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영어는 알아듣기 어려웠다. 강한 악센트와 낯선 인토네이션, 연음이 이어져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영국 사람들이 독일어 하는 줄 알았다. 자세히 들어보니 영어인 것은 알았지만 해석은 불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자꾸 pardon? 과 sorry?를 반복하게 되었고, 점점 기가 죽었다. 내가 대충 말해도 상대는 알아듣는 것 같았지만, 문제는 내가 상대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 그러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밥 먹을 때 문제가 생기고는 했다. 머릿속에서는 웨이터에게 음식의 종류에 대해 묻고, 맛있는 와인을 추천받는 나의 모습을 그렸지만, 실제로는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this one.. um.. this two. 만 했다. 그 마저도 웨이터가 무언가를 되물어 버리면 내 머릿속은 하얗게 질려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음식점에서 Could you recommend red wine? 했다가 속사포처럼 내뱉는 웨이터의 현란한 독일어 같은 영어 때문에 나는 기가 죽어 버렸다. 뭐라는 거지? 먹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없다는 거야? 맛없다는 거야? 비싸다는 거야? 어쩌자는 거야? 고민하다가 웨이터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왜 그러냐는 웨이터에게 그냥 맥주를 달라고 했다. 웨이터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봤다. 진짜 미안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와 나는 대화를 나누고 그럴 사이가 아니다.
가족들이 옆에서 도와주면 좋으련만 내가 웨이터와 메뉴를 가지고 씨름할 때면 다들 바빴다. 아내는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고, 큰 아이는 화장실에 갔으며, 막내는 알파벳도 모르면서 영문 메뉴판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큰 아들과 아내는 이해한다. 나도 웨이터가 다가오면 화장실에 가고 싶고, 카톡을 확인하고 싶어 진다. 둘째의 행동은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물어봤다. 너는 왜 읽지도 못하면서 영문 메뉴판을 뒤지는 거야? 그 녀석 말이, 메뉴판에 자기가 아는 알파벳 a, d, s, x가 몇 개씩 있는 지를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메뉴판에 그려진 접시 그림이나 소, 돼지 그림을 보고 음식점의 수준을 생각해 본다고 한다. 메뉴판 그림이 좋으면 훌륭한 음식점으로 생각해도 된다고 말한다. 10년 세상을 살며 터득한 인생 노하우란다.
밥을 먹으며 아내와 큰 아들에게 나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이곳에서 나의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내가 고급진 영어를 써서 그런 것 같다. 영국 영어는 내가 좀 약하다. 우리 같이 주문을 하자. 아내와 큰 아들이 다음 주문부터는 도와주기로 했다. 우리 셋 다 비슷한 실력이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힘을 합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내셔널 갤러리 - 제인 그레이의 처형
오전은 템즈강 산책하고 호텔에서 뒹굴다가, 오후에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갔다. 트래팔가 광장 옆이라 걸어갈만했다. 갤러리를 둘러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봤던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며 신기해했다. 우리는 우피치 미술관과 바티칸에 갈 예정이라 일부러 아이들을 보티첼리와 카라바조 그림 앞으로 데려가서 르네상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루벤스의 그림도 있어서, 플란다스의 개 주인공 네로가 보고 싶어 했던 화가라는 이야기도 덧붙여 주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도 있었고, 르네와 마네의 그림도 있었다.
제인 그레이의 처형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그림은 제인 그레이의 처형이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제인 그레이라는 이름을 보자 눈이 동그라졌다. 하. 이 어린 소녀의 죽음을 이렇게 묘사해 놓았구나 싶어 애틋함이 느껴졌다. 아름답고 총명했지만 왕이 되고 싶지 않았던 이 소녀, 왕이 되기 싫다고 울고 불고 매달린다. 그렇지만 권력욕에 눈이 먼 제인 그레이의 아버지는 그녀를 탑에 가두고 때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왕이 되고 싶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때린다. 그렇게 그녀는 영국의 여왕이 되었지만 정통성이 떨어지다 보니, 사람들의 호응이 크지 않았다. 결국 내전이 일어나고 그녀는 패배한다. 그녀의 5촌 고모 메리가 다음 여왕이 된다.
