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사진 몇 장에 더하는 새해 소망
연말연시. 지금껏 살면서 이맘때쯤이 되기만 하면 항상 묵은해를 떠나보냈고 새해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신년 맞이는 언제나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함께한다.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어젯밤과는 왠지 다른 특별한 바람이 세상을 적시는 가운데, 왠지 나의 새해는 지극히 평범하게 흐를 것만 같은 예감이 당황스러운 감정을 안겨주는 듯하다.
그 종소리와 바람이 당황스러웠던 터라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심정으로 휴대전화에 와 있는 새해 인사에 답장하는 것으로 신년을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긴장이 풀리자 다른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를 먼저 보내기도 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2024년 1월 3일. 아직도 그 당황스러움은 사라지지 않아 나의 목덜미를 붙잡고 있고, 연초가 생각보다 평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색해하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아직 참 어리다고 생각해 본다.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도, 세상은 서운하리만큼 빠르고 능숙히 제자리를 찾는다. 이미 도로에 다시 퍼지기 시작한 자동차 경적과 붉은빛의 향연은, 새해에 들뜬 콧노래를 급속도로 냉각시키면서도 사무실 의자를 따뜻하게 데운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를 찾아서 새해 목표를 꾹꾹 눌러 적는다.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어김없이 떠오르는 이루지 못한 전년 목표의 잔상에 새어 나오는 미소도 그대로 내비친다.
새해 목표를 이루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 만큼 알 사람들이 올해도 역시나 펜을 잡는다는 것은, 그저 저마다의 새해가 너무 평범하지는 않기를 바라는 작은 마음에서 연유한 것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나의 당황스러운 마음에 따뜻한 공감이 더해지는 느낌일 텐데.
시간이 흘러 언젠가 한 해의 시작이 평범하다는 것에 당황하지 않게 된다면 어른이 된 것일까? 왠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로 느껴진다.
개인의 삶이 대체로 그리 빠르게 바뀌지 않기에 새해도 작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점, 그래서 이에 의연해져야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맞는 말 같다.
하지만, 나와 타인의 인생들을 향해 관심 어린 따뜻한 시선을 보내지 못하며 굳어진 평범함에 이른 것이라면, 어른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겠다.
어른이라는 이름은, 쳇바퀴 같은 평범한 자기 인생의 굴레에 처절하게 적응하면서도, 마음이 굳는 것을 경계하여 또 다른 쳇바퀴 속의 타인에게 사랑과 연민의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훈장인 듯싶다.
올해는 그 훈장을 나의 가슴에 달고 싶다.
세상의 굴레에 발맞추며 나도 모르게 조금씩 잃어버린, 인간을 향한 따뜻함과 연민을 다시 찾고 싶다.
또 다른 새해가 성큼 다가올 때 당황하지 않으면서도, 당황할 겨를도 없이 무표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에 지긋이 눈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이어리에 적지는 않았지만, 꽤 간절한 나의 새해 목표이자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