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은 더이상 지루하지 않았다.
출발일이 다가오자 코로나 바이러스가 갑자기 창궐하기 시작했다. 중국 우한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갔다. 전염병은 중국을 넘어 세계 각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병보다 빠르게 공포에 질려 갔다. 거리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마트나 영화관처럼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을 꺼렸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감에 여행 커뮤니티에는 여행을 취소하겠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심지어 공포감에 내년에 가는 여행을 취소하겠다는 사람도 생겼다.
우리도 여행을 미룰까 잠깐 망설였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우리나라에 2번째 환자가 발생했지만 중국에서 유입된 환자이며, 아직 국내 전파는 없다. 게다가 유럽은 청정 지역이다. 걱정은 해야겠지만 불필요한 공포감에 사로잡힐 필요 없다. 아시안에 대한 차별이 신경 쓰였지만, 그것도 아이들이 한번 정도 경험해봐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차별받는 경우가 생긴다면, 차별이 얼마나 나쁜 행위인지를 배울 수 있으리라. 문득 상하이를 경유하는 남방항공을 예매하지 않았던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방항공이었다면 여행은 포기했을 것이다.
예상대로 공항 안의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동여 매고 있었다. 우리도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혹시나 싶어 낮에 마스크를 5장씩 구매했다. 두 번째 환자 입국 이후 뉴스에서는 공항에 물안경을 쓰거나, 방독면을 쓴 사람들도 생겼다고 했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세상에는 다른 생각을 가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고, 언론은 그런 사람들을 과장하기 마련이다. 문득 잠수부용 마스크를 공항에 가져와서 쓰고 다니면, 뉴스에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 밥을 먹으며, 우리는 서로에게 화내지 않는다는 약속을 분명히 했다. 화를 내더라도 마음이 풀어지면 바로 말을 하고, 상대의 마음을 풀 수 있게 노력하기.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화를 내지 않고 사는 일은, 득도한 부처님이나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작은 일에 흥분하는 우리 같은 범부에게는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행이 있는 여행에서는 꼭 지켜야 하는 불문율이다. 여행 구성원 누군가 한 명이 화를 내버리면 급속도로 모두에게 전염된다. 나쁜 분위기는 코로나보다 전염이 더 빠르다. 그런 상황에서는 음식도 쓴 맛일 뿐이고, 멋진 장면도 짜증일 뿐이다. 기분 좋게 다니기. 가족 여행에 10 계명이 있다면, 이게 첫 번째다.
사실 가장 화를 참아 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와 아내다. 남자아이 둘과 한 달 여행을 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남자아이 키워본 집들은 공감할 것이다. 분명,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라 할 지라도 하루에 주먹을 몇 번씩 쥐게 될 것이다. 화내지 않기라는 맹세는 아내와 내가 우리 스스로에게 당부하는 말이기도 했다. 우리만 참으면 된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화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우리 아이들은 격한 자기감정을 타인에게 토해내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식당을 나오며 파이팅을 했다. 화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시작했으니 잘해보자. 즐겁게 다니자.
11시간 30분의 여행. 처음엔 생각이 많았지만, 금세 지루해졌다. 비행기 안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먹다 말다도 반복했지만 심심했다. 장거리 여행은 이게 문제다. 금세 지루해진다. 그렇지만 곧 지루함은 날아가고, 패닉에 빠져버렸다.
둘째가 갑자기 열이 나더니, 기침을 시작한 것이다. 충격이었다. 시국이 어떤 시국인데. 아파도 아프면 안되는 시국이다. 당황스러웠다. 걱정스러웠다. 우리는 5년 이내에 중국에 간 적도 없고, 3개월 이내에 외국에 나간 적도 없다. 여행 1주일 전부터 안전을 기한다고 아이들을 학원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 안에서 열이 나더니, 기침을 시작한 것이다. 앞이 깜깜해졌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불길한 걱정부터, 여행을 포기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까지 순서대로 들었다. 진짜로 5만 가지 정도의 생각을 했다.
일단 스튜어디스에게 알렸다. 승무원의 판단에 따르기로 했다. 승무원은 아이의 열을 재더니, 아무 말없이 우리에게 해열제를 건네주었다. 승무원의 침묵과 해열제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는 안도했다. 승무원들도 오늘 한국에 두 번째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별다른 동요 없이 약을 건넨 것이다. 고마웠다. 열은 한 시간도 안되어서 쉽게 잡혔다. 기침도 많이 줄어들었다.
둘째는 매년 이맘때 감기를 앓는다. 개근상도 아니고 매년 빼먹지 않는다. 나가서 노는 것보다 방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이다 보니 체력이 좋지 않고, 편식이 심해 면역력도 나쁘다. 여행 몇 주 전에 쓴 글에서 둘째를 위해 해열제를 미리 사두겠다고 적었을 정도다. 이맘때 의례 감기에 걸리겠지 했는데, 하필 그게 비행기 안에서였다.