9일간 왕위에 있었던 그녀는 어떻게 될까? 생각할 것도 없다. 그녀는 참수된다. 그 장면을 그려 넣은 것이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그림을 유심히 바라봐야 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왕이 되기 싫었고, 자신보다 메리가 더 정통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왕이 되라는 권유에 “다음 왕은 메리 여왕이어야 합니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메리는 여왕이 되어서는 5촌 조카인 제인 그레이를 살려주고 싶어 했지만 권력은 참혹하다. 제인 그레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림 속의 제인 그레이는 차분하다. 실제로도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죽으면서 “이제야 이 고통이 끝나네”라고 했을 정도로 16살 소녀의 삶은 만만하지 않았다. 그림 속 그녀 뒤의 시녀 한 명은 벽에 손을 잡고 울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아예 기절해 있다. 남편도 있었는데 그날 같이 처형되었다.
이 당시 이야기는 보통 드라마틱한 것이 아니다. 무미건조하게 당시의 상황만 정리하여도 어지간한 대하 드라마는 쌈 싸 먹을 만큼 방대하며, 어설픈 스릴러 소설은 들이대지 못할 정도로 쫄깃하다. 여기에 배신과 음모, 전쟁과 평화 같은 것이 더해지면 대하 서사극이 된다. 이뿐 아니라 메리 아버지 헨리 8세의 사랑, 살인, 이혼 등의 이야기까지 합하면 이야기는 막장으로 흐르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역사적 사실일까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 뺨 때리는 막장 스토리가 전개된다.
실제 그림. 메리는 제인그레이를 위해 프랑스에서 제일 목 잘 자르는 -.- 사형집행인을 일부러 불러왔다. 메리의 마지막 배려였다.
메리와 엘리자베스의 막장 드라마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새는 것 같지만, 메리 여왕과 제인 그레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엘리자베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영국인들이 꼽는 가장 위대한 왕 순위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매번 1-2위를 놓치지 않는 인물이다. 현재의 영국 여왕도 엘리자베스 여왕을 닮고 싶어 스스로 엘리자베스 2세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영국을 전성기로 이끌었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찔렀던 위대한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는 메리 여왕의 이복 여동생이다. 메리 어머니가 헨리 8세의 첫 번째 왕비이고, 엘리자베스 어머니가 두 번째 왕비다. 헨리 8세는 첫 번째 왕비를 쫓아내고 두 번째 왕비를 맞이하면서 메리가 가진 영국의 적통 공주 신분을 빼앗고 “사생아”로 선포해 버린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를 적통 공주로 인정한다. 이때 메리의 나이 15세. 메리는 큰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어머니인 왕비는 메리를 엘리자베스의 시녀로 임명한다. 큰 딸이 작은 딸 시녀가 된 것이다. 귀족 출신의 첫 번째 왕비의 딸이 중인 출신의 두 번째 왕비의 딸 시녀가 되자 많은 이들이 메리를 동정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엄한 왕의 명령이다.
그런데 2년 만에 갑자기 상황이 바뀐다. 엘리자베스의 어머니에게 간통죄가 쓰인 것이다. 그것도 근친 간통! 친동생과 잠자리를 했다는 것이다. 내가 괜히 막장이라고 한 것이 아니다. 재판 결과는 사형. 그것도 참수형이다. 어머니가 죽자 엘리자베스는 공주 신분을 빼앗긴다. 엘리자베스는 이때 3살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언니이자 시녀인 메리한테 “엄마는 왜 안 와?”라고 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이후 여기저기를 떠돌며 양육된다. 메리라고 상황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본래도 궁전에서 눈칫밥을 먹었는데 헨리 8세의 세 번째 부인에게서 아들이 태어나자 그녀는 매우 위험해진다. 이후 아버지가 죽고 이복동생인 에드워드 6세가 왕이 되자, 다음 왕위 계승자인 메리를 제거하려는 음모가 생긴다. 궁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메리는 재빨리 영국의 동쪽 끝에 위치한 서포크의 작은 요새로 도망쳐 버린다. 눈칫밥을 많이 먹어서, 보통 눈치가 아니다. 그리고 얼마 뒤 에드워드 6세는 16살의 나이로 단명한다. 문제는 에드워드 6세가 종교적인 이유로, 다음 왕위 계승자를 누나인 메리가 아닌 조카 제인 그레이로 임명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인 그레이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이후 이야기는 앞서 했다. 제인 그레이는 왕이 되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매에는 장사 없다고, 멍청하고 권력 욕심만 가득한 아버지한테 한참을 두들겨 맞고 나서 왕이 되는 기구한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헨리 8세의 첫 번째 딸인 메리에게 9일 만에 쫓겨나고 런던 성에 갇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실 메리에게는 제인 그레이보다 엘리자베스가 원수에 가깝다. 엄마를 쫓아낸 두 번째 왕비의 딸이자, 자신이 시녀로 일을 해야 했던 비극적 상황의 원인 제공자이다. 그렇지만 메리는 왕이 되어도 이복 여동생 엘리자베스를 살려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죽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뒷날 메리가 죽자, 엘리자베스는 다음 여왕이 된다. 알다시피 엘리자베스는 영국의 전성기를 이끈다. 사실 엘리자베스가 영국을 강국으로 이끌었던 것은 언니 메리가 기반을 잘 닦아 놓았기 때문이었다. 언니 메리는, 블러드 메리라는 악명 높은 이름과는 달리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많은 일을 했다.
