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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현 Aug 18. 2022

섬 (1)

검은 하늘의 날 이후

   걸음을 내딛기조차 어려울 만큼 나무와 풀이 빽빽했다. A는 괜히  앞서 가겠다고 했나 후회했다. 지금 이곳에는  독충도 뱀도 동물도 없을 테니 겁 먹을 필요도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팔 길이 되는 칼을 들고 A는 풀들을 사정없이 베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으로 눈이 따끔거렸다. 여덟 시간 쯤 걸었을까, A는 스마트폰을 꺼내 지금 위치를 확인했다. 예상 지점까지는 아직 이 킬로미터 정도 남아 있었다. A는 B를 돌아보았다. B도 더위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쉬다 갈까?”

   “어, 그러자. 힘들다.”

   A는 물통을 꺼내 한 모금을 머금은 후 뜸을 들이다가 삼켰다. 이제 물은 3분의 1도 남지 않았다.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아껴 둬야 한다. B가 말했다.

    “그 지점에 가면 바나나가 있는 거겠지?”

    “정보가 맞길 기대해야지. 이번에는 꼭 있으면 좋겠어.”

   B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 들어오면 날파리 하나라도 혹시 볼 수 있을 줄 알았어. 예전에 죽인 모기도 그립다.”

   “나도 엄청 죽였었는데… “

   A는 피식 웃었다.

   “그럼, 이제 다시 가볼까?”

   “응.”

   물병을 단단히 잠그고 다시 수풀을 헤쳐 나갔다. 목적지까지 지금 속도라면 한 시간 후면 도착할 것이다. 부디 그곳에 바나나가 열려 있기를, 바나나 꽃이 피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앞으로 나아갔다. 곤충이 사라진 세계, 꽃이 이 기후를 이겨내고 피어 있다면 손으로 수분을 해서라도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 기후변화로 동물들이 과거 다섯 번의 대멸종 때보다 생물의 멸종 속도가 천 배는 빠르다고 신문과 방송이 떠들었다. 지구를 식히려면 석탄을 그만 떼고 태양으로 에너지를 만들어야 된다느니, 고기를 끊고 채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느니 수많은 해법을 각자가 내놓았다. 하지만 인구는 100억이 목전이었고 모든 사람이 한 마음이기는 어려웠다. 방송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사이, 여기저기서 홍수, 가뭄, 산불이 이어졌다. 사실 이때만 해도 괜찮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서 국제 시장에 밀가루 공급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러자 밀가루 가격이 치솟더니, 곧이어 다른 식량들도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밀 최대 수출국 중 하나인 인도가 가뭄과 홍수로 흉년이 지면서 수출을 중지했다. 자기네 먹고 살 것도 모자라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처럼 밀가루를 자급할 수 없는 나라들은 남은 밀가루를 서로 차지하려 안간힘을 썼고, 밀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첫 해에만 40%가 뛰었다. 빵이나 국수는 비싼 음식이 되었다. 그러더니 벌이 집단으로 죽은 채 발견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어떤 농가는 키우던 벌의 90%가 죽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열매가 맺으려면 벌이 중요한 줄은 알았지만, 기껏해야 사과 정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뒤이어 나비가 사라지고 나방이 사라졌으며 파리도 사라지고 모기도 사라졌다. 어떤 사람들은 여름에 귀찮게 날아다니던 벌레들이 사라져 쾌적해 졌다며 좋아했다. 어느 순간 새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수풀을 헤치는 크고 작은 동물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들리는 소리는 사람이 내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바람이 만들어내는 것 뿐이었다.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이 사라졌다. 돈 있는 이도 마찬가지였다.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진 사람들은 다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게에서 먹을 것을 서로 먼저 사겠다고 싸우더니, 먹을 것을 지키기 위해 서로 조직을 만들어 외부인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규모가 커져 내전으로 번진 나라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지러워진 나라 분위기를 외부로 돌리려는 어느 나라 대통령이 옆 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해 수확을 남겨둔 오월의 들판을 태워버렸다. 앞다투어 다른 나라들이 정의를 외치며 이 둘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전쟁은 점점 커졌고 많은 것이 불탔다. 그 와중에 기후도 이상해져 많은 도시와 논밭, 숲이 가뭄, 홍수 등으로 파괴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하늘에서 검은 가루가  하루 종일 내렸다. 이상한 광경을 보러 나온 이들은 이 가루를 맞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가루가 날아 들어오지 못하게 모든 문을 꽁꽁 끌어 잠갔던 사람들만 살아남았다. 야외에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는 모던 모든 움직이는 동물이 이 일로 목숨을 잃었다. 인구는 10억으로 줄었고, 인간을 제외한 동물은 사라졌다.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이 날을 ‘검은 하늘의 날’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전쟁을 멈추고 땅을 뒤엎은 검은 가루를 피해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이 가루를 미처 피하지 못해 인구가 반으로 줄었고,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또 반으로 줄었다.