비행은 더 이상 지루하지 않았다. 졸리지도 않았다. 머리가 맑아졌으며, 생각이 또렷해졌다. 이 정신이면 공부해도 잘 되겠다 싶을 정도였다. 30분에 한 번씩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대 봤다. 열은 없었다. 기침만 한 시간에 한두 번 정도 했다. 머릿속에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걱정과 희망이 무한 반복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즈음 마음을 정리했다. 아이의 상태를 잘 관찰하고, 다시 열이 나면 바로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전까지 최대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여행을 즐기기로 결정했다. 여행보다 건강이 우선이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한 달 여행의 시작이라 신나서 희희낙락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우리의 분위기는 그다지 밝지 못했다. 아내와 나는 각자 생각에 빠져 말을 잃었고, 큰 아이는 엄마 아빠의 그런 분위기에 눌려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신이 난 사람은 이 분위기의 원인 제공자인 초3 우리 둘째 아들이었다. 이해는 한다. 처음 와 본 영국이라 신이 났을 것이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마구 떠들고, 뛰어다녔다. 그러다 지치면 기침을 했다. 물 몇 모금 먹고 기침이 잠잠해지면 다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심지어는 쇠사슬로 된 바리케이드를 마구 흔들어대서 경찰이 쫓아와서 제재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놀다가 숨이 가쁘면 다시 기침을 했다. 오 마이 갓. 좀 가만히 있으라고! 까불지 말거나,기침을 말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하라고. 좀 가만히 있으라고. 좀 조용히도 하고. 그렇게 부탁하고 당부했다. 제발 가만히. 가만히 있어라. 하지만 나의 부탁은 10분 이상 먹히지 않았다. 다시 장난치고 기침하고, 물먹고 잠잠해지고를 반복했다. 둘째에게 분노가 치솟았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렇지만 화를 내지 않기로 맹세했었다. 첫날부터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눈을 감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돌이켜보면 예수님과 부처님 급의 참을성이었다고 자부한다.
일단 오이스터 카드를 자판기에서 뽑았다. 현금 자판기의 줄이 너무 길어서, 신용카드로 오이스터 카드를 구매할 수 있는 자판기에서 뽑았다. 신용카드를 준비해 두면 오이스터 카드 뽑기에 편하다. 둘째는 호텔까지 가는 지하철에서도 시끄럽게 떠들었고, 간간히 기침을 했다. 지하철에서 동양인 아이가 기침을 하자, 사람들이 옆으로 슬금슬금 피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사람들도 뉴스를 통해 중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현지인들도, 외국인들도, 아시아인들도 아무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굳이 먼저 마스크를 꺼낼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인종차별의 표적이 될 필요는 없다.
기침을 하는 아이와 피하는 것 같은 사람들 모두에게 미안해졌다. 사실 별 것 아닌 증상이다. 아이가 축 늘어져 있지도 않고, 몸살로 고통스러워하지도 않는다. 웃고 떠들며 가끔씩 기침을 하는 것뿐이다. 평상시였다면 사람들도 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이러스와 함께 공포까지 전염되는 시국이라 그럴 것이다. 피하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내가 이 사람들 입장이었다면 어쩌면 똑같이 행동했을지 모른다. 우리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평소처럼 떠들고 간간히 기침을 하는 것뿐이다. 평소였다면 나도 조용히 하라고는 했겠지만, 이렇게 10분에 한 번씩 굳은 표정으로 부탁과 협박을 동시에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와 주위의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심란한 마음으로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왔다. 일단 나는 침대에 누워 말없이 천장을 바라봤다. 여행 시작부터 힘들었다. 아침부터 일이 많았다. 어제는 새벽까지 야근을 했다. 휴. 한숨을 돌리고 있으니, 아이들은 옆 침대에서 뛰기 시작했다. 트램펄린 위에 있는 것처럼 방방 뛰었다. 왜 아이들은 침대를 보면 뛰는 것일까? 조건 반사 같은 것일까? 우리 집 아이, 다른 집 아이, 가리지 않는다. 우리 집 아이도 다른 집 가면 뛰고, 다른 집 아이도 우리 집에 오면 뛴다. 그냥 침대만 보면 뛰는 것 같다. 지금은 우리 집 초3이 뛰니까, 그 옆 중1도 뛴다. 중 1의 점프력은 남다르다. 집 무너지겠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은 상황이다. 먼지가 날리지만 이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우리 집 침대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둘째는 기침 중이다. 조금 전에도 그렇게 점프 몇 번 하고 나서 기침을 했다. 그만 뛰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나는 화내지 않는 도를 닦고 있는 중이다. 주먹을 쥐어 아이 얼굴에 가져다 대고 조용 조용히 부탁을 했다. 그만 좀 뛰어라. 너희를 때릴지도 모른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최대한 부드럽게 사정을 했다.
