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해운대 해변 열차를 탈 기회가 생겼다. 2020년부터 운행 중인 걸 알고는 있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붐빌 것 같아서 "굳이" 타러 갈 생각을 안 했었다.(사람 많은 걸 덜 선호하는 편이다) 예상처럼 사람들은 정말 많았다. 예약은 당연히 해야 했고, 그럼에도 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우와, 기차에서 본 바다는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진작에 타러 올 것을 미뤘나?'라고 생각했다. 미포에서 출발할 때는 서서 갔지만(총 30분 정도), 송정에서 놀다 돌아올 때는 운 좋게 앉아서 여유롭게 바다를 감사했다. 앉아서 바라보는 바다는 더 아름다웠다.
맞다, 바로 이 기찻길이었다! 경북 의성에 있는 외할아버지 댁에 갈 때 탔던 기차. 해운대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타는 순간부터 한동안 바다가 보였다. 기차에서 보는 바다라니 어린 마음에도 그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해변 열차가 운행한 그 기찻길이 바로 그 기차가 지나간 길이다. 기차는 버스와 달리 멀미가 나지 않아 좋았고, 스낵 카트가 지나갈 때 사 먹는 간식도 큰 재미였다. 기차를 탄다는 건 그저 장소를 이동한다는 의미 외에도 즐거운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설렘이 기본값으로 포함되어 있다.
개인적인 감성도 소중한데, 기후 위기 시대 기차는 어쩌면 지구를 살릴(?)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구 평균기온이 기존 예상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임계점 1.5'C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23년 벌써 1.4도에 도달했다. 탄소 배출량을 급격한 속도로 줄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지구인들이다. 하지만 아무도 급해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 중 교통 및 운송부문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5분의 1을 차지한다.(Our World in data 참고) 이 중 74.5%가 승용차, 바이크, 버스, 택시 같은 승객이동 수단과 화물 운반하는 트럭을 포함하는 도로운송에서 발생한다. 항공부문의 탄소 배출량은 11.6%, 10억 톤 미만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교통수단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비교해 보자. 단거리 비행을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CO2 eq/km)으로 나타내면 255g, 중형차(가솔린)는 192g, 버스는 105g, 중형 전기차 53g, 기차는 41g이다. 기차! 기차!
우리가 이동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전제하에 교통부문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 사회 인프라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바로 답이 나온다. 당연히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연계되어야 하고, 기차역과의 연계성을 높이고, 교통 요금은 아주 저렴해야 한다.
대중교통을 개선한다는 것은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개인이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즉각적으로 준다. 기후 위기 시대 바람직한 대응이다. 대기오염이 줄 것이고, 대기오염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이 준다. 개인은 건강해지고, 교통비가 줄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연쇄 효과인가?
2023년 5월 프랑스는 철도 대체가 가능한 항공 시간이 2.5시간 이내의 거리에서는 단거리 비행기 운행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기차로 도시 간 연결이 가능한데 항공기를 이용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도이다. 덧붙여 영향을 받는 노선이 3개뿐이라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비행기가 같은 노선의 기차보다 탄소 배출량이 승객 1인당 77배 더 많이 배출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단 그 시도는 매우 긍정적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이런 정책을 시행하려고 애쓰기는커녕 오히려 신공항 건설을 추진 중이다.
찬희가 제주도 항공권을 5천 원에 구입해서 다녀온 적이 있다. 특가로 구입한 게 큰 행운인 양 기뻐했다. 아무리 특가라고 하지만 이런 가격이 가능하다니 신기했더. 내가 지불한 비용은 5천 원이지만 탄소 배출에 따른 외부비용은 전혀 지불하지 않았다. 보통 항공유는 세금을 감면받는다, 만약 보조금이 없다면 항공권은 지금보다 가격이 더 오를 것이다.
사람들이 "주저 없이" 비행기 대신 철도를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개인이 탄소 배출량을 따져 비행기 대신 기차를 이용하기를 기대하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사회의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2022년 여름, 독일은 1달 대중교통 무제한 패스를 출시했는데 그 가격이 무려 9유로(13,000원)였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박수가 절로 나왔다.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던 시기에 자구책 마련으로 내놓은 정책이었다. 덕분에 대중교통의 접근성을 높였고, 이산화탄소 180만 톤의 배출량을 줄였다. 정말 획기적이다.
지역 불균형이 심한 대한민국,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 중심이다. 지방 소도시에는 인구가 급속도로 줄고 있으며, 거주하는 분들 대부분이 노령인구이다. 대체로 이들은 교통약자에 속한다.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이 사라진다. 많은 분들의 발이 묶이는 불편함은 곧 마을공동체의 와해로 이어진다. 공공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대중교통수단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이동권은 기후정의와도 관련이 있다. 시골에 거주하는 어르신들, 교통약자, 그리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편리한 대중교통 시스템과 저렴한 교통 요금이 간절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상기후 현상이 많아지고, 자연재해가 늘고 있다. 자연재해로 인한 열차 지연 추이 건수를 살펴보면 2019년 265건에서 2021년에는 3514건, 2022년에는 2424건으로 증가했다. 폭염이 극심할 때, 레일온도가 64도가 넘으면 운행할 수 없고, 60~64도일 때는 시속 70km로 서행해야 한다. 55~60도는 230km 이하로 운행해야 한다. 기차는 기후 위기 시대 탄소 배출이 적은 착한 이동 수단이다. 하지만 폭염이 일상이 되는 때가 온다면 기차 운행도 시간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그 시기가 도래하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뭐라도 다 해봐야 한다.
요즘 대부분의 기차는 전기로 운행이 된다는데 그 전기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라면 탄소 배출량이 적은 기차가 말 그대로 친환경 이동 수단이 된다. 지금은 화석연료인지,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장담하는 건 재생에너지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찻길 밑에 태양광을 잘 깔게 되면 철도 전력량의 25%를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 스위스에서는 기차선로 사이에 태양광 패널 설치 시스템 개발, 상용화 시도 중이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남아 있지만 스위스 모든 철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면 스위스가 사용하는 전기의 2%를 충당할 수 있다 하니 어마어마한 양이다.
기차역에서 대중교통(버스, 지하철)이 편리하게 연계되어 있어야 사람들은 비행기보다 기차를 많이 이용할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을 짧은 시간에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그 정책은 파격적이어야 한다. 대중교통 요금이 0원이고, 대중교통이 촘촘하게 연결된 사회에서 대다수는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닥친 탄소중립의 과제를 해결하는 빠른 방법의 하나가 된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기후 불평등이 아닌 기후정의가 섬세하게 작동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