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베트남 호이안으로 4박 5일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동남아 여행은 처음이었다. 항공권은 저가항공 특가로 구입했고, 온라인 숙박 플랫폼에서 숙소를 골랐다. 많은 여행객들은 다낭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호이안에 잠시 다녀오는데 비해, 우리는 호이안에만 5일을 머물렀다. 그랩(우버 같은)도 이용했지만 가까운 거리는 주로 걸었다. 경주 같은 호이안은 고즈넉하고 예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다. 바쁜 일정도 없이 그저 쉬다 놀다 했다. 우리 가족에게 이 여행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는데, '가성비'가 큰 역할을 했다.
이 여행을 끝으로 4년 넘게 아직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팬데믹 상황에서는 여행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방역이 잘 되는 우리나라 국민이라는 것이 안심되었다. 폐쇄된 비행기 안에서 감염의 우려는 더 공포스러웠다. 팬데믹 기간에 제주를 3번이나 다녀온 친구가 있다. 항공권이 너무 저렴해서 안 갈 수 없었다 한다. 하하하, 우리는 정말 다른 기준으로 살아간다.
'여행'이라는 단어에는 설렘이 묻어 있다. 누군가가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 '어? 언제가 마지막 여행이었지?라는 질문부터 생기며, 덩달아 어디론가 가고 싶어 진다. 계획을 세우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된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 가면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하고 싶은 것도, 기억할 것도 많다. 평소와 다른 시선으로 주변의 것을 바라본다.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여행에 대한 욕구는 남아있지 않을까? 꺾이지 않을 욕구가 분명하다. 의식주가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라면, 여행은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전에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간다는 것이 그저 설레고 좋아 보였다. 기회가 있다면 여행을 자주자주 하고 싶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우동 먹으러 일본에 간다'라는 얘기에 '아, 그럴 수도 있구나!'하고 반응했다. 누군가에게는 단단히 계획하며 올라야 할 해외여행길인데, 즉흥적으로도 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이때는 환경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다.
하늘길과 바닷길이 모두 끊긴 팬데믹 상황에서 관광업은 다른 어느 산업보다도 큰 타격을 받았다. 비행기를 운행하지 않고, 관광객들의 이동이 줄면서 그전에 볼 수 없었던 맑은 하늘이 우리 시야에 들어왔다. '미세먼지' 용어를 한동안 잊고 살았다. (미세먼지 때문이 아니라 코로나 감염을 걱정하며 마스크를 껴야 했다) 코로나로 관광객이 끊긴 베네치아에서도 물이 맑아지고, 돌고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상황이든 백 퍼센트 나쁘기만 한 건 없나 보다.
코로나19 시기, '무착륙 비행 상품'이 출시되었다. 말 그대로 목적지에 착륙하지 않고 출발지로 그대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여행 가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이 상품을 구입했고, 평균 85~95% 정도 탑승했다. 이렇게나 탑승률이 높았다고요? 상공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그리 아름다울 수 없다는 리뷰를 보았다.
관광분야에서 배출되는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8%를 차지했다, 그중 비행기와 자동차 수송 부문의 비중이 크다. 에어버스 A380의 경우 약 32만 리터(=320톤)의 기름을 채운다. 국내 대형 세단의 연료탱크 약 80리터를 기준으로, 4천여 대에 넣을 수 있는 기름이다. 모두 자신이 지출하는 항공권을 가격에만 관심 있었지, 비행기 연료탱크가 320톤 크기라는 데는 무관심했다. 팬데믹 상황이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제한적으로 지구의 자원을 착취의 형태로 소비했기 때문이다. 환경에 끼칠 영향은 1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의 욕구를 채운 결과인데, 잠시 여행 기분을 내려고, 비행기를 띄운다고요? 이게 무슨 어리석은 행동인가요? 라며 따져 묻고 싶었다.
그 상품이 출시될 무렵, 내가 알게 된 용어는 바로 '플뤼그스캄(flyscam),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이다. 비행기를 탑승할 때, 환경에 피해를 주는 것을 알고 이를 부끄러워한다는 말이다. 독일 출신 다니엘 씨도 어렸을 때 학교에서 이를 배웠다고 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그런 걸 배우는지, 여전히 해외여행이 자랑거리로 소비되는 것은 아닌지. 프랑스에서는 기차로 연결될 수 있는 곳의 국내 비행 노선을 없앤다고 했다. 탄소중립 실현이 시급한 이 시점에 비행기를 운항하는 데서 얼마나 탄소가 많이 배출되는 것인지를 알기에 내린 정책이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지방 여러 곳의 신공항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이쿠!)
