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푸른 Jan 17. 2024

한글학교 엄마 모임

첫 애가 한국에서 다니던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남달랐다. 공동육아는 '내 아이'를 맡기거나, '남의 아이'를 보호해 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의미다. 함께 키우려면 서로를 잘 알고 삶을 공유해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방모임이었다. 


방모임은 다달이 열린다. 한 반의 부모와 담당교사가 모여 아이들이 자라는 이야기를 나눈다. 말하고 경청되는 가운데 어떤 응어리가 스르르 풀리던 시간. 서로의 아이를 잘 알아서, 비슷한 시기의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깊은 이해를 주고받던 시간이었다.


네덜란드에 오며 방모임 없이 지낸 지 3년이 넘었다. 알고 지내는 엄마들이 있긴 하지만, 묻지 않은 육아 고민을 비추기는 좀 어색하다. 내가 외국인인, 특수상황의 육아 고민을 본격적으로 나누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 주저하다 한글학교 유치반 카톡방에 대뜸 운을 띄웠다.


굿모닝! 애들 한글학교에 있을 때 엄마 모임 한 번 갖는 거 어때요? 시내 쪽에 아침부터 하는 카페가 여럿 있어요ㅎ

 

5분, 10분. 기다려도 답장이 없다. 답장에 연연하고 있는 내가 싫어서 카톡을 지워버렸다. 

점심 전에 보낸 카톡을 저녁 먹고 컴퓨터로 확인해 보았다. 네 명의 엄마들이 손을 드셨다. 다행! 한글학교 근처 커피숍을 예약하고 공지했다. 모임의 목적을 분명히 하기 위해 덧붙였다. 


우리 첫 애가 다녔던 어린이집에선 한 달에 한 번 부모들이 모여서 아이들 자라는 얘기를 했었어요. 거기서 얘기 나누다 보면 우리 애만 유난한 건 아니구나 싶고, 다른 아이들도 좀 더 애정 있게 보게 되더라고요. 토요일에도 유치반 아이들 자라는 이야기 나누면 좋겠어요. 


이때부터 별 생각이 내 머리를 떠돈다. 내가 모임 진행을 해도 될까? 어떻게 하지? 호칭 정리도 해야 할까? (나이 묻고 위아래 가르는 거 딱 질색. 근데 평어 사용을 권장해도 될까?) 외국인 남편이 오면 영어로 진행해야 할까? 한글학교 부모 모임인데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내 소개는 어떻게 하지? 자기소개 시간에 자기가 드러날 만한 질문을 붙일까? 이를테면 이번주에 가장 뿌듯했던 일. 각자의 발언 시간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 갑자기 끼어드는 발언을 제재해도 될까? 나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을까?


튀어 오르는 질문에 나름의 대응과 대응 불가능함을 짚는 주중이었다. 토요일. 아이들을 한글학교에 데려다주고 모임에 갔다. 다행히 외국인 남편들은 오시지 않았다. 다섯 명의 엄마들이 8인용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주최자로서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 이번 주에 뿌듯했던 일도 얘기해 보자 하려다가 오버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다른 분들의 소개를 차례로 들었다. 다 국제커플이고 유럽 산지 5년은 가뿐히 넘는다. 각자의 연혁을 말씀하셨는데 흐릿하게 남아있다. 과거보단 요즘 얘기만 와닿는다. 이번 주 뿌듯한 일 그냥 물어볼걸.


돌아가면서 유치반 친구들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또 첫 번째로 내가 우리 딸 이야기를 했다.

딸은 짧은 커트머리이고 자기 외모를 좋아한다. 외할머니가 짧은 머리 가지고 뭐라고 했더니 그걸 서운해했다. 외할머니에게 그런 말 삼가라고 했다.

딸은 오빠에게 쉽게 양보하고 미안하단 말을 잘한다. 그리고 으쓱해하는데 긍정적 피드백을 주지 않으려 한다. 딸이 양보하면 나로선 편하긴 하지만 양보가 습관이 되어선 안 된다. 첫째가 양보를 당연시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화가 나면 볼펜을 내던지거나 소리를 지른다. 자기감정을 해소하다 남의 기분을 해치면 안 되기에 혼을 낸다. 강압적으로 굴복시킬 때가 있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지만 수행하는 기분이 좋지 않다.


내 얘기를 들은 분들은 본인이 어렸을 때의 경험과 자기 아이들, 또는 주변의 비슷한 일화를 들려주셨다. 역시 내 고민은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털어내고 나니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 다른 분들도 한 명씩 발언하셨다. 구체적인 아이 얘기를 하거나 육아 자체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혹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첫 모임이니까 어떤 느낌의 이야기를 나누는지 감을 잡는 자리 같다. 


어느덧 하교시간이 되어 정리했다. 모두 표정이 밝다. 한 분은 모임을 열어주어서, 한 분은 내가 사회를 봐서 좋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 멋대로 모임을 진행해도 되는지 의심하며 최소한의 개입만 했는데, 그렇게 말씀해 주니 고마웠다. 사실 나를 위한 거였다. 나는 하나마나한 수다를 원하지 않는다. 목소리 큰 사람이 독점하는 대화도 원하지 않는다. 다들 나 같겠거니 생각하고 약간은 적극적인 모임지기가 되어보아야겠다. 여린 마음을 드러내는 각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쏘아주기. 경청하기.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삼가기. 


우리 두 달 후에 다시 만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생애 첫 베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