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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현 Aug 23. 2022

섬(2)

검은 하늘의 날 이후

일주일 전, 백 개가 넘는 콩 통조림을 찾았을 때만 해도 희망에 고무되어 있었다. 하지만 열 두 명이 나눠 먹어야 하다 보니 허기를 채우기 어려웠다. 가끔은 오히려 먹고 나서 더 배고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이틀에 한 번 꼴로 먹었을 때보다 더 우울해져 배고픔을 견디는 게 너무 힘들다며 죽는 것이 낫겠다고 꺽꺽 소리를 내며 울기까지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A는 그가 뚝뚝 흘리는 눈물을 보며, 저 눈물을 받아서 먹으면 한 모금 물은 될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행운이라 생각했던 통조림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간혹 잔혹한 무리는 사람을 식량으로 쓰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으나 그들은 적어도 서로에게 대한 최소한의 존엄은 지키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들은 모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말라버린 뇌에서 가까스로 끄집어 내 가며 생존법에 대해 토론했다. 그 중 하나가 오래 전 온갖 열대나무를 기르던 온실을 기억해 냈고, 그곳에서 바나나를 찾아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내놨다. 바나나는 한 뭉치에 열리는 양도 많고, 열대나무들은 빨리 자란다고 하니 어떻게든 몇 달이라도 버티면 계속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주장을 하는 그도 듣는 이들도 바나나의 생태에 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주장에 공감했다. 모두 온실을 찾아 나서는 것에 동의했다. 모두가 온실을 찾으러 가는 것은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의견 때문에 두 명을 뽑기로 정했다. 나머지는 지금 머무는 폐허에서 통조림의 행운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동안 쓸모없는 장비라며 가방 구석에 쳐 박아 두었던 스마트폰이 다시 A와 B의 손에 들려졌다.


   ‘검은 하늘의 날’ 이전에 이미 업데이트되지 못한 지도이리라. 그래도 그동안 정부는 상황을 개선할 힘을 잃었고 사람들도 새로운 무언가 만드는 것을 멈췄다. 지도에 그려진 건물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리라. 사라진 것은 있으나 새로 지어진 것은 없으리라. 생존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온실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사람 없이도 돌아가고 있는 사막의 서버들이 그나마 살아있어줘 이 지도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A 일행도 인육을 먹는 사람들처럼 변했을 지도 모른다.

둘은 유리벽을 더듬거나 유리벽에 바짝 자란 풀을 헤집어보며 문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쓰며 앞으로 나아갔다. 발 끝에 무언가 부딪쳤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무릎 높이의 화단 같은 것이었다. 입구가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왔다. 그러다 이젠 손 끝에 튀어나온 것이 걸렸다.  


   “찾은 거 같애 .“


   A가 말했다. 몇 걸음 뒤에 있던 B가 풀을 헤치며 서둘러 걸어와 풀을 베어냈다. 회색 레버식 손잡이가 나왔다. B는 긴장한 표정으로 손잡이를 내렸다. 딸깍하고 열릴 거라 생각했지만, 뻑뻑하게 잘 내려가지 않았다. 한 번 더 힘을 줬다. B는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꽉 움켜잡은 채 문에 어깨를 밀착시킨 채 A를 쳐다봤다. 망설이던 A는 고개를 끄덕였다. B가 손잡이를 힘을 주어 눌렀다. 유리가 깨지지 않게 하려고 조심스레 문을 힘주어 밀었고,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B는 온실 안으로 들어갔다. 온실 안은 수증기가 찬 것처럼 습기가 높았고 잎과 나무와 풀이 윤기가  흘렀다. 촉촉해 보이는 풀이 가득했다. 온실 안 통로였을 것으로 보이는 곳은 부식되어 있었다. 그곳에 나뭇잎들이 마구 쌓여 있었는데 풀로 덮여 있지는 않았다. 과실이 열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붉거나 자주 빛의 꽃도 보였다. 둘은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놓고 길을 따라 걸어갔다. 이곳에 오면서 겪은 숲과는 달랐다.  바람이 나무를 움직이는 소리만 나는 것이 아니었다. 낯선 소리들이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때 퍼뜩 B가 당장 여기서 나가야 된다며 A를 끌어당겼다. B의 얼굴은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A는 갑자기 왜 그러냐며 바나나 나무를 찾기 전까지는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곳을 만났는데, 바나나가 없을 리 없다.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두고 돌아갈 수 없었다. B는 다짜고짜 A를 끌어당겼기며 소리쳤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자!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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