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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푸른 Dec 05. 2023

받아줄래요? 드림.

「조용한 생활」 2023년 11월호에 채택 (주제 : 중고 거래)

중고 거래 중에 대가를 취하지 않는 '드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드림을 알게 된 건 첫 아이 임신 후, 지역맘카페에 가입하면서다. 누군가 드림 게시판에 물건을 올리면, 원하는 사람이 댓글을 단다. 대게 첫 댓글이 뽑힌다.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의 편의에 최대한 맞춰 찾아간다. 물건을 받으면 거래가 완성된다. 공짜로 뭔가를 받을 수 있다니. 때마침 임신 중반에 회사를 그만둬서 시간도 많았다. 드림 게시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괜찮은 물건을 발견해 댓글을 달려 했지만 늘 한 발 늦었다. 뭐 하는 사람들이길래 글이 올라오자마자 댓글을 달지? 


어리둥절하며 드나들다가 비법을 알게 되었다. 알림 기능이었다. 드림 게시판에 새 글이 올라오거나, '드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게시글이 있을 때 알림이 오도록 설정한다. 나도 알림 덕분에 재빨리 댓글을 달았다. 거의 안 썼다는 아기 면기저귀와 아기 옷을 얻었다. 하지만 계속 알림을 보다 보니 피곤했다. 불필요한 물건에 현혹되는 내 모습이 한심해 모든 알림을 해제했다.


얼마 안 있어 새로운 맘까페에 가입했다. 천기저귀를 쓰는 엄마들의 모임이다. 이 까페는 전국구임에도 구성원끼리 굉장히 끈끈했다. 일회용 기저귀가 표준이 되어버린 시대에 천기저귀를 사용하면 너무나도 유난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기저귀를 빨던 이들이 이 맘까페에서 혼자가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서로 그저 반갑고, 고맙고, 특별하고, 잘해주고 싶다. 그 마음이 이곳만의 특별한 릴레이 문화를 만들었다.


첫째는 백일상 택배다. 이 택배에는 백일 상차림에 필요한 모든 물품이 들어있다. 한복, 드레스, 상을 덮을 보자기, 과일과 떡을 올릴 제기, 각종 장식, 백일 축하 현수막과 백일 아이가 앉을 수 있는 범보의자까지 전부 다. 잔칫날을 정해 택배를 신청하고 이전 사람에게 받아 다음 사람에게 보낸다. 같은 상차림에 다른 아기들을 매주 사진으로 접하면 애틋해진다. 택배 창시자들의 큰 사랑이 계속해서 내리 흐르고 있구나.


두 번째는 릴레이 택배다. 받아서 필요한 물건을 빼고 쓸만한 물건을 채워 넣고 보낸다. 깜짝 선물을 받는 기쁨과 선물을 골라 받을 사람을 상상하는 흐뭇함이 있다. 후기의 사진에서 골라진 선물에 감사인사와 댓글의 화답, 자기의 선물이 선택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보며 나도 이 택배를 경험하고 싶었다. 집안을 뒤져 넣을 만할 물건을 고른 후 택배를 신청했다.


택배 크기가 라면상자 세 개 크기로 상당했다.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꺼내 보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물건을 차근차근 보는데 마음이 복잡해졌다. 일회용 수저, 로션 샘플, 왠 하와이안 모형 꽃, 종이 컵받침. 사용감 있는 옷과 장난감들. 글쎄, 과연 간택될만한 물건인가? 택배 공간을 차지하고 전국을 돌만한 가치가 있는가? 물건을 들이는 데 까다로운 내 성향은 접어두더라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뺀 물건이 적어서 내 물건을 넣을 수 없었다. 


버리기엔 기능이 있는 것도 같고, 내가 갖기엔 가치가 없어서 남이라도 용도를 찾았으면 하는 물건들. 이것들을 보며 이 시대의 새로운 윤리를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 없고 금전가치도 없는 물건은 내 선에서 폐기할 것. 남에게 폐기를 전가하지 말 것. 누구나 버릴 때 잠시라도 죄책감을 느끼니깐.


그래도 폐기는 쉽지 않다. 새 주인을 찾아주고 싶다. 그래서 깨끗이 닦고, 자세한 설명과 분명한 사진을 덧붙여 드림 시장에 올린다. 내 물건을 받으러 와주는 이들은 나더러 고맙다고 하지만 사실 폐기를 면하게 해 주어 내가 더 고맙다. 잘 써주길. 드림에도 실패한 물건들은 미련 없이 폐기할 수 있길. 버림은 물건이 넘치는 이 시대의 필수 살림 기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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