메리의 초상.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절대 울지 않았다고 한다. 인상에서 드러난다.
메리가 한 가지 실수한 것이 있다면, 남편의 사랑에 집착했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 서였는지, 스페인의 왕이었던 남편 펠리페 2세의 사랑을 얻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펠리페 2세는 아들이 필요해서 메리가 있는 영국에 머물렀지만, 메리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점을 알자 가차 없이 스페인으로 떠난다. 그런 펠리페 2세가 프랑스와 전쟁을 하게 되자, 메리는 펠리페 2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영국 군대를 출동시킨다. 펠리페 2세는 무능했고, 전쟁은 패배했으며, 영국은 대륙에 가지고 있던 알짜배기 땅인 칼레를 빼앗긴다. 유럽 대륙에 거점을 잃은 영국은 훗날 지브렐타를 얻기 전까지 유럽에서는 한 평의 땅도 없는 완전한 섬나라가 돼 버린다. 메리의 평이 나쁜 것은 칼레를 빼앗겨서이다. 메리도 이 일이 사무쳤는지, 죽으면서 “내 심장에는 칼레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메리와 엘리자베스 자매 이야기 말고도, 극적인 이야기가 많은 시기였다. 관심 있는 분들은 헨리 8세와 메리, 엘리자베스를 다룬 캐나다 드라마 튜터스를 찾아보시길. 나는 못 봤지만 잘 만든 드라마란다.
나와 아내는 정말 재미있게 그림들을 둘러보고, 아이들에게도 재미있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한두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은 지루해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아내와 나는 각자 알아서 보고 싶은 그림들을 보기로 하고, 아이들도 알아서 놀고 있으라고 했다. 아이들은 분명 폰이나 닌텐도 스위치로 게임을 할 것이다. 교육적인 장소인 미술관에서 하기엔 비교육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재미없어하는 아이들 붙잡고 설명해 봐야 더 답이 없다. 아이들을 볼모로 부모들까지 이 귀한 상황을 날릴 수도 없다. 각자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맞다. 아내와 나는 저녁이 될 때까지 내셔널 갤러리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이들도 그 시간을 즐거워했다.
Steak & Co 스테이크
이날부터 영국에서는 맥주만 먹었다.
저녁은 내셔널 갤러리 근처 Steak & Co. Garrick Street에 갔다. 토요일이어서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본래는 다른 스테이크 레스토랑에 가려고 했는데, 웨이팅이 너무 길어 근처에 자리가 있을 법한 - 가장 큰 곳에 들어갔다. 어지간한 맛집은 예약이 필요한 것 같다. 메뉴판이 나오자, 낮에 나눈 이야기도 있고 해서 주문은 각자가 알아서 시켰다. 이제부터는 주문과 계산 과정 모두 아내와 큰아들, 내가 같이 하기로 했다. 큰 음식점이다 보니 메뉴판이 컸다. 둘째는 확인해야 하는 내용이 많은 탓에, 메뉴판에 머리 박고 자신만의 복잡한 음식점 판독에 들어갔다. 손가락을 들어 알파벳과 그림의 개수를 세기 시작했다. 웨이터가 오자 큰 아들은 제일 비싼 고기를 시켰다. 그리고 낼름 콜라 two라고 외쳤다. 내가 주문하면 콜라는 안 사주는데, 당한 기분이었다. 아내는 더 이상 와인은 시키지 않았다. 영국은 맥주라며, 라거를 시켰다.