   풀과 나무가 살아 남았으나 동물들이 사라지고 나자, 나무들은 씨앗 만들기를 도와줄 존재를 찾지 못해  더이상 열매를 맺지 못했다. 간혹 사과 나무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사과, 밤도 인간이 많이 먹는 작물열매를 맺지 못했다. 기온까지 더 뜨거워져 열대 나무나 풀이 아니고는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갔다. 바람의 힘을 빌리거나 스스로 수분을 할 수 있는 식물이 살아남았지만, 벼처럼 물을 많이 먹는 작물은 바다 수위가 올라가면서 강이 더 줄어든 데다 그나마도 마실 수 있는 물이 부족해 재배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열매가 열리는 나무와 풀이 숲과 들판에서 사라지는 동안, 질긴 생명력을 가진 먹을 수 없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와 풀이 사람들이 사라진 도시를 잠식해 갔다. 바다도 물고기들이 사라지긴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굶주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스스로 돌아갈 수 있는 태양광 발전소 일부가 남아 있어 전기는 쓸 수 있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난리가 나기 전 지도를 띄워 보물찾기를 하듯 과실수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A와 B도 마을을 대표해 마을에서 5km 떨어진 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바나나를 키웠다는 온실을 찾으러 나선 참이었다.


   둘은 묵묵히 지금까지 걸어온 것보다 더 빽빽해진 수풀을 헤쳐 나갔다. 어떤 것은 머리 위로 자라 풀풀 감옥에 갇힌 것 같았다. 이 곳에 있던 통신기지는 파괴되었는지 스마트폰 신호도 잘 잡히지 않았다. 스마트폰은 전파를 잡으려고 계속 시도했고 배터리도 빨리 떨어지기 시작했다. 돌아갈 것을 생각해 통신은 잠시 꺼 두기로 했다. 지도 화면을 캡쳐한 후 태양을 보고 방향을 잡아 앞으로 나아갔다. 몇 걸음을 옮기고 하늘을 보고, 또 다시 걸음을 옮긴 뒤 하늘을 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키 높이의 풀들에 지쳐갈 때 즈음 멀리서 반짝 빛을 반사하는 것이 보였다.

   “다 온 거 같다. 뭐가 반짝였어.”

   A는 B를 독려했다. 백 미터 쯤 전방에 보이는 반짝이는 곳을 향해 다리에 힘을 주고 속도를 더 내기 시작했다. 짧은 거리였지만 무성한 풀은 이들을 지치게 했다.

   “적어도  돌아갈 때는 좀 편히 가겠네.”

   B가 농담을 던졌다.

   “어.”

  하며 A가 풀섶을 젖히는 순간, 갑자기 손끝에 매끈한 것이 만져졌다. 갑작스런 감촉에 A는 순간적으로 뒷걸음칠쳤다. 그리고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 두 손으로 풀들을 조심스레 좌우로 젖혔다. 온실이었다. 키만큼 자란 풀에 가려져 볼 수 없던 곳이었다.

   “무슨 일이야?”

  ㅍ뒤따라오던 B가 유리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B는 A 옆으로 다가와, 유리 벽면에 얼굴을 갖다 댔다. 안을 들여다 보려고 했지만, 더러워진 유리 탓에 풀과 나무가 그 안에 있다는 것만 인지될 뿐, 흐리게 보였다. 그래도 찾았다.

    “이거, 우리가 제대로 찾은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가 보자.”

   B가 말했다. A는 고개를 끄덕였다. B는 유리를 깨고 들어가자고 했다.  어차피 입구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걸 찾느라 시간을 허비할 수 있으니 빠르게 진입해 보자는 거였다. A는 만약에 온실 안에 바나나가 열매를 맺었고 그것이 온실 때문이었을 수도 있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입구를 찾아 들아가자고 했다.

   “너무 늦어버리면 이 안에서 자고 다음날 출발하면 되지. 혹시 알아? 바나나가 열려 있을지? 그럼 그걸 먹고 하루 밤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야.”

   A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의 말처럼 아직 밝혀진 것은 없으니 말이다. 온실 유리문을 오른쪽에 두고 다시 수풀을 헤쳐 나갔다. 가끔 칼이 유리벽에 부딪쳐 텅 공명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온실안은 텅 비어 버린 것일까?  A에게 걱정이 밀려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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