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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부른곰 Feb 13. 2020

1-1. 가족과 유럽 한달 여행

한 달 떠나는 일도 쉬운 듯 어렵다.

아빠, 엄마, 중학생, 초등학생과 함께 하는 유럽 한 달 여행


처음엔 한 이 년 정도 정처 없이 세계 곳곳을 누리거나, 느긋하게 지구 한 바퀴 돌아서 오는 여행을 꿈꿨다. 돈이 없으면 집을 팔고, 시간이 없으면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인생 뭐 있나? 한 번 사는 인생. 내일 죽으면 끝인데.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사는 거지. 결혼 전부터 아내와 그렇게 여행에 대한 꿈을 꿨다.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자유로운 영혼처럼 여행을 떠나리라. 모든 것을 던지고 바다 위의 해파리처럼 세계를 떠도리라. 그런데 우리의 계획은 그런데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혼하고, 애를 낳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둘째가 태어나고, 바쁜 일상과 정신없는 하루살이 속에 어느덧 시간은 10년 넘게 흘러갔다. 인생 뭐 없는 줄 알았는데, 인생 뭐 있더라. 아이들도 있고, 사랑하는 아내도 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내 인생도 있었다. 내일 죽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사람은 보통 내일 죽지 않더라. 내일 죽을 것보다, 내일 뭘 먹을지 걱정하는 게 더 큰 일이라는 깨달음마저 얻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몇 년 여행하는 동안 돈은 누가 벌고, 아이들 학교는 어떻게 하고, 한국에서의 일들은 무슨 재주로 관리하지? 물론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못 하겠다. 부평초처럼 날고 싶었던 내 몸은 그동안 너무 무거워졌다. 아들이 둘이나 달려있다. 나이 드신 부모님도 계시다. 현실에 대한 걱정도 많아졌다. 돈 못 벌면 굶는데? 아이들 학교 1-2년 못 가면 인생 복잡해지는데? 속세를 떠나는 것도 아니고, 어디 야반도주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여행 가는 것이다. 여행 끝나고 돌아왔는데 집도 절도 없는 뒷감당 안 되는 여행은 말이 안 된다. 여행 갔다 와도 먹고살 수 있고, 일상이 온전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 년 이상은 어려웠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시간을 내면 한 달은 가능할 것 같았다. 유럽 한 달. 불가능할 건 없잖아? 1년도 아닌데, 고작 한 달인데. 그동안 열심히 살았는데 한 달 여행이 그리 사치가 될까? 그런 생각이 들자, 여행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한 달이라면 해 볼만하다. 이 여행은 그렇게 계획되었다. 아이들 더 크기 전에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문득 가족 여행을 꿈꾸는 대부분의 가정이 나와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 이상의 여행은 아이들 학교 문제부터 집안의 대소사까지 다양하고 복잡한 사정이 여행을 어렵게 만들지만, 다른 사람들도 시간을 억지로 낸다면, 한 달 정도는, 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았다. 어쩌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라면, 아빠 엄마가 포함된 가족 모두의 여행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내가 했던 고민들이 도움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서 글을 쓰게 된 이유다. 


더 늦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긴 여행에 대한 예쁜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 이 사진은 몇 년 전 우리 가족을 찍은 사진이다.


나와 우리 가족에 대한 소개


우리 가족은 40대 중반의 나와 아내,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3학년 아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결혼하고 일산에 들어와 살고 있다. 결혼 전에는 세련되고 준수한 외모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배가 나오고 머리카락이 점점 사라지는 아저씨가 되었다. 시간이라는 마법이 나에게 뱃살을 선물로 주고, 그 대가로 머리카락을 가져가고 있다. 시간과의 이 불평등한 거래에 울컥하기도 하지만, 샤워하고 스킨로션 이외의 크림을 바르거나 머리에 왁스 한 번 바르는 일도 매우 귀찮아하는 대한민국 보통의 아저씨다. 


아내와 나는 자영업을 같이 하고 있다. 큰 사건이 잘 안 생기는 작은 회사이지만, 매출도 작아서 큰 근심 가득한 곳이다. 직원수 몇 명 되지 않아 볼 것, 못 볼 것을 공유하는 코딱지만 한 곳이다. 직원들 모두 오래 회사를 다녀서 나와 친하다. 분명 직원들도 나와 친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장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한다.