침대에 누워 조금 쉬다가 TV를 켜니, BBC에서 우한에서 영국인들을 실어오기 위해 논의 중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이런 데서 효력을(?) 발휘한다. 영어 말은 못 알아먹어도 자막은 대충 이해가 갔다. 이들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큰 뉴스거리였다. 수송기를 보낸 것도 아니고, 싣고 오는 것도 아닌데, 주요 뉴스거리가 되다니.. 검색을 해 보니 아직 영국에서는 환자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연일 주요 뉴스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저녁이 늦어서 일단 애들은 대충 씻기고, 나와 큰아들은 근처에서 먹을 것을 좀 사 왔다. 아파트형 호텔이라 간단한 조리기구까지 있었다. 입맛도 없고 해서 저녁을 대충 먹었다.
밥 먹고 침대에 넷이 누워 각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둘째는 목이 아프거나 간지럽지는 않단다. 그냥 기침이 나온단다. 참을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고 했다. 병원에 가자고 했더니, 내일부터 기침을 줄이겠단다. 기침량을 조절할 수 있다니 무슨 초능력자도 아니고 병이 좀 희귀하다.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았다. 앞서도 적었지만 둘째의 기관지염은 매년 반복되는 고질병이다. 큰 아이도 저 나이 때 비슷한 증상으로 몇 년 고생했었다. 나 역시도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유전병인가?
TV를 켰다. 침대에 넷이 누워서 오손도손 TV를 보는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다. 좁은 침대에 넷이 다닥다닥 누워 소곤거리니 무언가 알콩한 재미가 있었다. TV에서는 우리나라의 복면가왕 비슷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의 방송국에서 외국에 저작권을 팔았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한국의 방송 포맷을 외국에서 보니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봤다. 그렇지만 얼굴을 보여줘도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인데, 복면으로 가리고 나오니 당최 흥미가 진진해지지 않았다.
내가 제안을 했다. 복면을 벗기는 순간, 복면 속의 사람 얼굴을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짓는 걸로, 그 사람 얼굴을 봐도 누군지 모르겠지만 가장 많이 놀라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놀라는 표정을 비디오로 촬영해서 판정하는 걸로, 내기를 했다. 이기는 사람에게 10파운드를 주기로 했다. 게임을 시작했다. 그러자 1도 누군지 모르는 게스트들이 나와 0.1도 모르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내는 영국판 복면가왕에 우리 가족 모두가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면을 벗는 순간, 0.01도 모르는 가면 속 주인공의 얼굴을 보며 모두가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오 마이 갓을 외쳤고, 둘째는 “이럴 수가, 저럴 수가”라며 땅을 쳤다. 아내는 식스센스의 반전을 보듯 경악하는 표정이었고, 큰 아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어어어 어”하고 소리를 쳤다. 나중에 비디오로 우리 가족의 표정을 둘러보니 가관이었다. 서로 자기가 이겼다며 우기다가 다른 가족의 매소드 발연기를 보며 한참을 낄낄거렸다. 침대에서 웃고 떠들다가 아이들은 먼저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잠들고 아내와 일어나 맥주를 땄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런던에 잘 도착하고 첫날을 보낸 것을 자축했다. 둘째의 기침이 여행 초반의 작은 해프닝이기를 바라며 건배 했다. 행복해하며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같이 행복해졌다. 창 밖의 어두운 런던 거리를 내려다보자 기분이 아늑해졌다. 영국의 겨울답게 추적추적 비가 내렸지만, 헤드라이트 비치는 거리 풍경은 고풍스러웠고 빗방울에 반짝이는 건물들은 이국적이었다. 낮에는 정신이 없어 몰랐지만, 영국에 왔다는 현실이 느껴졌다. 오늘이 한 달 여행의 시작이다.
여행이 별건가? 일상이 집 밖으로 조금 이어진 것에 불과하다. 조금 늘어난 그 작은 공간이 신기하고 낯설어 흥분되고 즐겁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일 뿐이다. 여행 때문에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공간을 이해하지, 공간이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여행은 판을 깔아줄 뿐이다. 우리가 우리다워질 수 있는 판. 새로운 공간을 우리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게 낯설음이고 새로움이지만, 그것을 즐기는 것은 우리 몫이다. 외국인이 나오는 복면 가왕을 보고도 우리는 한참을 웃었고, 어둡고 비 내리는 낯선 거리 풍경에도 가슴이 설레였다. 우리 가족은, 우리에게 늘어난 이 작은 공간을 행복하게 즐기고 있다. 지금의 따뜻하고 설레는 감정으로 한 달을 보내기로, 그렇게 노력하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늦게까지 맥주를 먹으며 즐거운 런던의 첫날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