 첫 인터뷰는 내가 사는 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대기업이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잡 타이틀과 아주 유사한 잡이었고,
글로벌 기업에 다닌 내 경력이 리쿠르터의 눈에 아주 띄었던 것 같다.
처음 해보는 리쿠르팅 절차라 처음엔 모든 순간이 어려웠는데, 나중에는 이 순서가 아주 익숙해졌다.
application (resume/cv) -> phone screening -> 1st round interview -> 2nd round interview
난데 없이 난관은 Hireview 라는 이름의, 폰 스크리닝과 첫번째 면접 사이의 화상 레코딩 면접이었는데
시작버튼을 누르면 화면에 뜨는 질문에 답을 하는 내 모습이 레코딩되는데,
제일 불편한 부분이 '영어로 말하는 내 모습'을 내가 화면으로 마주 보며 이야기해야한다는 것이다.
내가 말할때, 한국어로도 마찬가지이지만, 영어를 말할때의 소소한 내 표정, 입꼬리의 움직임, 찡그림, 눈가의 주름 그 모든 것이 거슬렸고 너무도 불편했다..
시간 제한이 없어 망정이지, 답변을 끝없이 수정해가며 장장 몇 시간에 걸쳐 몇가지 질문을 마무리하고 자폭하는 심정으로 결과를 기다렸는데, 정말 놀랍게도 다음 면접 일정이 잡히게 되었다.
평소 큰 일 앞에서도 잘 긴장하지 않는 성격 탓에,
학창시절 시험기간에는, 너 공부를 많이 했구나, 라는 오해를 자주 샀던 내가 이 일생일대의 최대 기회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그날은 11월 첫주 금요일이었고 나의 인터뷰는 9시였다.
인터뷰는 화상, 패널 인터뷰였고, 나의 전 직장에서와 마찬가지의 형식 (면접관 소개, 직무 소개 -> 4가지 정도의 behavior questions -> interviewee questions) 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런 익숙한 형식과 면접관들의 학습된 정중함과 교양있는 자세에도 불구하고,
사시나무 떨뜻 떨다가, 머리속이 하얘지고, 횡설수설하다가 또 머리속이 하얗게되는 상황을 반복하다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취업전선에 다시 나와보니 세상은 바뀌어있고
나는 화상 인터뷰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급기야 이 구역 최대기업이라는 아우라에 눌려서, 그리고 어떻게든 이 기회를 잡아서 보란듯이 재기해야한다는 과한 중압감에 사로잡혀, 결국 이후 오랜동안 나는 화상 인터뷰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된 길고긴 여정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 되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