아내와도 매우 친하다. 집에서까지 가끔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존댓말을 할 정도다. 물론 보통 돈 달라고 할 때 그런 호칭을 쓴다. 아이들과도 사이가 좋다. 별 시시콜콜한 소리까지 다 해서, 그런 이야기는 아무리 내가 아빠라도 하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다. 아들 친구들이 놀러 오면 속으로, 아.. 니가 그 아이구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꿰고 있다. 내 아들들이라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녀석들은 참 재미있다. 가만히 쳐다보면, 우리집 아이들의 일상은 시트콤에 가깝다.


우리집 가훈은 "재미있게 살자." 이다. 사람은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고 믿는다. 전제조건은 있다. 자신의 즐거움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책임 없는 재미는 후회가 되고, 책임 없는 인생은 범죄에 가깝다. 책임과 재미에 대해 더 설명하면 재미없어지니까 그건 생략. 다만 덮어 놓고 놀다 보면 거지꼴을 면할 수 없다는 말은 세상 불변의 진리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즐거움이어야 한다. 우리 가족은 재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놀러 다니며, 책임 있는 삶을 위해 더불어 열심히 일하고 산다.



1년에 30일 정도 가족들과 국내외를 떠돈다. 매년 1월 여행 사진을 모아 집 벽 한쪽에 포토월을 만든다. 벌써 10년째다



아이들과 함께 오랫동안 여행을 준비했다.


한 달짜리 여행이지만, 고민도 많았고 준비 기간 역시 길었다. 아무리 직원들과 친한 자영업자라지만 한 달간 회사를 비우는 건 다른 문제다. 생각보다 예산도 많이 챙겨야 하고, 아이들 스케줄도 생각해야 했다. 한 3년 전부터 아내와 계획 짜고, 아이들 용돈 적금하고, 여행 통장 만들어서 예산을 모았다. 둘째 아이가 초3이라 조금 어리지만, 큰 아이가 중 1이라 지금 이 시기가 맞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위해 아이들 세뱃돈이나 가욋돈을 원천징수하는 것에 대해서 아이들은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은 유럽 여행 계획을 들었을 때부터 적극적이었다. 아이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여행을 자주 다녀 호기심과 여행 근육이 단단히 단련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핑계로 우리가 돌아볼 나라에 대해 같이 공부를 했다. 큰 아이는 프랑스 대혁명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둘 째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유럽의 문화에 대해서도 같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아이들은 영국에서 축구를 보고 싶다고 했고, 스위스에서 스키를 타고 싶다고 했고, 이탈리아에서 피자가 먹고 싶다고 했다. 


아는 만큼 보게 되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여행지에 가서 건물 보면 그냥 잘 만든 집을 뿐이고, 좋은 그림을 봐야 옛날 그림에 불과하다. 수 천년 전 찬란하고 거대한 문명을 이끌었던 포로 로마나에 가봐야 부서진 돌 밖에 없다. 휙 관광지 보고 지나가는 여행은 금세 지치게 마련이다. 건물의 유래를 조금이라도 알면 건물이 다르게 보인다. 그림이 주는 감동이 다르며, 유적지의 돌덩어리들은 이야기로 전설로 신화로 다가온다.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일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아내와 함께 정성 들여 밀어붙였다. 분명 유럽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아직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니다. 비행기표와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1월 말부터 2월 말까지 딱 한 달 여행이다. 아이들에게는 첫 유럽이기에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도는 간단한 코스로 일정을 짰다. 일정이 더 길었다면 차를 빌려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를 돌아 이베리아 반도로 넘어가는 코스와 동유럽을 가로질러 그리스 유적까지 보고 오는 일정도 넣고 싶었는데, 그건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일정을 빡빡하게 해서 여행을 가는 것은 우리 취향에 맞지 않는다. 최대한 현지에서 느긋하게 즐기고, 먹고, 보고, 느끼는 것이 여행의 참 맛이라고 생각한다. 여행 글은 여행 다니다가 생각날 때 바로바로 쓰기로 결심했다. 갔다 와서 글을 쓸까 했지만, 쌓아 두는 글은 어차피 안 쓰게 되더라. 차라리 그날 있었던 일을 일기처럼 정리해서 글을 올리는 것이, 게으른 사람들의 글 쓰기에는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날그날을 기록한 글들은 다음 날을 위한 복선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SNS도 아닌데 라이브로 쓸 수는 없다. 적당히 익혀가면서, 뜸 들여가면서 쓸 생각이다. 처음 시작하는 이 글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어떻게 읽히게 될까? 진심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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