팬데믹 상황 동안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여행 유튜브 채널로 몰렸다. 덕분에 우리는 전 세계 구석구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했다. 팬데믹이 어느 정도 끝나자 '보복 관광'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며 그동안 억눌렀던 여행에 대한 욕구가 터졌다. '과잉 관광, 오버 투어리즘'과 관련된 기사가 자주 등장했다.
숙박 공유 플랫폼 영향으로 관광객이 일반 주거지 한가운데에서 숙박을 한다. 관광객들이 지역민의 일상으로 침투(?)했다. 밤늦게까지 소음이 심하고 물가가 오른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을 아예 피해 다니기도 한다. 형성되는 상권도 주로 관광객을 위한 가게이다. 주민에게 별반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불편함만을 안겨준다.
유명한 관광지인 이탈리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주민들이 관광객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부산에 감천문화마을이 있다. 산동네이다. '부산의 마추픽추'라고 수식어구를 갖다 붙이지만, 작은 집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고, 길은 한, 두 사람이 다닐 정도이다. 골목을 걷다 고개만 돌리면 집안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그 정도로 가깝다). 인터뷰한 마을 분이 원숭이가 된 기분이라고 한다. 그 지역이 관광지가 되었지만 좋은 점이 하나도 없고, 넘쳐나는 쓰레기에 배설물까지 일상이 되었다. 어떤 관광객은 함부로 문을 잡아당기기도 한단다. 방문한 장소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1도 없다. 관광객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행동한다는 말인가.
강원도 속초는 원래도 관광지였지만 고속도로와 KTX의 개통 덕분에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아온다.
인기가 많아지자 속초 전망대보다 높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속초 전망대는 폐쇄되었다. 아파트에 가려 전망대로서의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타지 사람들이 별장의 용도로 아파트를 구입했다. 아파트에서 물을 많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결과로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수돗물이 안 나오기 시작했다. 미리 받아놓을 새도 없이 물이 나오지 않았다. 속초 주민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아파트 건설을 허가할 때는 이런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었나요? 관광객 때문에 지역민이 고통을 겪게 하다니 뭔가 잘못되었다.
제주 인구는 69만인데, 제주 관광객은 매년 천만 명이다. 수용 한계를 벗어난 관광객 수로 인해 오폐수 시설의 용량 과부하의 문제가 생겼다.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오물이 그대로 바다로 버려진 경우도 다수라 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청정바다 제주의 모습인데, 제주 바다는 오염되고 텅 비어 가고 있었다. 넘치는 쓰레기. 부족한 물, 오염되는 용천수 이 세 가지만 생각해도 과연 언제까지 제주를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휴양지로 알려진 필리핀 보라카이 섬이 2018년 4월부터 6개월 폐쇄된 적이 있었다. 관광업이 주요 생계수단인 곳에서 섬 폐쇄를 강행할 정도로 섬과 바다가 오염되어 있었다. 쓰레기와 하수 처리, 모두 섬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관광객을 받은 결과였다. 6개월 후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은 보라카이 바다색은 정말 아름다웠다. 현재는 지역민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여행지가 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과잉 관광'은 관광객인 나의 여행에 대한 욕구만 채운 결과이다. 지역민에 대한 존중이 없어서 일어나는 일이다. 자신의 삶을 침해받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가 방문하는 장소에 거주하는 분들도 똑같은 마음이다. 지역민이 무조건 관광객에게 너그러운 아량을 베풀어야 할 이유는 없다. 잠시 머물다 가는 관광객보다 지역민의 삶이 우선되어야 한다.
책 [지속 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에서 본 기억나는 여행법을 일부 나열해 보겠다.
-내가 여행지에서 소비하는 것이 그 지역민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생태관광하기
-쓰레기를 최대한 덜 만들어야 한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여행상품을 이용한다.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그 장소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낫다.
-짧은 기간,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어떤 지역에 가더라도 지역민처럼 지낸다면(숙박, 음식 등) 가장 탄소 배출이 적을 것이다.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하기, 매 끼니마다 육류 섭취하기, 옷으로 옷장 가득 채우기는 단지 개인의 취향에서 머물지 않는다. 모두 탄소 배출을 늘리는 행동이고, 우리 전체의 삶을 위기에 빠트린다(물론 의도가 없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악화시킨다). 우리가 경쟁하듯 해외여행을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여행 방법이나 횟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나의 만족, 즐거움을 위해 떠난 여행지에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여행이 계속될 수 있을까? '자유롭게 여행할 권리'를 내세우기 전에 과연 내가 하는 여행이 10년, 20년이 지나도 지속할 수 있는 형태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