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푸른 Feb 17. 2024

나의 여행가방

여행가방하면 큼직한 검정 캐리어가 떠오른다. 28인치인 이 녀석은 입사 첫 해, 두 달간 해외 연수를 가면서 샀다. 연수를 다녀와서는 쓸 일이 없었다. 휴가 때 쓰기엔 너무 컸다. 기내용 캐리어의 거의 세배니까. 가방은 결혼과 퇴사와 이사를 하는 동안 조용히 따라다녔고, 그간 나는 4인가족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민을 가게 되었다. 간이 이삿짐을 싸기에 캐리어만큼 요긴한 가방이 없다. 한국을 오갈 때도 야무지게 쓰인다. 작년엔 한국으로 두 번 동행했다.


2월 한국행은 남편의 출장으로 갑자기 정해졌다. 혼자 두 아이와 캐리어만 챙겨 떠났다. 친정 아빠는 그 맘쯤 원주까지 가서 일을 하게 되었다는데 굳이 공항까지 마중 나왔다. 뭔 마중이냐는 물음에 잘난 딸 보러 왔다는 아빠. 1년 전, 현지 회사에 취직한 나에 대한 자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2년 반 만에 본 아빠와 엄마는 눈에 띄게 늙어있다. 서른 후반의 나도 몸이 여기저기 아파오는데 육십 대의 몸으로 육체노동을 어떻게 하실는지. 괜찮다 하시니 믿어버릴 뿐이다.


출국 전날은 동생 집에 머물렀다. 여기저기서 모인 짐을 꾸려야 한다. 텅텅 빈 캐리어를 끌고 왔는데 짐은 불린 미역처럼 난데없이 불어있다. 포장을 해체하고, 뺄 건 과감히 빼고, 꾹꾹 눌러 옷 부피를 줄이고, 양말과 속옷 같은 건 구석구석 틈에 구겨 넣었다. 확장 지퍼를 열었는데도 지퍼닫기가 힘들다. 최종 무게는 25kg. 2키로 초과다. 가방을 쪼갤까 생각했으나 적어도 한 손은 아이들을 건사해야 하므로 큰 가방 하나가 최선이었다. 출산 전까지 항공사에서 일했던 동생이 말했다. '셋이 가방 하나만 체크인하면 그 정도 초과중량은 봐줄 거야.'


배웅 역시 부모님이 해주셨다. 짐 체크인할 때 예상대로 중량이 초과되었다. 셋이 한 가방만 싣는 상황을 어필해 보았지만 먹히지 않았다. 규정이 엄격해진 모양이다. 초과 수하물 요금을 내러 갔다. 십만 원. 내가 내려는 걸 막고 아빠가 카드를 내밀었다. 아빠를 말릴 법도 한데 몸이 가만히 있다. 한 집에 살 적, 경제적 지원의 대가로 지배에 순응하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다.


9월 한국행은 출장목적이었다. 주말 하루 날 잡아 친정식구들과 외식을 하기로 했다. 공간과 가격이 적당한 곤드레밥 집을 예약했다. 마침 아빠 생일이어서 동생이 케익을 사 왔다. 한참 밥을 먹는데 사장님이 다복해 보인다며 무슨 일로 모이셨냐 물었다. 동생이 아빠 생신이라고 했다. 사장님은 서비스라도 드려야겠다며 요구르트 하나를 아빠에게, 하나는 세 돌 된 조카에게 주었다. 지불하지 않은 친절은 좀 께름칙하지만 안 받기도 뭐 했다. 아빠는 밥이 참 맛있다는 둥 분위기가 좋다는 둥 사장과 몇 마디 더 나눴고 남은 사람들은 조용히 밥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러 나왔다. 사장은 아빠가 계산하셔야 하지 않냐며 아빠를 부르라는 시늉을 한다. 나는 약간의 친절을 받은데 거역하기 뭣하고, 사장 나이에 눌린 데다, 내가 지불하는 게 옛 가장에 대한 월권 같아서 아빠를 불렀다. 뒤늦게 나온 아빠는 5인 정식 가격인 65,000원을 결제했다. 


출장 말미에 휴가를 이틀 붙였다. 출국 전 날에 또 동생 집에 머물렀다. 동생의 평범한 하루를 함께 살았다. 그동안 내 이민으로 별안간 장녀가 된 동생의 원가족 현황 보고를 받았다. 내가 이민 무렵 엄마가 동생에서 단기로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이사를 앞두고 있어서 그렇다. 은행에서 빌려도 되지만 이자를 내기 아까우니 동생에게 먼저 묻는다. 그런데 언니한테는 절대 말해선 된다. 떠나는 마음 뒤숭숭하니까 절대, 절대로. 동생은 당부를 받아들였고 나에게 이제 털어놓았다. 자기도 대출 때문에 돈을 빌려주었다고 했다.


사위에게 친정 흠보이기 싫어하는 엄마가 돈 얘기를 했다는 게 심상치 않다. 두 번의 한국 방문동안 늘 잘 지내는 듯 보였는데. 동생이 말한 그 돈은 이민 전 전세금을 뺀 우리가 빌려줄 수 있는 액수였다. 나는 엄마가 필요로 할 때 손 내밀만한 자식이 아님을 확인받았다. 내게 손 내밀지 않은 건 순수한 배려였을까? 나는 엄마에게 궁핍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자식인가? 보이기 싫은 자식인가? 어려운 자식인가? 아님 내민 손을 거절당할까 두려운 자식인가? 여러 의문이 어지러이 떠돌았다. 얘기를 듣고 보니 아빠가 밥집에서 내가 계산하라고 부르기 전 앉아있던 이해가 되었다. 나의 지불을 용인하고 싶었을까. 


부모님은 본인들이 보이기 싫은 모습을 끝내 보이지 않았고, 나는 부모님이 마련한 각종 음식과 옷을 캐리어에 꾹꾹 눌러 담아 먼 나라의 내 집으로 떠났다. 현실직면이 두려운 나는 한국 방문 때 만이라도 부모님께 돈을 눈치 안 보고 쓸 생각이다. 부모의 배려를 받을 자격이 없는 내가 부모의 배려를 한껏 누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상에게 받은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