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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푸른 Feb 10. 2024

우상에게 받은 편지

조용한 생활이라는 오디오 매거진에는 '슬퍼하려 하기 전에'라는 코너가 있다. 이 코너에서는 청취자의 사연을 읽고 김혜리 기자님과 이슬아 작가님이 공감과 수다를 이어간다. 세 계절 동안 매 달 투고했다. 너무 신기하게 일곱 번 연속으로 채택되었다.  사연이 두 분읽히면 혼자 듣고 있는데도 마구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흠모하던 우상에게 공개 구애를 받는 황홀경에 빠진다. (글이 읽히는 만으로 구애라고 느끼는 작가적 자뻑)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투고했다. 안 쓰던 메일로 투고한지라 채택되고도 한참을 몰랐다.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두 달 전에 읽힌 내 사연과 두 분의 소감을 듣자니 까무러칠만한 내적 기쁨이 있었다. 그 이후 내 글쓰기는 한 달을 주기로 흘러갔다. 매월 23일, 매거진 발행일에 다음 달 주제를 알아낸다. 주제와 나의 연관성을 뽑아내고 어떻게 풀어갈지 대략 계획한다. 일주일 이상 꾸준히 글을 쓰고 틈틈이 다듬는다. 월초인 제출일에 송고한다. 발행일까지 기다린다.


글을 쓰다 보면 내 글이 누구에게 닿는지 느낄 수 없어 막막할 때가 있다. 사연을 보내면 내 글이 분명 읽히리란 작은 보람이 생긴다. 그런데 존경하는 작가님들이 읽어주시고 글에 대한 소감까지 전해주신다니, 이건 아마추어 작가로서 벼락같은 동기부여다. 그래서 내 글 중 가장 공들여 썼다. 


작년 마지막 사연은 미끄러졌다. '눈(eye)'이라는 주제에 남의 눈 상관없이 나체로 돌아다녀보고 싶다고 썼는데 어떻게 채택하시겠나. 솔직함이 독이 된 케이스. 폭넓게 받아들여질 만한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다. 올해 첫 사연을 보내면서는 짧게나마 두 분께 편지를 썼다. 



안녕하세요. 새해 첫 사연을 보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글감을 받고, 고민하고, 글 쓰고, 보내고, 읽히거나 안 읽히는 이 모든 과정이 제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네요. 멋진 두 분을 흠모하는 마음에 글에 욕심을 내게 되어요. 감사드려요.

이번 글은 너무 긴 감이 있네요. 매 달 두 분께 보내는 자아도취적 펜레터라 여기시고 마음껏 사용/미사용 해주십시오!


2월호 매거진 발행을 기다리는데... 사연 투고 메일주소에서 답장이 왔다. 슬아 작가님께서 친히 답장을 보내주셨다! 로운 사연을 소개하느라 내 사연은 소개하지 못했지만 매번 재밌는 사연 잘 읽고 있다고, 고맙다고. 세상 바쁘신 분이 한낱 사연 제공자인 나에게 직접 글을 남겨주시다니. 사연이 소개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주고, 사연이 재밌다고 용기 북돋아주고, 고맙다는 말로 귀하게 여겨주셨다. 나를 안다고 알려주셨다! 글이라는 소심한 방식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아시는 것 같다. 모두 알차게 담아 다정하게 보낸다. 아주 작은 사람에게도.


작가님의 첫 책부터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며, 성장세가 늘 놀라웠다. 커져가는 자리가 합당한 사람이라 여겨진 건 그의 큰 그릇과 인덕 때문이겠다 싶었다. 일간이슬아 때부터 작가님은 자신의 위치를 친구와 동료에게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지면을 내주고 일감을 나눠주고 행사의 사회를 자처한다. 그의 인스타만 봐도 남의 홍보가 다수다.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그의 햇살을 조금이나마 쬐어보니 분명히 알겠다. 이 사람은 불멸하겠구나. 주변을 살리고 주변이 지켜주겠구나.


다정한 이슬아 작가님 영원하세요. 저는 믿음직한 사연을 채택의 자유와 함께 보낼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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