양이 많지 않지 않았지만, 맛있었다. 여러 종류의 스테이크를 시켜서, 조금씩 나누어 먹었다. 외국인들은 이런 한국식 식사법을 잘 이해 못하는 분위기이지만 우리는 상관하지 않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겠지만 여기는 런던인 데다가, 우리는 반찬을 나누어 먹는 한국인이다. 가능하다면 여분의 그릇을 달라고 해서 덜어 먹었다. 립아이가 제일 괜찮았고, 필렛은 어느 부위인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였다.
밥을 다 먹자 아내가 웨이터에게 Bill please를 했다. 먼저 나서서 계산하려는 아내에게 감사했다. 잠시 후 Bill이 아닌 Beer가 왔다. 아내와 나는 잠시 침묵해야 했다. 웨이터가 beer로 알아들은 것이다. 아내는 지나가는 영국 웨이터를 보며 웃으면서, 들리도록 “영어 되게 못 알아먹네” 라며 한마디 했다. 물론 한국말로. 웨이터도 아내를 보고 같이 웃었다. 그리고 땡큐라고 했다. 맥주는 내가 먹었다. 웨이터에게 감사했다.
사이드 메뉴까지 이것저것 시킨 탓에 가격이 조금 나왔지만, 아웃백 가서 제대로 한 턱 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고기는 아웃백보다 맛있었다. 분위기는 약간 어수선하고,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정신없었지만, 앞뒤옆 테이블에 가득한 영국인들의 수다에 전체적으로 유쾌하고 즐거운 느낌이었다. 웨이터는 둘째에게 크레파스와 연필까지 선물로 줬다. 팁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몰라서 10% 정도 주고 나왔는데, 검색해 보니 그 정도 주는 게 맞다고 한다.
본래는 오전에 내셔널 갤러리에 가고, 저녁에 뮤지컬 하나 보러 가기로 했는데 둘째 컨디션이 어떨지 몰라 예매하지 못했다. 정가 주고 표를 예매하는 방법 말고 보다 저렴하게 표를 구하는 방법을 어제 가이드가 알려 줘서, 내일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둘째는 기침이 많이 잦아 들어서 두어 시간에 한 번씩 잔기침을 했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은 피곤해하고, 힘들어해서, 무리하게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과거의 내 욕망을 지금의 내가 욕망한다
밤 11시쯤 되자 심심해서 혼자 나왔다. 아내를 데리고 나올까 했는데, 침대 안으로 들어가 “이불속이 제일 좋아” 이러면서 나오지 않고 있다. 연예도 길었고, 같이 오래 살았지만 재미있는 사람이다. 혼자 템즈강을 걸었다. 공기가 싸늘해서 템즈 강변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조용했다. 차가운 강바람이 불어와 푸드트럭에서 파는 따뜻한 와인을 한 잔 먹었다. 강을 바라보며 종이컵에 들은 뮬드 와인을 한 모금 마시니, 뜨거운 와인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묘한 기분이었다.
차갑고 따뜻하고, 낯설고 익숙한 이런 감정. 어쩌면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아닐까? 치열하고 숨 가쁜 일상 속에서 늘 일탈을 꿈꾼다. 이국적인 거리를 걸으며 새로운 것들을 만나는 가슴 시린 여행을 동경하고는 한다. 그러기에 누군가 라캉의 글에 빗대어, 여행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익숙한 것을 벗어날 수 없다. 외국어는 어렵고 힘들며, 한국인이기에 레스토랑에서 반찬을 나누어야 하며, 이불속은 언제나 그렇듯 가장 편안하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만, 과거의 내 욕망 역시 지금의 내가 욕망한다. 차가운 바람이 불자 따뜻한 와인을 탐하고, 와인이 들어가자 동네 포차에서 왁자지껄한 술친구들과의 한 잔이 그리워졌다.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재미있어져서 혼자 피식 웃었다. 템즈강에서 와인 먹으며, 동네에서 삼겹살 구워서 소주먹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지나는 외국 사람들은 어두운 밤 강을 보며 실실 웃고 있는, 얼굴 발그라한 덩치 좋은 중년의 동양인을 보며 길을 피했다. 1월의 런던은 생각보다 추웠다. 나도 이불속이 그리워서 12시쯤 호텔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