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아도 밟히지마 ep.03]
나는 대학 졸업 전 취업이 간절했다.
가끔 4학년 중에 2학기가 되면 학교에 나오지 않는 선배들이 있었는데 조기 취업에 성공한 케이스였다. 멋져 보였다. 졸업하고 아무런 소속도 없이 취업의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준비생의 모습은 내게 불안 그 자체였다. 어쩌면 그럴 만한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취업준비생이지만 사실은 백수인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나의 계획은 4학년 1학기 때 아나운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2학기가 되기 전 취업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4학년이 되자마자 방송아카데미학원에 등록하고 학교 수업과 병행하였다.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다. 오후까지는 학교 수업과 전공과목 시험 준비를, 저녁에는 학원에 다니면서 취업 준비를. 빡빡한 스케줄이었지만 그 어떤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력 끝에 학교에선 1학기 성적우수장학금을, 학원에선 오디션 top 3에 들며 목표했던 대로 4학년 1학기를 마치자마자 방송국 취업에 성공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정신없던 나는 내실을 쌓는 데에만 집중했다. 내가 있는 곳과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돌아보면 나는 지적을 가장 많이 받는 학생이었다. 조금의 여유도 없었던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시간이 되면 바로 신촌에 있는 학원으로 향했다. 그러다 보니 의상이라든지, 나의 외적인 부분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아주 두꺼운 잠바로 꽁꽁 싸매고 학원에 간 날, 나는 선생님께 이런 지적을 받았다.
“너는 아나운서를 준비한다는 애가 무슨 그런 잠바를 입고 학원에 오니?”
우스갯소리였을 것이다. 덕분에 친구들도 깔깔대며 웃었으니까.
나도 같이 웃었다. 그렇게 크고 작은 지적의 중심이 되는 일들이 많았었기에 그날도 그냥 개의치 않았다.
“뉴스 연습이 더 필요한 것 같아.”
“표정이 부자연스럽고 조금 더 밝았으면 좋겠어.”
“조금 유치한 것 같아. 아나운서 같지 않아”
물론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이었다. 그런데 좋은 말도 선을 넘으면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 덩달아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만다.
‘내가 정말 그렇게 못하는 건가.’
‘그렇게 지적을 많이 받을 만큼 많이 부족한 사람인가.’
당시 나는 숱한 지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밝게 웃으며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감은 계속 떨어졌으며 도전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때 우연히 읽게 된 책의 한 문장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당신이 NO라고 할 때마다, 나는 YES에 가까워집니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남들이 지적하는 걸 다 고쳐봐야겠다. 그럼 정답에 가까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악착같이 연습했다. 학교 시험 기간과 겹쳐 뉴스를 연습할 시간이 없으면 방송이 녹음된 오디오 파일을 들으며 전공 공부를 했다. 그야말로 눈은 학교 공부를, 귀는 취업 준비를 했던, 말도 안 되게 치열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매수업마다 달라진 나를 보여주었다. 고친 모습을 보고 인정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또 다른 문제점을 찾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차피 지적을 위한 지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사회로 나가보니 취업 준비 시절 들었던 지적과 거절은 애교에 불과했다. 훨씬 더 잔인하고 무수히 많은 거절을 만나게 되더라. 어쩌다 한번 내게 ‘YES’가 찾아올 뿐 일상은 매일 ‘NO’를 마주한다. 하지만 그 부정에 걸려 넘어질 것도, 부정하는 사람을 미워할 것도 없다. 감정을 걷어내고 나의 부족한 점을 받아들이고 개선해나가면 분명 곧 인정받게 된다. 지적을 받았다는 것은 인정을 받기 위한 힌트를 얻은 셈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나의 모습으로 가끔 만나게 되는 ‘YES’는 정말 반갑고 고맙다. 다음 만나게 될 'YES'를 위해 'NO'를 맞아주자. 겁먹지 말고 'NO'가 알려주는 정답의 힌트를 찾아보자.